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방앗간] 당신의 몸을 기억하라

‘몸몸몸 말하기 대회’를 다녀와서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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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건강상태는 그녀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이나 입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서문 중

올해만큼 여성의 몸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작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낙태 시술을 시행한 산부인과를 고발하여 시작된 낙태죄에 관한 논쟁이 있었고 ‘저출산 시대’의 원인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 탓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또한, 올해 6월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 발표에 따른 여성의 의약품 접근권에 대한 논쟁, 그리고 최근 낙태수술을 받던 도중 사망한 10대 여성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임신과 출산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에 관해 생기는 이 논쟁 속에 정작 여성의 몸과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관한 논쟁이 수상쩍게 진행되는 중에 지난 11월 20일 한국여성민우회와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가 주최한 ‘몸몸몸 말하기 대회’가 열린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여성의 몸과 건강, 임신, 출산, 생리, 완경, 피임, 낙태, 그리고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여성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회에 언니네트워크 소모임 ‘묻지마 중창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이 대회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거기에 참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를 생각해보니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여성주의/자들을 알아온 지 이제 어언 8년. 나는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온갖 종류의 폭력이나 억압을 나보다 먼저 겪은 언니들의 경험을 나눠 받은, 말하자면 페미니즘의 수혜자이다. 가령 결혼이 인간 발달과업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진실’을 알기에 결혼에 대한 오만가지 압박(혹은 협박)으로부터 여유로울 수 있었다든지, 언니들의 추천을 받은 병원에만 내원했던지라 산부인과 진료경험이 불쾌했던 적이 없었다든지 하는 점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묻지마 중창단원’들과 특별히 나눈 내 몸의 경험은 없었다. 나는 그저 취지 좋은 대회에 연대한다는 좋은 마음으로 다녀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스피커의 발표가 시작되면서 그런 나의 생각은 단번에 깨졌다. 어린 시절 젠더문법에 따르지 않은 양육을 받다가 이후 성별 이분법에 따른 훈육이 시작되었을 때 몸에 나타난 폭식증과 거식증에 대한 이야기, 또한 ‘정숙’한 몸과 섹슈얼한 몸 사이에서의 분열적 말하기에 대한 의문과 어째서 생리와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얘기는 사적 영역에서만 머물러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이야기, 완경 이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몸의 슬픔과 새로이 알게 된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낙태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태아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산부인과 진료가 행해졌을 때 여성들이 얼마나 좌절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 모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저릿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스피커들의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내 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것이 전해졌지만, 무대 위 조명 아래 선연히 보이는 모습에서 많은 것이 느껴졌다. 화자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당시의 감정들이 목소리의 떨림으로, 말과 말 사이의 머뭇거림으로, 풀리지 못한 분노로, 쉽게 발음되지 못하는 외로움으로,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울음으로 선명히 전해졌다.

여성들은 어째서 다른 여성들의 몸의 기억을 이렇게나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 전반에 여성들의 몸을 건강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 억압의 기제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아닐까. 바로 이런 점에서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크워크’의 활동들이 의미와 가치를 가지지 않나 생각해본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일었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여성의 몸에 기반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여성이 건강한 몸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여성민우회의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는 여성들이 의료결정권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사회 문화적 환경을 바꾸는 시도이며 살림의료생협의 여성주의 진료는 실제로 여성들이 어떤 진료시스템을 원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경험을 나누고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확인하는 것은 각자 지나온 삶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의 몸에 맞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분명한 지침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회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각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성별이 여성인 대통령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억압과 폭력,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경험과 현실들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여성의 몸이 건강한 사회. 그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사라진 사회의 다른 말이다. 이러한 사회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인 사회에서 건강히 뿌리내리고 살 그날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연화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
인권오름 제 324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28일 18: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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