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의 인권이야기] 당신은 어떤 혐오를 왜 가지고 있나요?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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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주에서 한국인이 인종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된 사건에 대해 우리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인종 혐오 범죄에 대해 언론이 공론화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언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최근 한국도 인종 혐오와 관련하여 국제기구로부터 권고를 받은 것이다.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되어 있는 한국은 올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의 심의를 받았다. 5년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심의에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도 인종 혐오 범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위원회는 일반권고 제7호(1985년), 제15호(1993년) 및 제30호(2004년)에 따라, 당사국(대한민국)이 대중매체, 인터넷 및 소셜 네트워크를 감독하여 인종 우월주의적 사상을 유포하거나 외국인에 대하여 인종적 혐오를 선동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적발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이 이러한 행위의 주체들을 기소하고 적절하게 처벌할 것을 권고한다.


이미 국제 사회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20조 2항, ‘더반 선언문’(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 및 이와 관련된 불관용 철폐를 위한 세계회의 채택 문건) 등에서 인종 혐오가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동안 단일민족(?) 국가를 내세워온 한국은 이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주민이 점차 증가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반인종적 커뮤니티의 증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외국인에 대한 비하 발언 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09년 보노짓 후세인이라는 인도인에게 인종 차별 발언을 한 한국인이 최초로 처벌받은 사건이나 인종 차별을 사유로 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인종 차별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관련 법제정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혐오의 문제는 단순히 이주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인 무지개공동행동에서 대선 시기에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정책에 대해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많은 이들은 혐오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처럼 혐오에 대한 문제는 당사자 집단에서는 이미 큰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팀은 온라인 공간 내에서의 혐오 표현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홈리스,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이주민에 대한 혐오 표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혐오는 ‘어떤 것을 기피하는 감정’이다. 혐오 식품, 혐오 시설 등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상은 여럿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사람이 되었을 때 문제의 심각성은 극대화된다. 타자에 대한 폭력, 기피와 반감의 감정을 담은 혐오 표현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것일 때 그 혐오는 ‘A(나)는 B(너)가 싫어’와 같이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 혹은 단순한 일탈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올해 일어난 성소수자, 홈리스에 대한 린치와 같은 것을 단순히 미성숙한, 비도덕적인 한 개인의 잘못으로 탈정치화해 버리면 그 해법은 도덕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혐오 표현은 오랜 기간 누적되는 ‘연속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한 개인이 아니라 비슷한 속성을 지닌 ‘집단(정체)성’에 대한 공격적 성격을 지닌다. 즉, 혐오 표현은 지속되어온 차별 현상에 기반을 둔 사회적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권력)에 있는 이들이 특정 집단에게 보이는 폭력인 것이다. 그렇기에 혐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해결책이 단순히 미국,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처럼 혐오가 범죄라는 것을 법률로 명문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이 혐오인지, 그것이 누구에게, 어떻게 발생을 하는지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혐오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 권력의 문제와 맞닿아있다는 인권 감수성을 함께 넓혀가야 한다.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공분을 하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 개인의 일이 아니라 ‘백인이 아닌 황인종’인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에 공분을 하는 ‘우리’는 또한 ‘우리’가 아닌 다른 집단에게 그러한 혐오의 시선과 폭력을 은연중에 혹은 무의식중에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을 때려서 죽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은 완전히 정상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
덧붙이는 글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25 호 [기사입력] 2012년 12월 05일 15: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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