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도의 인권이야기] 고무줄 노동, 고무줄 임금, 벙어리 냉가슴 앓는 공단노동자

박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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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출근한 날이 정말로 적어요. 여차하면 60만원도 못 받겠어요. 큰 일 났어요. 빚도 많은데….” 전자산업 하청노동자가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3월만 해도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일요일도 없고, 매일 잔업 특근 했거든요.” 그러면서 3월 임금명세표를 보여주었다. 시급 4,860원 최저임금 노동자였지만, 임금총액이 211만원이었다. 하루 4시간 연장근무는 기본이고, 토요일, 일요일 한 번을 못 쉬고 일했다고 한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서여서, 물량이 밀리다보니 아무도 쉰다는 말을 못 꺼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양상이 확 바뀌었다. 일감 없다고 회사가 조기 퇴근 시키더니, 이제는 아예 격일 근무까지 시키고 있다고 한다. “물량 없다고 나오지 마래요. 그리고 쉬는 거니까 연차에서 깐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같은 또래의 노동자에게 남은(?) 연차가 ‘-20’이라고 한다. 그 만큼 임금에서 ‘까이는’ 거다. 임금명세서에 ‘무급휴무’라고 찍힌 날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가장 속상한 것은 병가 낼 때에요. 저희는 병가제도가 없어서 연차․반차 내고 다녀오거든요. 그런데 남은 연차가 –20이면 병원 다녀오는 게 무급처리되요. 아줌마들 반차만 쓸라고 택시타고 다녀오고…, 그렇게 해서 번 일당이 택시비, 약값하고 똑같아요. 정말 속상해요.”

물량이 없어서 휴업하면 조기 퇴근시키더라도 임금을 줘야 한다. 물량이 없어 일을 못시켜도 회사 측 사유이기 때문에 하루 일당은 계산해 주어야 한다. 휴업을 하게 되면, 휴업수당 70%라도 줘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이를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는 물량이 없어 쉬는 날을 노동자에게 연차를 쓰게 한다.

“휴업수당, 고만큼이라도 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쉬고 싶어서 쉬는 것도 아니고, 어디 다른 데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노동자에게 한 달 월급 80만원은 너무나도 참혹한 금액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라는 제도가 있다. 1998년에 재도입되었고, 2003년 법정노동시간이 주40시간으로 단축될 때, 근로시간을 3개월 단위로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확대되었다. 이 제도를 간단히 설명하면, 평균 근로시간이 40시간만 되면 하루에 12시간 일을 시켜도 연장근무를 시킨 4시간에 대해서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만일 물량이 없어 4시간만 일을 시켜야 할 경우, 지난주에 12시간 일을 시켰다면, 사용주가 노동자를 조퇴시키더라도 하루 일당을 다 안주어도 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2012년 고용노동부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을 1년 단위로 확대 실시할 수 있도록 법을 추진한 바가 있다. 2013년에는 아예 국회의원들이 나섰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협의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도입도 함께 포함시킨 것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자’는 논의를 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확대하자는 안을 김성태 의원과 이완영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연장근로 제한 범위에 휴일근로시간을 포함시키는 것에 재계는 반발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도입을 위한 법안 심사 논의는 일단 중단되었다.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기에는 공단사업주들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노동자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3~6개월 단위로 물량이 늘었다 줄기 때문에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 생산유연성이 높다는 전자산업이라 할지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개월 단위로 일거리가 늘었다 줄었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물량수급의 변화에 따라 사업주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가 있다. 그리되면 공단사업주들은 연장근로수당을 안 주어도 될 뿐만 아니라, 일감이 없어 조퇴를 시켜도 하루 일당을 다 주지 않아도 된다. 또 오랜 기간 일감이 없을 땐, 격일 근무시키면서 연차휴가를 소비시키는 꼼수를 쓰지 않고, 하루 4시간씩 근무하게 하는 식으로 해서 임금을 덜 주어도 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이렇게 불법적으로 휴업수당 떼먹고, 일당 안주던 사업주들의 못된 관행을 합법적으로 제도화 한다. 거기에다 연장근로수당까지 주지 않아도 되는 선물까지 얹어 준다.

근로기준법이 불법적으로 휴업수당 떼먹는 관행을 바로잡도록 강제하기는커녕, 전자산업 하청노동자, 공단노동자의 임금을 다시 한 번 더 떼먹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게 무슨 ‘근로기준법’인가? 어떤 이유로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도입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박준도 님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 입니다.
인권오름 제 361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04일 21: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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