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현장실습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와 대안적 방향

하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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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장으로 내몰리는 현장실습생들

2011년 12월 24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전남 영광실업고 김민재 군이 주당 52시간이 넘는 노동과 10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져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시 1년 만인 2012년 12월 14일 울산 신항만 공사 현장 작업선 전복사고로 전남 효산고 현장실습생 홍성대군이 사망했다.
김민재 군은 온갖 유기용제 가스로 가득 찬 자동차에 페인트를 분사하는 도장실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같이 주야 맞교대 근무, 잔업, 특근 등에 투입되어 주당 58시간에서 7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였다. 이는 18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버티기 힘든 살인적인 노동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이럴진대 더 열악한 환경의 중소기업과 하청업체에 파견된 수만 명의 현장실습 학생과 취업 학생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열악하겠는가?
홍성대군이 일한 석정건설은 12월 14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될 것으로 발표됐지만, 선박 피항 조치를 제때 하지 않았고, 사고 위험성이 높은데도 현장실습생을 3명이나 승선시켰으며, 승선 근로자(24명)를 우선 대피시키지 않는 등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가슴 아픈 비극 뒤에는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는 후진적인 산업구조가 있었다.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철폐를 외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자본과 정부의 탐욕스러움과 무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학습권, 노동권, 인권마저 박탈당한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이 있었다. 이것은 한 학생의 불행이나 운 없는 사례가 아니다.
그동안 많은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다치고 죽어갔다. 하지만 예고된 사고는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너무도 어린 학생들이 꿈과 희망, 사랑을 노래하기보다, 가정형편의 어려움 때문에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 병들고 죽어가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위 사진:2012년 1월 12일 전교조-대책위 주최 결의대회(광주고용노동청 앞)

현장실습 실태와 문제점

2012년 2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와 함께 전국 특성화고 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문계학교 산업체 파견 실습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8월 이전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시작했다는 응답이 34.7%로 나타났으며, 사전 교육으로 노동법 교육 38.8%, 산재 예방교육 54.9%, 성희롱 교육 34.6%가 받지 못했다고 답변하였다.
현장실습생 중 19.6%가 2교대, 3교대 등 불규칙한 근무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주간 노동시간은 49.6시간으로 성인 노동자를 오히려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간 노동시간은 월 26.6시간, 휴일 노동시간은 월 11.0시간이었다. 잔업 시간은 월평균 25.1시간이었다. 일일 노동시간은 월평균 9.2시간으로 조사됐고, 일일 노동시간이 무려 14시간, 주간 노동시간 84시간, 야간노동시간 154시간, 휴일 노동시간 176시간, 잔업시간 100시간 등등 몇몇 학생은 살인적인 노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습생의 30% 정도가 야간 노동과 휴일 노동을 하고 있었으며, 40% 정도가 잔업을 하고 있었다. 실습생 중 37.5%가 안전장비나 보호구를 산업체로부터 지급 받지 못했다고 응답하였으며, 18.3%가 폭언을, 5.8%가 폭행을, 3.8%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5%의 실습생은 실습 중 사고를 경험, 그들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실습생은 아무도 없었다.
50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실습생 65%는 더욱 열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소규모업체일수록 현장실습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나마 노동조합 등이 존재하는 대기업에 비해 업무환경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1963년부터 실시된 현장실습 제도는 초창기에는 학교의 교육기자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그 시작부터 교육적 고려보다 예산 부족이 우선되었던 것이다. 1993년에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3D업종에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공고에 2+1제도를 도입하는 등 교육적인 고려 없이 산업정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면서 현장실습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업의 도구로 전락되었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없던 80년대까지 이름 없이 죽어간 노동자들과 함께 어린 실습생들도 주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2000년대 들어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와 참여연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 단체가 뭉쳐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 학습권 침해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하여 2006년「현장실습정상화방안」을 얻어냈다. 실질적으로 폐지되었으나, MB정부 들어 산업체의 요구라는 이유로 체계적인 논의와 준비과정도 없이 2008년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도 학교 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현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무리한 취업률(11년 25% ⇒ 12년 37% ⇒ 13년 60%)을 제시하면서 특성화고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목표 취업률에 미달하는 특성화고는 통폐합이나 일반고로 전환한다며 협박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현장실습과 취업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학기 중에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취업을 나가기 때문에 학습결손을 야기하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조기취업을 의미하고, 산업체의 입장에서는 값싸고 말 잘 듣는 저임금노동자를 고용하는 방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실습을 통해 교육적 목적이 달성되거나, 최소한의 교육적인 배려가 이루어지는 경우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다.
현장실습생은 현장실습 기간 중 실습생에 걸맞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오로지 교육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취급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보호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실습생 신분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을 제대로 못하는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동․청소년에 해당되는 특성화고 학생은 노동에 있어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오로지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저임금, 장시간노동, 잡다업무 강요 등 단순노동인력으로 노동현장에 방치되고 있다.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

해마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을 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학생들은 학교의 설득(학교 평가에서 취업률이 중요)과 가정형편 등을 고려하여 취업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린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놓았기에 취업을 전제로 하는 현장실습을 그리도 당당하게 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삶을 담보로 작전하듯이 매월 취업률 향상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목표 취업률에 미달하는 학교는 통폐합이나 일반고로 전환한다며 협박하고, 취업률에 따른 집중지원이라는 당근을 쥐어 주면서 취업률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적극 참여, 동조, 방치한 정부, 시도교육청, 학교와 교사, 시민사회, 정치집단 등은 이제 답변을 해야 한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학생으로서 누려야 할 노동인권과 청소년의 노동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

해결의 원칙은 근본적 질문에서 찾아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보호 의무와 현장실습을 하는 학생들이 아직은 배움을 해야 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에서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학생의 진로라는 미명하에 교육과정을 마치지 않은 학생들을 산업현장에 현장실습을 빙자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몰아넣는 행위는 점검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특성화고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운영을 위해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현장실습 폐지를 포함한 현장실습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유관기관 간의 적극적인 협력체제를 토대로 지역적 또는 사회적인 노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기관들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깊은 연계체제를 구축, 기관 간 네트워크를 담당할 인력을 지정하고 학교의 담당자와 협의하여 체험학습, 현장실습, 취업업체를 선정하고, 운영한다. 그 과정에 산업체 및 노동조합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방안을 이번 정부가 적극 고려하여 더 이상 현장실습생을 죽음의 산업 현장으로 내모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하인호 님은 인천여상 교사이면서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에서 정부의 직업교육 관련 정책을 비판하고 직업교육진흥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노동인권 상담과 노동인권교육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33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06일 2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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