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폭력에 길들이게 하는 어른들의 폭력은 누가 이야기 할까?

학교폭력을 다룬 동화 네 편이 가진 아쉬움

이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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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왕따 같은 말들이 요즘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적이 없었을 거야.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해 방송조회를 하고 경찰들은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그런 요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조금 이상해. 마치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지금까지 없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생긴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무슨 유행이나 전염병처럼 갑자기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잖아. 어쩌면 어른들은 사실 학교가 예전부터 이미 폭력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 몰라. 그저 모른 척하다가 고통과 무관심 속에 내몰린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일들이 일어나야만, 그때야 어른들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어린이 책에서는 왕따와 학교폭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어. 그래서 왕따와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네 편의 책을 살펴봤지.

첫 번째 책은 『6학년 1반 구덕천』(허은순, 현암사)이야. 이 책은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첫 번째는 6학년 1반 구덕천이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을 현수라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용인 ‘6학년 1반 구덕천’이고, 두 번째는 구덕천의 가족이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죄책감과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동생의 눈으로 그리는 ‘5학년 6반 구덕희’,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구덕천을 왕따 시켰던 강주명이 죄책감과 혼란 속에서 방황하다 전학 간 중학교에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고 삶의 희망을 발견해가는 이야기인 ‘3학년 6반 강주명’이야.
『6학년 1반 구덕천』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고 해. 그래서인지 왕따를 당하는 아이와 괴롭히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두둔하다가 같이 공격받는 아이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문제가 커지는 것만 두려워하여 문제를 덮으려고 급급해하는 학교의 모습도 그대로 그려지지. 그리고 왕따 가해자가 겪는 고통도 담아내어 폭력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임을 잘 그리고 있어.
또한, 오빠의 졸업식 때 당당히 사진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하는 동생 구덕희의 모습은 해결보다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한 어른들과 비교되어서 큰 울림이 있어.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야. 이 책에서는 덕천이를 괴롭히는 주명이와 다른 아이들의 폭력만큼 어른들의 폭력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 제기는 없어 보여.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주명이는 담임인 유선생님의 관심과 애정만으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다시 희망을 찾거든. 여전히 학교에서는 어른들의 폭력이 행사하는데도 말이야. 마치 학교폭력 문제가 교사의 애정과 관심이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해.

두 번째 책은 『반토막 서현우』(김해동, 사계절)야. 이 책은 다른 어린이 책에서 다루는 것처럼 왕따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아. 키 작고 왜소한 몸집이라서 별명이 반토막인 서현우는 자신을 왕따 시키던 강경호 및 다른 아이들과 우연히 자작나무숲으로 모험을 떠나고 그 속에서 자신감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야. 이 책은 다른 왕따를 다루는 책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밝고 유쾌한 모험담을 그리고 있어. 주인공인 현우나 현우를 왕따 시키는 경호의 관계도 그리 심각하지 않아. 오히려 자작나무숲에서 함께 힘을 모아 모험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정말 왕따를 당하고 왕따를 시키는 사이인가 생각할 정도야.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왕따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다루지 않아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 쉽고, 왕따 당하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어. 하지만 자작나무숲에서의 모험이라는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라, 왕따 문제의 해결이 너무 단순하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제 문제를 한 발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세 번째 책은 『귓속말 금지구역』(김선희, 살림어린이)이야. 이 책의 주인공 박세라는 회장 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한 표차로 차예린을 제치고 회장이 돼. 그리고 이때부터 세라는 예린이의 은밀한 귓속말과 괴롭힘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돼.
이 책의 내용도 『6학년 1반 구덕천』과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해.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들은 꽤 현실감이 넘쳐. 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어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왕따를 주도하는 차예린의 행동은 완벽하게 어른의 폭력적인 모습과 판박이인데도 이것에 대한 어른들의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워.

네 번째 책 『양파의 왕따 일기2』(문선이, 파랑새)은 전작인 『양파의 왕따 일기』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양파들에 의해 왕따를 당하던 정선이가 전학을 간 후 다솜이라는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자, 양파를 이끌었던 미희는 다솜이를 다시 왕따 시키려고 해. 하지만 방학 동안 다솜이와 친해진 양파 아이들은 오히려 미희를 따돌리게 되고 결국 다른 아이들을 왕따 시키던 미희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지.
이 책은 왕따를 하는 아이가 얼마나 쉽게 왕따를 당하게 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왕따를 주도한 아이뿐 아니라 거기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아이들 모두가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 담임선생님이 주도한 투명인간 놀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정말 왕따의 문제는 스스로 왕따를 당해보지 않아서 생기는 것일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폭력을 겪어봐야 가능한 것일까? 폭력의 문화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경험하는 것은 올바른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게 해.

네 권의 책은 각자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어. 책마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 모두에서 나타나는 아쉬운 점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문제를 어른들이 단지 더 많은 관심이나 애정을 주고 서로 공감하면 된다고만 설명한다는 점이야.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하겠지만, 학교의 폭력적 문화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없어 보이는 방식은 문제라고 생각해.
무조건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교사, 회장과 부회장의 역할을 자치 활동의 대표가 아니라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에 부려 먹는 역할쯤으로 생각하는 교사, 아이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을 만들고 그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하는 교사,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할 때 학생들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는 어른들, 그리고 이러한 학교 속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 교사가 스티커나 상벌제를 주는 방식 그대로 쿠폰을 주며 다른 아이들을 통제하는 아이의 모습까지 날것 그대로 폭력의 문화가 그려지는데도 어느 책도 이것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는 책은 없어. 폭력에 길드는 학교 문화가 달라지지 않는데 문제가 정말로 해결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학교폭력 문제에서 아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뿐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는 없을까? 폭력의 문화 속에서 길들여지고 협박당하고 죄의식을 갖고 벌벌 떠는 것 말고 많은 실패를 딛고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에서 폭력의 문화를 깨뜨리고 평화를 만드는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런 어린이 책은 어디 없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310 호 [기사입력] 2012년 08월 14일 14: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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