성별화된 국가폭력에 맞서기

여성유치인 속옷탈의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에 부쳐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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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그해 여름은 무더웠고, 국가폭력은 몇 개월째 이어졌다. 그래도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이하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은 물대포를 쏘는 경찰들에게 “샴푸도 줘!”라고 외치며 재기발랄하게 맞섰다. 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발바닥이 아픈 것도 잊을 만큼... 그래서 몇 개월을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몇몇 경찰서에서 연행된 여성유치인들을 유치장에 입감시킬 때, 브래지어를 벗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충격이었다. 내가 학생운동을 하던 20년 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너무나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탈의를 강요받았던 여성의 얼굴에서 퍼져 나오는 의기소침함, 위축감을 목도한 나는, 분노로 눈물이 났다. 처음 유치장에 들어간 그녀들은 ‘원래 그런가 보다’라 생각해 부당한 지시에 따르면서도 가슴에 찝찝함과 모욕감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서 규탄 기자회견도 하고 인권위 진정도 했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도 없었고 경찰의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었다. 여성유치인이 자살할까봐 그랬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개선될 줄 알았던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유치인 속옷 탈의는 2010년에 다시 일어났다. 몇몇 경찰서에서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된 여대생들에게 또다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했다. 다행히도 몇몇 2008년 촛불집회 피해당사자들이 작년에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5월 30일 국가배상청구소송 1심(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조중래 판사)에서 승소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정말 기뻤다. 피해당사자들, 그리고 나같이 부당한 국가폭력, 여성폭력에 항의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함께 나누었던 고민을 조금은 토닥여주는 듯했다.

위 사진:[사진: 2008년 촛불집회에서 연행된 여성유치인에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한 경찰서 규탄 기자회견(출처: 참세상)]

행정명령의 위법성과 과잉금지 원칙 위배를 지적

판결문에서 경찰의 탈의조치에 대해 “경찰 업무편람은 브래지어가 자살・자해에 이용될 수 있어 유치인에게 이를 설명하고 제출받는 것으로 규정하나 위 편람은 법규명령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신체검사의 유형을 세분화하여 유치인에게 불필요한 수치심을 주지 않으려는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수용자들은 1인당 3개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는 사실에서 경찰서 유치장 내 여성수용자들을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수용자들과 달리 처우할 이유가 없는 점”에 비추어 “유치인들의 자살 예방을 위하여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아니한 채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법하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여성유치인 속옷 탈의는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교도소나 구치소 같은 교정시설의 여성수용자들도 브래지어 탈의를 시키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경찰이 주장한 자살예방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기본권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속옷이 아닌 자살 위험가능성이 있는 끈으로서 브래지어

경찰이 근거로 삼는 과 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경찰 업무편람 2. 자살・자해 사고의 유형에는 “가. 자신이 구두끈, 양말, 런닝, 브래지어 등을 이용 목을 매어 자살”, “브래지어도 끈이나 철제와이어, 매듭쇠 등이 자살 또는 자해 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을 설명하고 제출받아 보관함”으로 되어 있으며,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2009.8.31. 경찰청 훈령 56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9조 위험물 등의 취급에 “1.혁대, 넥타이, 금속물 기타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경우 유치인보호 주무자는 물건을 제출시켜 유치기간 중 보관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살 예방을 위해 위험한 물건인 브래지어를 여성유치인에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 근거해 경찰은 2008년에도, 소송과정에서도 여성유치인의 자살예방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2008년 인권단체들과 당사자들이 인권위에 진정하여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인권위의 조사가 있었다. 그때 인권위가 탈의조치에 대해 경찰에 질의하자, 경찰청은 “브래지어는 ‘끈’과 ‘와이어’로 구성되어 있어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줄 수 있으므로 ‘속옷’의 개념보다는 ‘기타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이라서 제출받아 보관”했을 뿐이라고 답변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유치인 중에 브래지어로 자살한 기록은 한국에 없다. 단지 양말과 속옷 등의 끈에 의한 자살이 몇 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브래지어가 일반 여성 몸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강도와 길이가 있는지, 그래서 자살도구로 이용가능한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실험 결과, 시중의 브래지어 5종은 54kg~83kg을 지탱할 수 있는 ‘끈’이라는 것이다. 경찰 때문에 정말 어이없는 실험을 국민 세금으로 국과수가 한 것이다. 그럼 실제 자살사고가 있었던 다른 끈들, 즉 양말이나 티셔츠, 런닝, 혁대 같은 끈은 왜 강도나 길이를 왜 실험하지 않는가.

성별화된 처벌인 브래지어 탈의

경찰은 왜 남성들의 런닝이나 양말은 제출받지 않는가 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여성들에게도 런닝이나 양말을 벗어달라고 하지 않는가. 실제 자살사고가 있었던 물건인데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브래지어 탈의가 사실상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폭력, 처벌로서 행해진 폭력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부장적 국가권력은 일상에서 늘 성별화되어 작동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특정 공간이나 특정 집단에서도 성별화된 통제방식이 작동된다. 여성유치인에게 브래지어 탈의가 강요된 맥락이다. 다시 말해 남성들에게 런닝이나 양말을 벗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협(폭력)이 되지 않지만, 여성에게 브래지어를 벗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협(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남성들을 훈육할 때 효과적인 것이 물리적 힘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여성들을 훈육하기에 효과적인 것은 사회화된 여성성의 탈취를 통해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가부장사회에서 남성의 신체는 드러내고 다녀도 되는 것, 아니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길러진 반면, 여성의 신체는 감춰야 하는 것, 각종 속옷으로 동여매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브래지어 탈의는 젠더규범을 위반하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최근 많은 여성들이 사회가 강요하는 젠더규범-여성되기-여성신체규범을 거부하기 위해 ‘브래지어 안 입기’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가, 수사기관인 경찰이 이러한 젠더규범을 위반하며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한 것은 모욕감, 수치감을 주어 훈육하려 한, 일종의 처벌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수사기관에서 처벌로 악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재판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마저 저버린 것이다. 실제 2008년 촛불과 2010년 대학생 반값등록금 집회 등 대규모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에게 브래지어 탈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서도 의심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국가가 여성 집회참가자들을 길들이고 훈육하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준 성별화된 폭력이다.

엔젤라 Y 데이비스가 쓴 「공적 투옥과 사적 폭력: 여성에 대한 은밀한 처벌에 대한 고찰」에 의하면 실제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범죄자들을 교화하기 위해 성별화된 투옥체제로 감옥을 개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백인 여성들만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소집단 수용제, 가사훈련 등 여성화된 처벌양식을 고안했다. 젠더규범을 국가권력이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언제나 존재해왔다.

성인지도, 인권감수성이 없는 인권위의 2008년 결정

2008년 인권위의 결정은 인권감수성도, 성인지도도 없는 것이어서 더욱 우리를 분통터지게 했다. 경찰의 어이없는 답변과 국과수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문제가 없었으나 보완조치가 미흡했다며 탈의조치를 정당화했다. 인권위는 “여성유치인이 브래지어를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 및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보완조치를 강구하고 여성유치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보완이 필요하다”고 결정해, 그 후 경찰은 여성유치인용 조끼를 비치했다. 법원보다 높은 인권감수성과 성차별 감수성이 있어야 할 인권위가 얼마나 한심한지 새삼 느낀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성차별과 여성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 국가권력에 맞서 싸울 때만이 인권감수성도 높이고 성차별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다시 한 번 국가에, 경찰에게 말하고 싶다.
"너희가 뭔데, 우리 여성들에게 속옷을 벗으라, 말라 요구해.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야."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02 호 [기사입력] 2012년 06월 13일 16: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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