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비의 인권이야기] 학교괴담 - 학교에는 유령이 있다

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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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옅은 미소와 함께 차분히 인터뷰를 이어가던 그녀는 이 말을 하곤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쓰던 컴퓨터를요?’ ‘네, 제가 2년 동안 쓰던 컴퓨터를요.’ 몇 년 전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담당자가 자신이 쓰던 컴퓨터를 내놓으라고 했었답니다. 그때 그녀가 느낀 상실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10년 동안 일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학교 과학실에서 일하는 이 노동자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업무용 기계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던 아픈 기억입니다.

‘000 여사님을 소개합니다.’
첫 출근하는 날, 교감 선생님은 학교 행정실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답니다. 사람들은 킥킥 웃고, 본인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마냥 부끄러웠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000 선생님이라고 소개했을 텐데...’ 학교에서 사서로 일하는 이 노동자는 아직도 그 출근 첫날의 부끄러움을 아프게 기억합니다.

‘산재를 받아 본 기억이 없어요.’
너무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 팔이 딱딱하게 굳어져 온갖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 대다수가 다 그렇게 골병이 들었습니다. ‘학교는 산재(산업재해 신청)를 싫어하고, 어려워해요. 그래서 15년 동안 산재를 신청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어요.’ 학교 급식실에서 15년을 일한 이 노동자는 오늘도 아픈 팔로 아이들의 밥을 짓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20만 명,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약 43%를 차지하는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학교 하면 교사와 학생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학교에는 교무보조, 과학보조, 전산보조, 사서보조, 사무행정보조, 학부모회 직원, 특수교육보조,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배식보조, 예‧체능 강사 등 많게는 50여 개 직종에 이르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교육현장 전체 교직원 중 약 25%가 이들 학교 비정규직노동자입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학교 현장의 유령이라고 부릅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직종도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대다수가 학교장이 채용하는 계약직노동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장 말 한마디에 해고되기 일쑤이고, 연말이면 재계약을 걱정하며 고용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정부가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6년 발표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2년 이상 일한 노동자 약 7만여 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의 경우도 업무능력 부족, 업무태만, 직제와 정원의 변경, 사업종료, 학급 및 학생 수 감소, 예산감소 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사유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어 고용불안은 여전합니다.

올해 36살, 9년을 학교 전산실에서 일한 노동자의 한 달 월급 실수령액이 96만 원입니다. 대다수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월 100만 원 내외의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임금이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40년을 일하고 정년퇴직해도 제 후임으로 들어오는 신규직원과 임금이 같은 거예요.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40년 일해도 저 임금을 받을까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저임금은 고통스럽고, 경력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임금 체계는 부끄럽습니다.


이처럼 고용불안에, 저임금에, 각종 차별적 처우에 시달리던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더 이상 유령으로 살지 않겠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약 5만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지금도 가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1월 9일에는 약 1만 6천 명이 교육감 직접고용과 호봉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총파업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대량해고와 외주화에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해소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노동현장에서 자신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분명 학교 현장에 존재함에도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해왔던 유령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학생들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학생들에게 누구도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제한해서도 제한받아서도 안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도덕 교과서입니다. 인간의 권리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을 통해 확장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 교과서입니다. 이 새로운 교과서의 마지막 장이 ‘비정규직 없는 학교, 비정규직 없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꺼비 님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로 청소노동자조직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30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16일 16: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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