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총무의 인권이야기] 내가 장수마을 주민과 동네목수 직원이 된 이유

배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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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재개발 예정구역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대안개발연구모임에 참여하고, 거기다 집수리 마을기업인 ‘동네목수’에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에게 포부 아닌 포부를 밝힌 말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간 내가 본 사회대중 운동이라는 것은 국가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맞서 대항해야 했고, 이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조직하고 결집시키는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집된 행동에 국가는 더 강한 폭력으로 대응하고 그런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울 사람들을 운동은 계속 확대 필요로 하고... 그러한 반복 속에서 국가와 시장을 지역에서부터 허물 수 있는 공동체적인 새로운 흐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 사진:[사진: 장수마을 전경]

두 번째 이유는 어떤 제도나 법이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 제도가 그러하고 활동보조인과 이용인의 관계가 그러했다. 3년이 넘도록 활동보조인을 조직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보조인 스스로가 주체가 돼 당신들의 노동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왜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이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그리 무관심한지를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 연령대가 40대에서 60대인 활동보조인들이 의식을 바꾼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건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 포기하지 않고 있다. 65세 이상이 65%가 넘는 장수마을에서 주민을 조직하고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안 된다고 충고를 해 준 사람이 더 많았지만 난 된다는 쪽에 패를 잡은 셈이다.

그렇게 장수마을 주민이자 마을기업 ‘동네목수’ 직원으로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작년 11월에는 대안개발연구모임이 사랑방으로 사용하던 빈집을 수리하여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장수마을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장수마을 주민으로 살고 싶었던 바람이 더 컸었다. 예전에는 주로 활동가가 내 삶의 이웃이었다면, 이제는 옆에 사는 주민이 내 삶의 이웃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장수마을로 이사한다고 했을 때 오셔서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는 마을을 둘러보시고는 "네가 또 왜 외롭게 살려고 하느냐"며 강하게 반대하셨다. 하지만 내 의지가 강하고 동네 어르신들을 수시로 보면서 인사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셨다. 생경한 집수리 일을 하며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처음의 생각은 심한 몸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심장만 뛰는 일이었다. 차가 들어가는 않는 골목길 안으로 자재나 연장을 운반하기에는 오롯이 사람의 힘에 의존하여 운반할 수밖에 없기에 집수리 일은 그 몇 배의 수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위 사진:[사진: 동네목수 작업 풍경, 왼쪽은 최근 공방 앞에 만든 자재창고 작업, 오른쪽은 포이동 재건마을 마을회관 옥상 판넬 작업]

이런 몸 고생보다 더 힘든 것은 심한 마음고생이었다. 적게는 십 년, 많게는 한평생을 집수리로 잔뼈가 굵은 동네 주민들과 마을기업이라는 취지를 살리면서 같이 호흡을 맞춰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직함이야 '동네목수' 총무라고 하지만 집수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어 공정과 사람을 관리하는 일보다는 자재 심부름 같은 잡부 역할을 주로 했다. 나 스스로도 수십 년간 굳어진 삶의 습관들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감정곡선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다시금 치고 올라가는 반복을 수없이 거쳤다. 유일한 장점인 집요한 성실성 하나로 버텨 온 나날이었다.

그러면서 ‘동네목수’ 구성원들의 땀과 노력이 마을 공방을 만들고, 마을 카페를 만들고, 집수리를 통해 저렴한 주거비로 세입자를 이주시키는 결과물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동네 어르신들과 조금씩 안면을 쌓고 정을 쌓아간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거기에는 대안개발연구모임 성원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정말 사람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어느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1등에서부터 100등까지 정확하게 점수를 매겨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내가 장수마을에서 소박하게 꿈꾸는 것은 비록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여도, 옆에서 힘든 사람에게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사람의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재개발에 묶여 언제 집이 헐릴지 몰라 비가 새는 것도 참던 장수마을 주민들, 그런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집을 고쳐갈 마음을 먹게 됐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세상 밖에서 원하는 거품처럼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의 모델도 아니고, 이제 조금 틀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수마을에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자신의 이해관계 속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소리 없이 살아가는 주민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가지각색 주민들과 함께 천천히 변해가고자 하는 장수마을의 고민과 실천들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있다.
덧붙이는 글
배정학 님은(주)동네목수 총무이자 장수마을 주민입니다. 장수마을 소식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카페에 들러주세요. (cafe.daum.net/samsun4, 장수마을 안에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도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09 호 [기사입력] 2012년 08월 04일 1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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