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안녕한가요] 합의 1년, 두물머리 탐방기

김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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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두물머리 싸움이 일단락된 후 1년이 지났다. 4대강 공사의 문제들이 공식적으로 불거져나오는 요즘, 두물머리와 그 곳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인권오름>은 두물머리밭전위원회가 기획, 발송하는 두물머리 1년의 소식을 연재한다. 강이 강처럼 흐르고, 땅이 땅처럼 펼쳐지는 세상에서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두물머리에 갔다. 합의 후 1년. 가끔, 두물머리가 생각이 났고, 더듬어 생각해보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두 번씩은 두물머리에 다녀온 듯하다. 2013년 8월 18일. 이 날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작년 여름 이후, 나는 직장이 바뀌었고 삶의 많은 부분들에 변화가 찾아왔지만 별로 특별할 것 없이 하루하루가 갔다. 해바라기와 함께 뜨거운 여름이 가고 마지막(?) 추수와 함께 가을이 가고 눈 덮인 겨울이 지나 봄, 그리고 어느덧 찾아온 여름이었을 뿐. 일요일이었고 TV를 하루 종일 봤다. 그러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문득 몸을 털고 일어났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신발을 신었다. 아- 이번 여름에도, 두물머리는 안녕하신가.

두물머리를 가끔은 가보고 싶다. 그러나 그 마음만큼 그곳에 가질 않는다. 변해버린 옛 사랑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듯한, 어색하고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가장 어색해진 건, 옛 그 한강상회 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강상회를 끼고 돌 때 하늘을 덮던 나무들이 있었고 곡선으로 휜 유리창을 큼직하게 달아놓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을 지나면 ‘여기는 두물머리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공기가 있었다. 관광객들이 들어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느끼고 돌아가기도 하던 두물머리 초입. 한 때는 유일한 통로처럼 여겨졌던 그 길을 나는 좋아했다. 그리고 그 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쪽으로는 가보지 않았다. 이제는 11번 다리가 있는 데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이제 그곳도 주차장으로 완비되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느니 이번엔 아주 새로운 길로 가보자. 이제는 1구역 이라고 부르게 된, 1년 전에는 길이 있는지도 몰랐던 어떤 지점에서부터.

1구역

두물머리 협의체가 한 달 전쯤인가 중간보고를 했다. 이후 생태학습장이 될 두물머리는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익숙한 곳은 3구역, 4구역, 5구역 정도다. 11번 교각에서 들어오는 곳, 그리고 두물머리 농지였던 곳, 마지막으로 느티나무 있는 산책로가 있는 곳. 그렇다면 1, 2 구역은 어딘가. 명확한 경계점은 모르겠다. 그저 1구역은 북한강 방면, 예전 행정대집행 기간 중 다리 밑에서 싸울 때 굴삭기가 작업하던 곳이다. 그러니까 지도상으론 양수리 서쪽 강가인데 내 머릿속엔 없던 곳이다.

위 사진:1구역 애벌레 생태학교 쪽 부지와 새로 만들어진 길 [사진: 김디온]

아무런 표식도 없이, 길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길을 갔다. 한눈에도 여긴 ‘공사해서 만든 자연 공간’이라는 게 확연한 곳이다. 제멋대로 만들어지는 어쩌구 광장과 저쩌구 길, 그리고 역시 억지로 심어진 듯 어색한 나무들. 1구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애벌레 생태학교 쪽 부지는 기초가 다져진 모양이고. 암튼 여기도 두물머리라 부르려니 영 어색하다. 그냥 1구역이 낫겠다.

두물머리 대지미술, 환삼덩굴 평원에 대하여

강을 따라 걸었다. 11번 교각이 저 앞에 있고 그 길로 접어든다. 길바닥이 어색하다. 두물머리에서 더 이상 흙을 밟을 수 없다. 작년까지 흙땅과 풀꽃과 부들이 자라던 곳과 밭둑으로 이어지던 길이 ‘관리용 도로’라는 것에 묻혔다. 여기쯤, 아니면 저기쯤? 이제 내가 2년간 에코토피아 친구들과 또 엄마와 함께 농사지었던 밭자리는 가늠이 잘 안 된다. 기억 어디쯤이 잘려나간 것 같다.

위 사진:포장된 길과 환삼덩굴 평원 [사진: 김디온]

그리고 이와 함께 두물머리 농지는 지난 1년 동안 ‘자연상태’로 ‘복원’되었다. 바닥에 잡석을 잔뜩 부어 길을 낸 곳을 제외하면 농지였던 곳의 거의 90%를 환삼덩굴이 덮은 상태이다. 간간히 나무를 남겨두지 않았다면 거대한 환삼덩굴 평원이라 이름 붙여도 좋았을 거다. 강은 풀 높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인내심 많은, 경관 따위 상관없는 커플 관광객 일부만이 두물머리 끝까지 걷긴 했지만 웬만해선 저 녹색의 지루함을 참긴 힘들다. 뭐랄까. 이 또한 하나의 이색풍경, 누군가 4대강공사로 변하는 풍경에 대해 말했듯이 일종의 ‘대지미술’이 아닐까. ‘녹색성장’이란 이름의.

위 사진:두물머리 미사터와 찢겨나간 표지판

마침내 두물머리 끝 지점에 다다랐다. 그간 몇 번 봐서 조금 익숙해진 ‘두물경’ 바윗덩이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몇 달 전과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문화재 조사를 한다고 옛 농지였던 곳을 군데군데 파놓은 것, 그리고 예전에 4대강사업의 치적을 자랑하려 농민들을 쓰레기더미 생산자로 묘사했던 몹쓸 홍보물 판의 포장지가 거칠게 벗겨졌다는 것. 안내판에는 두물머리가 원래 옛날부터 돌이 많았던 데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돌을 쌓은 건가? 나는 두물머리는 돌멩이 하나 없는 모래퇴적층으로 경험했는데. 우린 맨땅에 물을 붓고 머드축제를 즐기기까지 했는데……. 아무튼, 저들이 세웠던 돌무덤은 일부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남아있고, 일부는 무너졌으며, 미사 터 끝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는 무너진 돌무덤 위에 사람들이 잔돌을 올려 작은 돌장승같은 걸 만들어놓았다.

기도하는 사람들

옛 미사 터 자리. 공사 중이며 황량하기까지 한 이곳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들은 또 하나 둘 와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강가에 있던 바위엔 어떤 남자가 자전거를 옆에 누이고는 말없이 강을 보았다. 하염없이 족자섬인지 강인지를 바라보면서. 저쪽에선 누군가는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풍경의 끝에서 예전에 두물머리에서 본 적 없었던 흰여뀌를 보았다.

위 사진:무너진 돌무덤과 두물머리 미사터를 거니는 사람들 [사진: 김디온]

두물머리, 논둑에 앉아

두물머리 끝까지 갔다 돌아 나오는 길. 충격이 가라앉고(무슨 충격? 새삼스레) 마음이 푹 가라앉았다. 누구 하나 붙잡고 말 걸 사람도 없이.

위 사진:문화재 발굴조사 안내문, 4대강 때 이사왔지만 살아남지 못한 나무, 여전히 솟구쳐오르는 용버들 [사진: 김디온]

서서히 사물들이 보였다. 김병인 농부 호박, 아욱 자라던 자리는 문화재 조사 중, 노태환 농부 농막 앞자리도, 최요왕 농부 파프리카 자라던 데도 파놓았다. 정확치는 않다. 사방세계의 지표들이 사라진 상태니까. 방향은 알겠는데 거리는 모르겠다. 이전에 논이었던 데에선 벼인지 피인지 자라고 있다. 규섭 아저씨 하우스 앞자리엔 크로바가 흔적처럼 남아있고, 요왕 아저씨 농막 부근에는 그 빌어먹을 달뿌리풀이 꼭 그곳에만 몇 가닥 올라와 있었다. 두물머리밭전위원회 사람들이 농사짓던 곳엔 작년 이맘때처럼 키가 나만치 큰 망초들이 환삼덩굴을 제치고 군락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용버들, 규섭 아저씨 하우스에서 공동논과 밭전위 밭 가는 삼거리길 앞에서, 깻잎을 보았다. 유일한 농사의 흔적인가? 마음이 이상해졌다. 힐을 신고 있었고 또 발목이 드러난 상태였지만 엉거주춤, 환삼덩굴 숲을 지나 옛 공동논 쪽으로 들어갔다. 길이 있던 곳은 그래도 길이라 풀이 좀 덜하였다.

위 사진:함께 일구던 논과 밭 [사진: 김디온]

익숙한 나무와 함께 논이 나왔다. 가막사리로 덮인.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피로 덮이긴 했지, 아마. 그 앞 논둑에 앉았다. 고마리가 방석이 되어주었고. 그때서야 나는 가방에서 막걸리와 담배를 꺼낼 수가 있었다.

오 랜 만 입 니 다

나무에게도 조금, 고마리에게도 조금 막걸리를 뿌려주었다. 뭔가 기록할 것이, 생각이 날지 모른다며 챙겨왔던 노트는 소용이 없었다. 역시나 아무 생각이 안 나네. 무슨 기억상실증도 아니고.

그렇게, 두물머리의 당장의 프로그램 개발이나 생태적 조성에 관해서는 별 도움이 안 될, 이상한 탐방을 다녀왔다. 이제 올해 말, 두물머리 협의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운영주체를 논하는 자리가 올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새로운 두물머리 생태학습장 건설… 거버넌스…
덧붙이는 글
김디온 님은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64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30일 19: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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