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상가임차인 보호냐, 재산권 제한이냐를 넘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인권의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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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 가게를 열어 2년쯤 되니 장사도 슬슬 자리가 잡히고 대출받은 돈도 몇 년 안에 갚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건물이 팔렸다며 새로 바뀐 건물주가 나가라고 한다(신사동 ‘우장창창’). 한적한 골목이라 걱정하면서도 카페를 꾸며 커피를 팔기 시작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1년도 안 됐는데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며 나가라고 한다(방화동 카페 ‘그’). 중국집을 차린 지 수 년이 지나 입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짜장면을 먹는 가게가 됐다. 임대차계약을 다시 하려니 건물주가 보증금 4천만/월세 650만 원이던 임대료를 보증금 2억/월세 1,55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한다(서린동 ‘산동’).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상가 임차인들의 억울함을 덜기 위해 2001년 12월 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

자영업자의 비중이 20%를 넘으니 억울하게 쫓겨난 이야기들을 주위에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법하다. 최근 상가 임차인들이 이대로 당할 수 없다며 모이기 시작했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아래, 상가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가법은 5년의 임대기간 보장, 임대료 상한의 제한, 보증금의 우선 변제 등 상가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상가법 제2조). 다시 말해,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얼마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3억 원 이하일 때 상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한 상가 투자정보업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상권의 가게 네 곳 중 세 곳이 상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임대인이 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사례들도 알려지고 있다.

적용 범위에 해당하더라도 임대차계약은 해지될 수 있다. 임차인은 5년까지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임대인이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목적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상가법 제10조 제1항 제7호)은 대표적으로 악용되는 조항이다. 이미 강제퇴거를 당하고 오랜 기간 싸웠던 홍대 인근의 칼국수집 ‘두리반’도 그랬고, 전재용 씨(전두환의 둘째 아들)가 사들인 서소문동의 건물에서 세입자들을 나가라고 할 때에도, 문제는 이 조항이었다. 임대인은 ‘재건축 할 테니 나가라’고만 통지해도 내보낼 권한을 얻게 된다.

위 두 가지 문제점은 현재 19대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가법 개정안들이 다루는 주요 내용이다. 적용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재건축 단서조항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그 외 임대료 상한률 인하, 보증금 우선 변제권 보강, 계약갱신청구 가능 기간 연장 등도 개정안들에 포함되어 있다. 한편 위 두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이 청구되어, 헌법재판소에서도 두 조항을 다루게 될 예정이다.

흠칫 놀랄 만한 해외 사례들

상가법 개정을 위해 참고할 만한 사례는 많을 것이다. 프랑스의 상가임대차 법제(법무부, <임대차법제의 비교법적 연구>, 2010)를 살펴보자. 프랑스에서는 상가건물의 임차인에게 최소 9년의 임대기간을 보장한다. 임차인은 3년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임대인은 특별한 요건 하에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9년의 임대기간이 지나면 임차인은 다시 9년의 임대차계약을 요구할 수 있다. 종전 3년 동안 고객을 유지하며 실제로 영업활동을 했다는 사실만 있으면 된다. 임대인이 이를 거절할 때에는 계약의 종료에 따른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임차인이 상실하게 될 고객의 가치와 이전비용, 동등한 가치가 있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 보상해야 할 손실의 범위에 포함된다. (한국의 토지보상법인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나 각종 개발 관련 법령이 정하는 ‘보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임대인이 계약 기간 안에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특정한 건축계획이 있고 임차인에게 손실을 보상하는 경우로 제한된다. 한국의 재건축 단서 조항과 비슷한 경우다. 그러나 막연히 재건축을 하겠다는 의사가 아니라 임차인이 건물을 비워야만 하는 ‘특정한 건축계획’이 필요하다. 이것은 반드시 서면으로 집달관을 통해 임차인에게 송달되어야 하며 손실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야 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동일한 가치가 있는 대체상가와 이사비용 제공을 제안할 수도 있는데, 이 제안을 수락할지 손실보상을 청구할지는 임차인이 정한다. 그외 임차인이 반복해서 임대료를 연체하면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데, 이때에도 임대인은 법원의 판결을 구해야 하며, 임차인은 법원에 기간 연장을 청구하거나 연체한 임대료를 내서 해지권의 행사를 저지할 수 있다.

일본에는 재개발을 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례(동경지법 쇼와 62.6.16 판시 1269호 101항)도 있다. 한 부동산업자가 재개발을 하려고 일대의 토지건물을 사서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비용(한화 약 8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도 전했다. 그러나 법원은 “건물을 스스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 노후화했기 때문에 재건축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도심부에서의 택지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재개발을 하기 위한 것”이므로 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국에서는 흠칫 놀라며 물러설 만한 사례들이다.

위 사진:까페 '그'의 모습 [출처; 페이스북 그룹 <카페 그를 지키려는 사람들>]

강자가 양보하는 만큼의 약자 보호?

19대 국회에 발의된 상가법 개정안들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쟁점은 “임대인의 재산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과 “사회․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 사이의 충돌에 있다. 그래서 누가 ‘보호받을 만한’ 임차인인지가 쟁점이 된다. 제정 당시부터 최근의 개정 논의까지, 적용범위의 상한액을 없앨 것인지, 조정할 것인지, 업종별로 제한을 둬야 하지는 않을지, 공장도 보호받아야 하는지, 비영리 공익활동을 위한 임차도 보호받아야 하는지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제한이 ‘과도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에만 ‘보호’가 시작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몇 년까지 보장할 것인지, 임대료 상한을 어느 정도 제한할 것인지 등의 논의는 모두 이 점을 증명해야 한다. 19대 국회에 발의된 강제퇴거금지법안에 대한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의 핵심 의견도 “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다. 지나치다? ……

강자가 양보하는 만큼의 보호라는 것은 기만적이다. 과도한지 적절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강자이기 때문이다. 소유권자가 해당 건물에서 거주하거나 영업하는 사람에게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을 재산권의 당연한 행사로 보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부분 제한하자는 접근은 언제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우연히 맘 좋은 임대인을 만나면 다행이고, 평범한 임대인을 만나면 억울하고, 고약한 임대인을 만나면 화병이 생기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떤 임대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임차인의 삶이 달라진다는 점이야말로 임차인이 당하는 횡포의 본질이다. 상가법의 문제점은 ‘보호’가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권리를 법이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보장되는 재산권은 헌법이 명시한 다른 권리와 동등한 권리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흔히 놓치는 이 조항의 의미는 재산권이 언제나 법률을 통해 내용과 한계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즉, 상가법은 재산권을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를 정하고 보장하는 법이다.

재산권은 움직이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산권이 마치 법 이전에 존재하는 본원적 권리인 듯 받아들이고,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한다. 로크 이래로 형성된 소유권 절대주의는 그 논리적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하다. 그러나 “재산권이란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관계다.”(맥퍼슨, <재산권의 의미>, 『재산권 사상의 흐름』. 도서출판 천지) 맥퍼슨은 재산권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며 “사용이나 수익으로부터 타인에 의해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가 재산권이라고 말한다(<자유민주주의와 사유재산권>). 무엇이 ‘재산권’으로 절대화되는가는 특정한 집단 사이의 정치적 힘에 의해 결정된다.

강제퇴거금지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는 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와 동시에 각종 공익사업의 추진이 어려워질 것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공익사업’이란 각종 개발 사업을 포함하여 국가가 추진하는 모든 국책사업들을 아우른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건설 등. 우리는 이것에 맞서는 사람들의 권리가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임대인의 권리를 재산권으로 절대화하려는 힘은 개별 임대인들의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보장하는 것 이상을 노리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힘은 재개발 조합이 세입자들을 내쫓을 수 있는 힘이 되고, 거대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이 공간을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강으로 메주를 쑨대도 따라야 하는 힘이 되고, 민간 자본이 장악한 공공역사에서 ‘비시민’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쫓아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로 싸맨 ‘재산권’은 이러한 힘을 옹호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살아갈 장소에 대한 권리

누군가 일하면서 흘린 땀이 그/녀의 것이 아닌 힘에 압류당하고 있다. 그 힘은 땀 흘리는 사람들을 노동의 수단과 생산의 장소로부터 배제하고 있다. 용산4구역의 상가세입자들이 제 삶을 묻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참사의 현장, 잡초만 무성한 그 곳의 풍경은 이 힘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줬다. 사람이 사라진 폐허.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힘”(칼 맑스, 공산당 선언)은 누구에게도 ‘권리’로 보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노동을 배타적 소유의 권원으로 삼는 17세기 자유주의 이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권리는, 설령 그것에 ‘재산권’이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내 것’에 대한 권리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의 노동을 통해 평등하게 만나고 돌보며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권리의 이름을 줘야 한다.

누구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장소가 필요하다.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나눈다. 어떤 장소에서 내쫓긴다는 것은 단순히 손실이 생긴다거나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온 한 세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인정하고 굴복하라는 폭력이다. 우리가 서로 근본적으로 동등한 인간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질서인 것이다. 강제퇴거는 그래서 인권의 문제다. 누군가를 함부로 내쫓을 수 있는 폭력에 ‘권리’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임대인은 퇴거를 요구하는 위치가 아니라 부탁하고 간청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임대인에게는 건물일 뿐이지만 임차인에게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재산권의 내용을 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49 호 [기사입력] 2013년 06월 12일 17: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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