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찬의 인권이야기] 똥 쌀 권리

김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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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5일, 성탄절. 갑자기(!) 주어진 휴일을 맞아 놀러 온 노동자들로 복작대는 지구인의 정류장에, 갓 스물을 넘긴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 C(가명)씨와 M(가명)씨가 자기 몸집만한 트렁크를 하나씩 끌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내가 “문제 있어요?” 라고 묻자, 먼저 와서 상담 중이거나 휴식중인 다른 남자노동자들을 둘러보더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 시간 후, 다른 노동자들이 용무를 마치고 상담실을 빠져나가고, 마침내 상담실에 통역을 해야 하는, 입 무거운 남자노동자 한 사람이 남게 되자, 그들은 조심스럽게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저장되어 있는 몇 개의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신들이 3시간 반 동안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짐을 싸서 이곳으로 ‘도망 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 사진들과 동영상은 ‘어둑한 풀밭’, ‘얼어버린 농로’, ‘비닐하우스 뒤편도랑’, ‘연단 화덕이 설치된 비좁은 취사공간’, 다라이와 거기에 걸친 물 끓이는 전기막대 장치‘ 등의 이미지들이 담겨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은 입을 오므려 조용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화장실이 없어요! ”
“뭐라고요? 그게 뭔 소리? 공중화장실도 없어요?”
“없어요. 화장실 없어요.”

위 사진:이주노동자들이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뒤편의 고랑

C씨와 M씨는 야채비닐하우스 30여동에서 일을 했다. 얼추 5,000평이 넘는 시설야채 작업장이다. C씨와 M씨의 숙소는 그 크고 하얀 비닐하우스촌 변두리에 가설된 ‘작고 검은 비닐하우스’ 이다. 의문이 들었다. ‘이런 규모의 작업장에 화장실이 없는 게 말이 되나?’

“지난 3월부터 벌써 9개월째 거기 살았잖아요. 그럼 그동안 어디서 용변을 본거예요?”
“숙소에서 200m 쯤 떨어진 버려진 들판에 여름엔 수풀이 우거졌어요. 거기는 사람들이 잘 안 보이니까 거기까지 가서 용변을 봤어요. 그런데 너무 멀어요. 그래서 조금 동네지리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비닐하우스 뒤편에 밭둑의 도랑을 따라서 용변을 보았어요.”

“그래도 두 사람이 9개월씩이나 화장실 없이 지냈다는 게 납득이 안 돼요. 매일 아침 5시부터 저녁 6시나 7시까지 일했는데……. 일터나 숙소 근처에 화장실이 없다면, 그럼 어디에서 용변을 봐요?”
“매일 같은 곳에 용변을 볼 수 없으니까, 배변할 수 있는 몇 군데를 정하고, 그 근처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용변을 봤어요. 처음엔 3일~5일 배변을 참기도 했어요.”

“참,내...창피했겠다...”
“선생님! 창피했지만 그건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너무 추워서 그렇게 못하겠어요. 한국 겨울 이렇게 추워요 ?”

“사장님한테 화장실 달라고 말 안했어요?”
“여러 번 했어요. ‘너무 추워요. 사장님 화장실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사장님 말했어요. ‘ 한사람 200만 원 줘. 다른 데로 가게 해 줄게. 딴소리 할 거면 캄보디아에 보내 버릴거야!’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너무 슬프고 너무 추워서 그냥 나왔어요.”


게다가 이 작업장엔 일한 후에 몸을 씻을 온수도 없고, 욕실도 없다. 샌드위치 판넬로 가설된 방을 데우는 유일한 난방장치인 연탄보일러는 시간을 맞추어 연탄을 갈아대지 않으면 꺼지기 일쑤이다. 더구나 이 노동자들은 그들이 살아온 20년간 ‘연탄’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겨울에 매일 12시간 가까이 일해도, 그나마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침실마저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어디에 가서 몸을 쉴 수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분노할 겨를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들의 체류권에 심각한 위험을 주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도 안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이탈’하면 안 된다. 많은 사용자들이 ‘이탈신고’라는 것을 하는데,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1개월 안에 당국에 근거를 가진 항변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미등록 노동자’(한국 법무부의 호칭으로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관할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진정을 하고 전화를 걸어 구제방법을 물었다. 그 직원이 답한다.

“그래요? 참 안됐네요. …… 그런데, 지금 노동자들한테는 고용센터에 진정할 권리가 없고, 사장님이 ‘이탈신고’를 하면, 근로자들이 ‘불법’이 되니까, 지금 노동자들은 작업장으로 복귀해야해요.”

화가 난다.
“아니, 이렇게 추워서 취사하고 목욕하는 공간의 물들도 꽁꽁 얼어붙은 데다가, 화장실도 없고, 난방도 안 되는데 그 곳으로 돌아가란 말이에요? 노동자들이 창피해서가 아니라, 추워서 절대로 거기로 갈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지금 일터를 떠나면 안돼요. 일터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고용센터는 직권으로 노동자들의 사업장을 변경해줄 수 없어요. 사장님이 허락해야 돼요.”

위 사진:비닐하우스 옆에 위치한 주거시설(왼쪽), 취사공간이자 욕실이지만 배수시설이 없음(오른쪽)

하는 수 없이 관할 노동청 근로감독과에 다시 진정을 하였다. 진정요지는 첫째, 매월 300~315시간씩 일했는데 월급을 1,034,000원을 지급한 것, 둘째, 화장실이 없고, 근로자들이 화장실을 요구하자, 사장이 노동자 1인당 2,000,000 만원씩의 금품을 요구하는 등 현실적으로 주거와 근로가 불가능하다는 것.

한참 머리를 극적이던 근로감독관이 말한다.
“아무리 알아봐도,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령에 화장실에 대한 규정이 없네요.”
“그러면 조사 안하실거예요?”
“하기는 할 텐데, 임금 부족분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어요. 화장실에 대해서는 사용자에게 구두로 ‘권고’할 수는 있지만 법령에 명시된 것이 없으니 강제할 수 없어요…….”

그렇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화장실’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니, 근로감독관들이 머리만 극적일 수는 있겠다. 그런데, “안전하게 배변하는 것”은 생존권적 기본권이 아닌가? 그런데 정부기관이 현행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데도 극도로 인색한 상황이라면,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은 권리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허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다. 이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화장실 없는 노동자들이 어깨동무하고, '노동청에 가서 원 없이 똥을 누는 운동' 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이찬 님은 지구인의 정류장의 상임 역무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344 호 [기사입력] 2013년 05월 08일 20: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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