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국민행복’에서 국민은 행방불명되다(2)

취임사와 최근 행보에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인권의식- 국가주의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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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와 안전담론으로 행방불명된 국민과 행복

새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기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정중심이 ‘국가에서 국민개개인’으로 바뀌었다고 밝힌 점이다. 취임사에도 나타나지만 ‘국민행복’이 단지 국가발전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했다면 진전이다. 국가주의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인권을 희생해왔던 역사를 볼 때,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큰 변화가 될 수 있다. 실제 정책과 집행에서 새 정부의 이러한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면 큰 변화로 환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취임사나 최근 정부의 행보는 이와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 것이나 첫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안건이 쌍용차 정리해고나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과 같은 숱한 사회적 의제나 사건이 아니라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행정부처의 명칭을 바꾸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문제를 뒤로 제치더라도, ‘안전’을 행정부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가져가겠다고 강조하는 것이기에 ‘어떤 안전이냐’는 중요한 문제일수밖에 없다. 명칭 개정이후 구체적인 안전 관련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총괄부서도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안전담론이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불안한 사회에서 안전은 보수정치세력의 주요한 통치담론이었고, 국가안보로 이어졌다. 최근 북핵 실험으로 인한 안보위기는 정부가 안전담론을 국가안보로 이어가기 수월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를 지낸 메리 로빈슨도 9.11 테러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반인권적 조치를 하자, 이를 비판하며 “기본적 인권의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고 했다. 국가주의 강화 맥락에 놓인 안전담론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축소하는 국가안보일 뿐, 인권과 관련이 없다. 그녀는 유엔인권기구의 사람들과 이러한 국가안보의 개념에 대항하여 ‘인간안보’라는 개념을 만들고 강조하였다. 인간안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가 인권보호 의무를 충실히 해야 하고 시민의 자력화를 보장해야 한다.

위 사진: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온 국정운영기조

불법집단행동 대응체제 구축?

인권보호 의무를 삭제한 안전담론, 국가안보론은 언제나 법질서 확립과 쌍을 이뤄왔다. 그래서인지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라는 국정과제에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 구현을 위한 세부내용으로 ‘불법집단행동 대응체제 구축’이 포함되었다. 법질서를 강조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던 이명박 정부와 다른 지점이 없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새 정부가 말하는 ‘안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불법폭력시위에 따른 시민의 피해회복을 위한 법률지원도 강화”가 국정과제로 명시되었다는 것은 새 정부가 ‘집단행동=불법’이라고 도식화하고 있으며, 그것은 범죄행위로서 안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정법 위반, 즉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인권 옹호와 권리행사인 한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불법과 폭력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미신고집회와 같은 행위를 마치 폭력인양 보이게 왜곡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한국에서 폭력적 형태의 시위는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며, 헌법상의 권리를 신고의무 불이행만으로 과도하게 막고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이다. 오히려 실정법인 집회시위 관련법을 바꾸는 게 우선이지 시위를 막는 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2008넌 유엔인권이사회의 1차 한국인권상황정기검토(UPR)에서도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라고 권고하였다. 집회시위의 권리는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안전은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롭고 자발적인 삶을 보장받을 때 가능하지, 국가의 통제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회에서 인권이 보호받고 존중받는 시민들이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 정부는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강화는 ‘국가가 개인의 행위와 일상을 규제하겠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과다노출, 지문채취 불응, 업무방해 등은 개인의 행위를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70년대 유행했던 경찰의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던 일이 2013년에 다시 벌어질 것을 상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물론 경찰청 해명자료에는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단속하지는 않겠다며 기존 것이 완화된 것이라 했다.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범칙금이므로 완화된 것이라는 사고에는 행정기구일 뿐인 경찰의 권한행사가 강해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혀 없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발상은 취임사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국가발전’용어에서 뿐 아니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기용에서도 드러난다. 황교안은 여러 유엔인권기구에서 폐지와 개정을 권고했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그가 펴낸 <국가보안법>이라는 책에서 국가보안법은 개정이나 폐지가 필요 없다고 쓸 정도로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침해를 상관하지 않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2005년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된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인신구속을 강행하려고 할 정도로 시대역행적인 공안검사 출신이니, 국가보안법에 의한 국가안보논리 강화와 그에 의한 국민의 입과 발을 묶어두는 일이 일어나기 쉬워 보인다. 그러하기에 새 정부의 국가주의는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인권을 침해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부와는 다른 ‘인권’정책의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에도 이전 정부와는 다른 점은 국정과제에 인권관련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이 아예 빠졌던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큰 변화일수 있다. ‘사회통합적 인권보호체계 구축’을 위해 ‘국가인권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인신보호관제도’ 도입이 제시되어 있다.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제인권기구에서도 수차례 권고했던 것이므로, 어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느냐가 중요하다. 2007년 법무부가 인권위가 권고한 안에서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경력, 성적지향, 학력(學歷), 병력(病歷)’의 7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차별을 조장하는 누더기 차별금지법을 발의해 국내외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것을 떠올려야 한다. 또한 현재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3개나 되는데, 이에 대해 정부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평가지점이 될 수밖에 없다. 보수기독교계가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이들의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새 정부의 국정과제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어,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닐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아니라 ‘제정 추진’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지난 6년간 차별금지법을 검토연구만 했던 이전 정부와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새 정부가 제시한 ‘국가인권정책기본법’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그동안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시된 ‘인권기본법’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2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이 형해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계획의 이행을 점검한다는 수준에서 이야기되는 ‘국가인권정책기본법’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구체적인 추진 과정과 법안의 내용, 효력 등을 봐야지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을 고수하는 새 정부에게서 나타난 인권은

다만 최근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보인 대통령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인권관련 제도와 기구에 대한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에서 인터넷통합을 추구한다며 방송통신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것은 사실상 정보인권의 후퇴이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강조했듯이 독립적인 민간자율기구에서 개인정보보호 기능을 관장하는 것이 필요한데, 오히려 인터넷사업을 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진흥을 관장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발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켜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가와 기업에 의한 개인정보 침해가 많은 현실을 보더라도 개인정보 보호기능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옮겨야 맞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통합’도 ‘소통’도 아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려다가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조직개편안을 수정했던 것에 비하면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부재, 불통은 이전 정부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인권정책을 이명박 정부와의 단순한 비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이명박 정부가 친(親)기업정책으로 무장한 노골적인 반인권정책을 펼친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권이 정치를 치장하는 용어로만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인권정책과 인권의식은 각 행정부처의 구체적인 정책과 집행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끝으로 먼저 박근혜 정부가 죽어가는 노동자들과 장애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냉혹함에서는 인권도, 국민행복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37 호 [기사입력] 2013년 03월 13일 17: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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