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처벌이 무슨 의미일까요?

성매매 여성이 검사에게 보내는 진술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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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가명)씨는 성매매 업소 관리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경찰에 가해자를 고소하여 현재 [이룸]상담소에서 법률지원을 받아 사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은씨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한 후에 상담소를 찾아왔습니다.
지은씨는 손님과 업소주변인들이 성매매업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고, 업소의 여성들은 ‘내가 이런 곳에서 일하니, 어쩔수 없다’라며 빈번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상황에 침묵하고, 막상 범죄피해를 신고를 하려해도 성매매방지법으로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좌절하게 되는 현실에 맞서 끝까지 싸워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7월 말 검찰청에서 가해자와 두 번째 대질 조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조사과정에 참여했던 지은씨가 이날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해자의 거짓말과 변명, 지은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은 첫 대질 조사 때보다 거칠어졌고,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지은씨가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지은씨가 “언니, 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작게 말했습니다. 그날 지은씨가 집에 돌아가서 담당검사에게 쓴 진정서를 인권오름과 함께 읽고 싶어서 지은씨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을 오늘 느낀 바대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대질조사를 하며 몹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가해자의 얼토당토않은 언행들 또한 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감을 다시 한 번 준 것도 사실이지만 가해자의 억지 주장들을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닌데 이번 대질조사에선 듣고 있노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 신고를 하기 전엔 저 또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사과도 없이 용서하자니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해자가 성추행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저도 그로써 끝내려는 마음 또한 있었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신고를 하고 고소를 하면서 저놈이 인정을 하던 하지 않던 내게 성추행 한 것이 사실이니 무조건 죄의 대가를 지불하게 하자하여 강하게 법적 처벌을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대질조사 후에 가해자는 성추행을 하게 된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온갖 거짓말들과 비방들, 억지주장들, 비겁한 변명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믿고 저러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처벌이 무슨 의미일까요?

결국에 가선 가해자가 저에게 성추행을 한 것이 진실이기에 죗값을 당연히 치르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과연 가해자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처벌이 무슨 의미일까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진술과 조사과정에서 저는 가해자에게 죄를 인정시키기는커녕 제가 도리어 상처받고 멍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고 이로 인해 제 자신에게 또 다른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조사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서러워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습니다.


오늘의 대질조사에서 가해자에 대해 분노하고 화를 냈던 것들은 어쩌면 저를 향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욕심나고 이루고 싶었기에 이 지경이 된 것인지. 결국엔 저의 허황된 꿈들과 명예욕**이 도리어 저를 나락으로 추락시킨 것이 아닌가란 자괴감이 심하게 듭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분명 억울한 성추행을 당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기억을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기억이 희미하였더라면 이런 신고도 하지 않고 더 좋았을 것만 같다는 생각까지 오늘은 드는 하루입니다.

물론 [이룸] 상담소의 좋은 선생님께서 곁에서 응원을 해주시고 애써주시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제가 벌인 일들이고 저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길이기에 너무나 두렵고 불안하며 세상살이가 서글프고 외롭습니다. 또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눈물이 흐릅니다.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습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죄에 대한 처벌을 한다 해서 이 모욕감과 억울함이 풀릴지 이제는 의문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고소를 취하하거나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가해자에 대항하여 모든 진실을 밝히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제 가슴을 치며 처절하게 목 놓아 울던 저희 큰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검사님과의 대면 후 혹시나 진실이 풀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억울함이든 제가 주장하는 억울함이든 검사님의 공명정대한 판단력으로 명명백백 밝혀지리라 더욱 믿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해자의 성추행 사실이 입증되어 가해자가 처벌만을 받기보단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며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주었는지 깨닫고 죄 값을 치르길 바라지만.. 너무 큰 바람이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지요. 그래서 더 마음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대질조사후의 진술서에서는 너무 감정적으로 두서없이 서술된 것 같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현행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성매매 현장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합니다.

** 김지은 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어 빠른 시일 내에 학비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성매매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은 씨가 ‘허황된 꿈과 명예욕’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대학진학’를 뜻합니다.

인권오름 제 359 호 [기사입력] 2013년 08월 21일 18: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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