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인권이야기] 농담

오리
print
남자 둘이 ‘지나치게’ 붙어 다닌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경멸의 의미를 담아 농담처럼) “둘이 사귀냐?”라고 던진다. 둘은 갑자기 정색하며 역겨움을 강렬히 드러낸다. “왜 이래. 나 여자 좋아해.” 주변 사람들을 웃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정말 흔한 상황이다.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같이 어울릴 필요가 있는 공간에서 자주 일어난다. 직장처럼.

얼마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이번이 달랐던 건, 모임이 끝난 후 농담을 던진 이가 나에게 와서 “혹시 아까 제가 말한 것 중에서 불편한 것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말해달라. 제가 잘 몰라서…”라고 했다는 거다. 내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위 사진:[사진: "차별없는 일터! 우리 함께 만들 수 있어요" 포스터]

사실 그 농담이 있던 자리에서 나는 위축되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웃고 싶지 않기도 했고 웃고 싶기도 했다. 난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매했다. 딱 저 위 각본대로 진행된 게 아니었다. “나도 취향이 있어요. 양조위 정도면 사귀겠죠.”라고 했고, 역겨움을 드러냈다고 하긴 지나친 감이 있다. 아마 무엇보다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문제제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혹시 불편한 게 있었냐?”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문제제기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그들이 동의하건 아니건 나의 근거와 논리만 갖추어졌다면. 하지만 불편함은 아무데서나 말하지 않는다. 불편하다는 걸 말하고 나서 “그래서 뭐.”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떤 모임에 속해있다고 느끼는 데 있어 이 차이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혹시 불편한 게 있었냐?”라는 질문은 나에게 ‘완벽한 논리나 근거 없이 불편함을 말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 때 알게 된 것 같다. 만약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면, 어쩌면 조금씩 이 모임에 마음을 닫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의식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성소수자 노동권팀> 활동을 한다. 일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에 대한 토로가 많다. 일터에서 성소수자 혐오발언이나 편견이 가득 찬 농담이 오갈 때, “무엇은 차별발언이고 혐오발언이니까 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 힘들다. 설사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사내규정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고발할 수 없다.(비정규직이라면 더욱더) 커밍아웃을 해야만 가능할뿐더러, 커밍아웃한 상태라 해도 그런 말들이 ‘농담한 것’ 혹은 ‘그저 다른 의견을 피력한 것’ 정도의 인식상태이니.

이러한 편견과 농담들은 성소수자들을 끊임없이 위축시키고 거짓말로 자신을 감추게 만들 거다. 웃고 있어도 그 공간에서 나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 느낌,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느낌. 그것들이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성소수자 스스로 말하기 힘들다면 지지자들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처벌시킬 수 있는 규정 없이도 상대방의 불편함을 고민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언제쯤이면 우리는 같이 웃을 수 있을까? 참 멀고도 먼 고민을 하고 있는 거 같다.

광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는 <노조 한 바퀴>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입니다. 서로 궁금했던 점도 속 시원히 물어보고. 같이 하고 싶으신 분들은 동성애자인권연대로 연락주세요.
덧붙이는 글
오리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완전변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19 호 [기사입력] 2012년 10월 24일 17:57:14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