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2] 지적재산권, 인권이 아니라 특권

현대 재산권의 ‘선두주자’ 지적재산권의 특수성과 허구성

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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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사회가 도래했다고 한다. 정보가 돈이 되는 사회, 정보가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신화가 진실로 간주된다. 정보의 중요성이 극대화된 정보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제도가 바로 저작권과 특허권으로 대표되는 지적재산권이다. 흔히 지적재산권은 재산권과 마찬가지로 ‘천부인권’으로 대우받는다. 지적재산권은 무조건 보호해야 하고 권리자의 허락 없이 이용하는 것은 도둑질이라는 고정관념이 굳건하다. 재산권에 기반한 이런 관념은 최근에야 만들어졌지만 지적재산권 제도의 세계화와 함께 강화되고 있다. 한편, 소유물의 형태가 ‘지적산물’인 지적재산권은 복제나 모방이 쉬워 소유자의 배타적인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재산권’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엠피3와 같은 파일 이용자 사이에 공유하는 피투피(P2P)의 경우 파일 저작권자가 공유행위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벼리1]의 재산권 일반에 대한 비판을 기반으로 지적재산권이 갖는 특수성과 허구성에 대해서 알아본다.

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하기 위한 권리, 지적재산권

위 사진:지적재산권의 국제적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로고 <출처; www.wipo.int>
이른바 선진국에서 의약품 한 가지가 개발되면 성분, 조제방법 등 수많은 특허가 출원되고 이것이 고가의 가격을 보장해준다. 초국적 제약자본에게 특허는 ‘마이다스의 손’인 셈이다. 하지만 그 약을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의약품을 독점하고 있는 제약사가 약가를 고가로 책정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특허제도는 ‘왜 약이 그렇게 비싸지?’, ‘같은 약이면서도 특허를 출원하지 못했을 뿐인 카피약은 왜 사용할 수 없나?’라는 목숨이 걸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지식은 해당 사회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업적이 누적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식은 본질적으로 공공재이다. 하지만 지식정보사회는 지식을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희소성을 부여한다. 즉 정보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이용을 배제하고 침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적재산권 제도는 이를 위해 △지적재산권자만이 자기의 지적창작물이나 영업상의 표지를 이용하도록 하고 △제3자가 이용하려면 지적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허락 없이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지적재산권은 지적산물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 지적재산권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부족 상태’를 인위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인 셈이다.

지적재산권이라는 신화

저작권은 1557년 영국에서 왕령으로 수립된 인쇄·제본·도서판매업자의 길드(Stationers' Company)가 그 회원에게 부여한, 필사본을 인쇄를 통해 복제할 수 있는 권리(Copyright)로부터 비롯되었다. 저자는 길드의 회원이 아니었으므로 출판 시 수고비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후 출판업자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1709년 앤여왕법(The Stature of Anne)이 제정되어 저작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되 그 기간이 한정되었다. 이와 함께 인간은 자신의 노동의 산물을 소유한다는 로크의 개념에 기초해, 작가는 자신이 지적 정신적 노력을 들였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에 대한 자연재산권을 가진다는 관념이 보편화됐다.

특허권의 기원은 베니스의 주요산업이었던 직조기술의 독점을 보장하기 위해 1474년 제정된 베네치아 특허법(Venetian Patent Law)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은 현대 특허제도가 가지고 있는 발명에 대한 조건인 △새롭고 △유용하며 △고안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했고, 특허의 보호기간인 10년 안에는 모방을 금지했다. 당시 베니스는 경쟁력을 갖기 위해 대자본의 투자가 필요했고, 대자본은 직조에 필요한 발명과 기술혁신, 직조기계의 설비 등에 대한 투자를 법적으로 보호받고자 했던 것이다. 즉, 애초 특허는 발명가와 발명 아이디어보다는 부상하는 자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허제도가 유럽 전체에서 보편화되자, 19세기 말에는 인위적인 독점을 반대하는 반특허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특허법이 부여하는 독점적 특권이 세계무역을 저해하고 특히 후진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1817년 제정된 특허법을 1869년부터 1910년까지 폐기한 바 있다. 스위스는 1888년 특허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었다. 영국에서는 1907년 강제실시권 조항이 삽입되기도 했다.

지식의 확산을 가로막는 지적재산권

위 사진:지적재산권의 힘 <출처; www.designcouncil.org.uk>
이후 지적재산권 제도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트립스 협정)을 통해 세계적 표준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지적 노동의 결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산권이 왜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18세기 철학자 로크의 대답과 일맥상통한다. 로크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노동을 통해 재화를 산출하므로 그 산출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얻는다. 정당한 노동에 따른 산출물이라면 부와 빈곤의 격차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에서 이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지적 산물이 노동자 한 사람이나 소집단의 노동에서 비롯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 업적은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남긴 업적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산물이다.

정보는 옷과 자동차, 집, 토지 등의 유체물(physical objects)과는 다르다. 유체물은 한 번에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인 재산형태이지만, 정보는 얼마든지 거듭 복제할 수 있으며 복제행위가 원본을 손상시키지 않음은 물론 원소유자의 사용에도 해를 미치지 않는다. 지적재산권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토마스 제퍼슨의 유명한 ‘촛불론’도 이 점을 지적한다. “누가 나의 관념을 전달받았다고 해서 나의 것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갔더라도 내 등잔불은 여전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이용할수록 사회 전체의 이익은 커진다. 흔히 더 많은 아이디어의 창작을 촉진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적재산권이 오히려 지식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 아이디어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사용할 자유를 빼앗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재산권의 기본전제는 모순일 뿐이다.

지적재산권을 옹호하는 또다른 논리는 지적산물에 대한 저자의 기여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작권료나 특허사용료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난한 소설가나 발명가를 떠올린다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공헌도를 평가하는 척도가 반드시 시장일 필요는 없다. 이른바 ‘로열티’로 충분히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의 개인이거나 거대기업이다. 지적 노동자들은 공공으로부터 적절한 대가를 받고 그 지적노동의 산물은 공공의 재산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가능하다. 또한 개인적 만족과 사회적 인정 등 금전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익은 저자가 독점적 권리를 가지지 않아도 저자에게 항상 따라다닌다.

지적재산권과 인권을 구분하는 국제인권기준

흔히 지적재산권의 근거로 국제인권기준을 들기도 한다. 유엔 사회권규약 제15조 1항은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도 비슷한 문구로 이를 보장하고 있다. 물론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함께 보장하고 있어,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공중의 이익과 균형을 맞추어야 함을 내재적 한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해석이 덧붙는다. 이런 이해는 지적재산권을 하나의 인권으로 이해하고 다른 권리와의 충돌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인권기준은 법조문의 형식을 띤 다른 규범과 마찬가지로 문구 그대로 읽어서는 안된다. 사회권위원회의 ‘초안작성역사(Drafting History)’에 따르면 사회권규약 초안작성자들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고 기껏해야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창작과 발명에 접근할 공중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에 더 많은 주안점을 두었을 뿐이다. 초안작성자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지적재산권의 주요 역할이 무역이나 개발, 식품 또는 건강 분야로 이동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더불어 개인으로서의 저자에 대한 권리만 염두에 두었고 기업이 소유하는 특허권이나 업무상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규약에 대한 사회권위원회의 이해도 달라졌다. 2001년 사회권위원회는 국가가 건강과 식량, 교육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더 어렵도록 만드는 어떠한 지적재산권 제도도 규약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2005년 사회권위원회는 규약 해석의 기준이 되는 ‘일반논평17’을 통해 “인권과 달리, 지적재산권은 일반적으로 일시적인 성격의 것이며, 철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허가되거나 양도될 수 있다”며 인권과 지적재산권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지적재산권이 인권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위원회는 지적재산권 제도가 “주로 기업의 이익과 투자를 보호”하지만 인권은 “민족, 공동체 또는 기타 집단과 그들의 집단적 문화유산 간 인격적인 유대를 보호”한다고 분리했다. “저자의 정신적 및 물질적 이익의 보호의 범위는 국내법 또는 국제협정 하에서 지적재산권으로 지칭되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위원회의 지적은 현행 지적재산권 제도가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위원회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위원회는 “어떠한 발명의 상업화가 생명권, 건강권 및 사생활 보호 등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의 완전한 실현을 위태롭게 할 경우 이러한 발명을 특허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위 사진:지난해 홍콩 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 중 한 활동가가 트립스협정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출처; www.afsc.org>


지적재산권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적재산권의 그물을 벗어나기 위해 지적재산권 제도를 거부하고 지식의 공적소유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이미 존재한다.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인 자유/오픈 소스 소프트웨어(Free/Open Software)가 그것이다. 개발자들은 저작권에 대한 대안으로 공유권(shareright)을 제시하며 “당신은 이것을 복제할 수 있지만 단, 당신에게서 이것을 제공받은 사람도 또한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구를 프로그램에 첨부한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복제를 부추기고 저작권을 거부하도록 한다. 개발자들은 자신의 지적 산물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서 만족을 얻는다. 이는 지적재산권을 독점하려는 세력에 대한 저항이자, 소프트웨어를 사회적 자산으로 축척하고 공유하려는 운동이다.

이런 시도는 지적산물이 가진 특성 때문에 가능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재산권의 다른 영역과 지적재산권은 분명히 다르므로 그 극복방식도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에 대한 저항이 공통적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은, ‘돈’ 때문이 아니라 생산과 창조의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누구나 그 생산물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으며, 생산과정에 대한 적절한 인정을 굳이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인권오름 제 25 호 [기사입력] 2006년 10월 18일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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