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①] <자료> 최우주 씨 민원 전문(1995)

학생들의 기본권을 짓밟는 학교

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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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이하 교육부 장관, 강원도 교육감, 춘천시 교육장, 강원도 지사, 춘천시장님께.

저는 강원도 춘천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최우주입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제소하려 하였으나 헌법재판소법 68조에 다른 법률에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청구할 수 없다고 하여 이와 같이 그 절차를 거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 될 게 뻔하니까 포기하라고 하셨지만 저의 요구가 너무 작고 상식적인 것이라 웃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헌법의 고귀한 정신을 준엄하게 지키는 헌법 재판소에 학교장의 지나친, 전횡적인 학교 운영으로 말미암은 학생들의 기본권의 억압을 원상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강원도 춘천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최우주입니다. 저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은 헌법 재판소의 명석한 판결로만 구제될 수 있는 비관적인 상황 바로 그것입니다.

즉 국가 공권력의 하부 단위를 이루는 고등학교의 운영 주체인 교장,교감 선생님이 학교 교육을 목표 달성만을 강요하는 입시 지상주의 교육으로 변질시킴으로써 학생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협하고 또한 인간인 학생들의 존엄성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경험한 기본권 침해 사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10 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제 19 조 :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 34 조 :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민의 일원인 저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5개월간의 고등학교 생활은 제가 죄수들처럼, 개 돼지처럼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규제되는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제 의지가 묵살되었던 것은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신청서를 제출하면서였습니다. 저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규수업 외의 시간은 제 의지대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약속을 하고 불참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신청서는 단지 형식적인 - 교육부 감사 같은 것이 있을 때, 교장 교감선생님의 면책을 위한 보호막 같은 -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위압적으로 “학교에서 하는 일이니까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 보충수업 받기 싫은 사람은 자퇴서를 쓰고 춘고를 떠나라.” 고 하셨습니다.

선배님들도 보충수업에 불참하면 학생과에 끌려가 신청서에 찬성 표시를 하든지, 자퇴서를 쓰든지 양자 택일을 할 때까지 매를 맞을 거라며 살고 싶으면 눈 딱 감고 찬성에 표시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저는 그 날 밤 잠도 못 이루며 고민하다 처참한 심정으로 비굴하게 현실에 굴복하여 보충수업을 신청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괴로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5남매를 키우시는 부모님에게 보충수업비와 자율학습비를 달라고 얘기할 때, 부모님의 어려움 때문에 속으로 울었습니다. 아니 부모님을 설득하여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차마 말할 수 없어 울었습니다. 괴로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보충수업 과목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구입하라고 하고 구입 여부를 보충수업 시간마다 확인을 하고 교재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때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에게 보충수업을 위한 참고서와 문제집 살 돈을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충수업에 참여하게 된 저의 나날들은 너무나 처참해 동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면 바로 침대에 쓰려져야만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잠이 부족하여 붕 뜬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렸을 적 5년 동안 태권도장을 다니고 지금은 키가 174cm인 저는 다른 학생들보다 건강한 편인데도 하루 종일 해를 못 보고 지내기 때문에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면 앞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 땅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5개월을 보낸 저의 몸무게는 입학 당시 63kg에서 현재 58kg으로 부쩍 줄었습니다. 게다가 하루 종일 키에 맞지 않는 책걸상에 앉아 있다가 집에 가서 침대에 누우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오른쪽 무릎은 다리를 펴고 접을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이런 제가 선배님들께 아픔을 호소하면 선배님들은 “너 같은 애 많이 봤다.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을 거야.” 라고 하지만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습니다.

저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생 때부터 하루에 두 세 시간씩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할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그런 행복은 없어졌습니다. 일요일을 빼곤 컴퓨터를 쳐본 기억이 거의 없고 그 일요일마저도 피곤해서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가끔씩 서점에 가서 컴퓨터 잡지에서 그간 엄청나게 변화한 컴퓨터 산업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저는 마치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하며 그런 저의 무식함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제 12 조 :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저는 중학교 사회시간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부당하게 감금되지 않는 다고 배웠는데 지금의 상황은,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상황도 그러한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될 것입니다. 다음은 춘천고등학교의 시간표입니다.


정상적이라면, 정규수업이 2시 50분에 끝나므로 그 후의 시간은 학생들이 학교를 나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인하여 춘고에 다니는 저를 포함한 모든 학생은 밤 10시 40분까지 학교의 딱딱한 책걸상에 앉자 있어야만 합니다.

게다가 여름방학 동안에도 모든 학생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보충수업 및 야간자율학습을 해왔으며, 올해도 당연히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땐 한숨만 나왔습니다. 찌는 더위에 한증막 같은 곳에 48명이 여름을 나야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막막합니다.


제 20 조 :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여름방학 동안 모든 학생들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참가해야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여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여름방학 중에 교회에서 하는 2박 3일의 하계 수련회에 참가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러한 이유로 보충 수업과 자율학습을 빠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3학년들은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교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도 교회에서 예배를 보지 못합니다. 선배님들은 일요일 아침 딱 두 시간만 학교를 나와 교회에서 예배를 보게 해달라고 선생님께 사정을 하였지만 선생님께서는 학교의 방침이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답니다. 어떤 선배님은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갔다오라고 학교에서 허락하더라도 교회에 가기보다는 집에서 잠이나 자겠다고 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예배 보는 것도 귀찮다고 합니다.

저는 적극적인 행복 추구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창의적이고 탐구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조건이 구비된 학교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3년 내내 사용하지 못한다는 과학 실습실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학 실습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한다는 영어 듣기 실습을 앞으로도 계속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선생님들이 계속해서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해도 좋습니다. 학교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차별해도 좋습니다. 겨울에 스팀 시설이 없어도 좋습니다. 학생의 체격에 맞지 않는 책걸상을 바꿔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단지 상식에 따라 준수되어야 할 합리적인 학교 운영이 더 이상 학교 운영권자의 자의적이고 전제적인 독단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방과 후의 시간을, 방학 동안의 시간을 당연히 학생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교육자치법에서 보장하는 학교장의 자율적인 학교운영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믿음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주기를 희망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이하 교육부 장관, 강원도 교육감, 춘천시 교육장, 강원도 지사, 춘천시장님.
춘천시에 있는 춘천여자고등학교는 새로 취임하신 이덕호 교장선생님께서 이전까지의 입시위주의 암기식 교육을 지양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오후 6시에 하교 하도록 하고 있고, 그 외의 시간은 자율적으로 남고 싶은 학생만 남아서 스스로 자율학습을 하고 있으며, 2학기부터는 보충수업도 완전히 없앤다고 합니다. 봉의고등학교는 토요일 하루를 특별활동 시간으로 하여 학생 개개인의 능력계발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춘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의 학생들이 모인 춘천고등학교 학생만이 보충수업을 하루에 5시간씩,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지난 5월 31일에 있었던 교육 대개혁의 청사진대로 춘고가 변화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저의 바람은 아주 상식적인 것입니다. 방과 후의 시간을, 방학 동안의 시간을 당연히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학생 개개인에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인권오름 제 2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03일 8: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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