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 폭동] 너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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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지고, 초여름인 것처럼 더워졌다. 6월 초쯤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나는 만으로 열여덟 해를 살았는데,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열네 번째로 진행된다고 한다. 올해 내가 축제에 참여한다면 세 번째로 참여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왜?

열일곱 여름, 처음 서울에서 독립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던 때, 퀴어퍼레이드에도 처음 참가했었다. 청소년 성소수자 부스를 꾸리는 팀에 들어가 부스를 기획했기 때문에 퍼레이드 날에도 부스를 함께 담당했다. 초저녁쯤 퍼레이드가 끝이 났을 때, 애프터파티가 진행된다는 공지를 들었다. 애프터파티에 참여할 기대에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던 중, 누군가 말해주었다. 청소년은 애프터파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다른 비청소년들과 같이 나도 부스를 꾸렸으니 이 축제에 일조한 것이 있는 셈인데, 청소년이라 파티에 참여하지 못한다니 기분이 좀 나빴다.

이후에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들으니 자기는 파티에 참여했다고 했다. 내가 “청소년은 못 들어간다던데?”라고 묻자 그 사람은 신분증을 검사하던 담당자가 자신이랑 안면이 있는 활동가여서 눈감아주었다고 답했다.

다음 해, 내가 활동하고 있는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퀴어퍼레이드가 끝난 후 청소년들도 파티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를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의 어느 활동가와 나누다, 나이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는 파티를 퀴어문화축제가 지원하는 ‘스페셜 이벤트’사업으로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주최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은 파티 준비를 시작했고, 퀴어문화축제에서 소개해준 홍대 부근의 레즈비언 클럽 사장과 미팅을 했다.

파티를 열 클럽의 사장을 만나러 가기 전이면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들은 우리 착한 청소년처럼 보여야 해, 라고 서로에게 말하곤 했다. 우리 같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에 대한 낙인이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소 대여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을뿐더러, 우리는 청소년이 들어올 수 있는 파티라고 열었는데 ‘성인 전용’파티와는 다르게 술도 없고 담배도 못 피우는, 그런 파티를 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협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린 우리가 전혀 공격적이지 않고 이른바 ‘날라리’ 청소년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사장을 안심시켜 협상에 유리한 지점을 얻고자 했다. 우리가 사회에서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금지해버리는 것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책임지고 파티를 잘 진행할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그래서 난 일부러 흡연을 참고 담배냄새를 없앤 후 사장을 만나러 가곤 했다.

우리의 노력 덕분인지 클럽 사장은 익일 1시까지 개장하고, 알코올이 적게 들어간 칵테일을 판매하는 것까지는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기뻐하고 있었는데, 퀴어문화축제 파티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적인 문제와 사회 인식이라는 문제들이 있어 술과 담배가 허용되는 파티라면 퀴어문화축제가 지원하기 어렵다고 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긴급회의를 몇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는 갓 만들어진 모임이라 재정도 전혀 없었고, 주변에 후원을 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성인전용 파티는 술과 담배로 흥겹게 밤을 지새울 텐데, 청소년보호법에서 지정한 모든 것이 금지되는 파티가 과연 청소년이 들어올 수는 있다는 것만으로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 대안이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위 사진:작년 퀴어페스티발 뒤풀이를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참여 할 수 있게 준비한 행사 홍보 웹자보

왜 우리는 함께하지 못하는가?

나는 열다섯 때부터 술을 마셨다. 열여섯 즈음, 청소년들이 기획하는 인문학강좌 프로그램이 있어서 기획단원으로 들어갔었다. 기획단원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열아홉 살인 사람들이었고, 뒤풀이를 할 때면 슈퍼에서 술을 사와 함께 사무실에서 마셨다. 그런데 해가 넘어가고 그들이 스무 살이 되자, 갑자기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낄 수 없었고, 끼려고 해도 나와 함께 가면 ‘뚫리는’술집을 찾아 삼 만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청소년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너네, 섹스하고 싶구나?’라고만 알아듣고,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다보면 ‘너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혹은 ‘술이랑 담배가 그렇게 청소년 인권에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 뭐 이런 말들이 꼭 틀린 것도, 그렇다고 꼭 정확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 중에서도 눈치 안 보고 섹스할 수 있는 권리가 매우 중요한 사람도 있고, 술 담배 사는 게 가장 절실한 청소년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섹스, 술, 담배 등 어른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허용해주는 것으로 끝이 나면 안 되지만, 섹스와 술과 담배가 청소년의 인권에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른들은 할 수 있는데 청소년은 못 하는 것들을 만들어놓는 건 결국 청소년이 사회 참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하는 게 필요하다. 어른들이 좀 참고 술을 마시는 대신 차를 마시며 청소년들과 뒤풀이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과도기적 대안일 수 있기에, 많은 운동단체에서 청소년과 함께 뒤풀이를 하기 위해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많은 경우 비청소년들이 만나고 의견을 나누고 힘을 모으는 장소는 술집이고, 사실 음주가 빠지는 친목이 별로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배제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분리하고 청소년을 주류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상은, 청소년에게만 술과 담배가 금지되는 실태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어 단순히 유흥문화 또는 뒤풀이문화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물론 어떨 땐 술 자체가 마시고 싶기도 하고, 담배도 단지 니코틴이 그리워 피울 때도 있지만, 우리가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할 때 꼭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사람들은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담배를 피울 때 단지 음주와 흡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교하고 친목하고 참여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이 술과 담배를 하면 건강에 안 좋아, 와 같은 핑계로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을 금지하는 것은 절대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권리는 너무나 필수적이다. 내가 비청소년들과 함께 술집에 가려 할 때, 신분증 검사를 하며 술집에서 나를 밀어내면 단지 술을 못 마셔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은 함께하려 해도 나 때문에 자리를 옮기며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서러웠다.

열일곱, 한 운동단체에서 행사를 마치고 함께 뒤풀이 자리로 이동하는데 나와 내 또래들에게 뒤풀이 자리에 오지 말라는 문자가 온 적이 있었다. 허탈해서 그 술집 앞에 앉아 담배나 뻑뻑 피우고 있는데 다행히 그 단체의 다른 비청소년 활동가의 문제제기로 술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그 술집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공유했던 경험들, 쌓았던 친목, 그런 것들은 분명 소중했다. 다른 사람들도 만약 자신의 어떤 특성 때문에 뒤풀이 자리에, 친목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분명 내가 청소년이라 느꼈던 만큼의 서러움을 느낄 것이다.

어떤, 작은 순간들

나는 이제 열아홉, 곧 스무 살이 된다. 그리고 사실 늙어보여서 그런지 근 일 년 동안은 신분증 검사를 받아본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술집을 출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청소년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뒤풀이 장소를 술집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있는데, 가끔 술집 문턱에 선 그분들의 긴장된 얼굴과, ‘뚫릴까? 안 뚫릴까?’ 하는 표정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사실 인권 감수성이라고 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긴장들, 이런 서럽고 상처받는 작은 순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인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어 법적으론 청소년이 아니게 된다 해도, 이런 작은 순간 하나하나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46 호 [기사입력] 2013년 05월 22일 15: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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