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과 인권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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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녀, 댓글녀, 인터넷 댓글 사건 … 이 명명들은 잘못되었다. 첫째, 어떤 여성의 언행이 문제시된 사건에서 해당 여성을 비난하는 어조를 담아 "...녀"라고 부르는 인터넷 언어 습관은 여성 비하적이다. 이 여성과 함께 인터넷에서 활동한 남성 국가정보원 직원들과 민간인들의 경우 "국정원남" 혹은 "댓글남"이라고 거의 불리지 않는다. 언론마저 이 언어 습관을 답습하는 최근의 풍조는 어불성설이다.

둘째, 여성 비하 의도가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국정원녀"라는 호칭이 널리 퍼진 데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국민적 조롱을 한껏 담으려는 시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명명은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여기에 묶어 버렸다. 이 사건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자 선거 유린이라고 크게 분노하는 사람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댓글 달기" 정도의 비중으로 이 사건을 간주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여성 폄하와 착종되었던 사건 명명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댓글이나 다는 국정원, 쪼잔한 7급 공무원들, 그러나 댓글 다는 정도가 선거와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클릭을 하며 노린 것

그러니 잘못된 명명이다. 이 여성은 개인적으로 비하될 대상도 아니고 그 활동 역시 비하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국정원의 조직적인 명령에 의해 임무를 수행한 초급 요원이었다. 실제로 이 요원의 주요 활동은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댓글' 달기에 머문 것이 아니기도 했다. 오늘의 유머에서 이 요원이 석 달 남짓 수행한 업무는 협조자들과 함께 대체로 9시~18시 사이의 근무 시간 내에 390개에 이르는 '글쓰기'를 하고, 1,467개의 '반대' 클릭을 하고, 1,375개의 '찬성' 클릭을 하는 것이었다. 사소해 보이는가? 업무는 매우 진지하게 설계된 것이었고 실제 성과에 이르렀다.

심리전단 7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인터넷 커뮤니티"를 담당하는 팀에 속한 이 요원은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과 여론 형성 메커니즘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의 초기 여론 형성은 평판에 의해 좌우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출퇴근 길에 우리는 평소 방문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다른 이들이 추천한 볼거리나 이야기를 가볍게 훑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접한 이야깃거리들을 다른 인터넷 공간들로 퍼나르거나 점심시간에, 술자리에서 대화 마당에 올리면서 인터넷 여론이 확산되는 것이다.

오늘의 유머 '베오베' 게시판은 그렇게 소비되어 온 대표적인 인터넷 공간이다. '베오베'는 오유의 수많은 게시판 가운데서도 적게는 1만, 많게는 10만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하는데, 오유에서 평범한 한 게시물이 베오베에 '등극하기' 위해서는 추천과 반대라는 평판 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 국정원 요원의 업무는 바로 여기에 주어졌다. 일반 대중에게 노출되는 인터넷 게시물과 여론을 '조절'하기 위해서 '추천'과 '반대'라는 평판 시스템에 개입하여 하루에 몇 시간씩 클릭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이 게시물을 직접 작성해서 베오베 등극을 노리기도 한 것이다. 잘만 하면 아주 적은 비용으로 공중파 못지않은 담론 배포 효과가 보장된다. 이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 것에 대해 부디 양해하시길. 전 국정원장 원세훈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대체 국가정보기관이 크지 않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천여 번의 추천이나 반대 클릭을 하며 노린 것이 무엇이었을까?

세 가지 시사점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 사건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인권운동에 시사적이다. 첫째, 국가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문제다. 특히 집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진영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국정원법 위반 사실이 비교적 손쉽게 인정된 것과 달리, 공소사실에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기까지 그 과정은 참 지난했고 재판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박근혜('근혜찡'), 문재인('문죄인'), 안철수('간챨스'), 이정희 등 후보 이름을 거론한 글을 작성하거나 후보 관련 게시물이 베오베에 오르거나 오르지 않게 하는 클릭 활동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지원, 박원순('박원숭') 등 야권 유력 정치인도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곽노현 전 교육감이나 '좌파 교육감', 전교조 비판 등으로 교육감 선거에도 개입했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철탑농성 현장 주변에 혁명적 노동자정당 건설 플랑카드가 붙었다는 소식도 꼼꼼하게 전하며 비판했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TV토론 발언 등 선거 쟁점에 대해서도 여론을 주도하고자 했다. NLL이나 금강산 관광 관련한 게시물 작성이나 클릭에 대하여 국정원은 대북 관련 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이 주제들은 당시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명백한 선거 쟁점이었다. "국회에까지 종북세력이 진출"했다고 주장하는 게시물이 어떻게 대북 활동이라는 말인가?

둘째,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에서 선거 개입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일상적인 정치 개입이다. 특히 국정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직접 나서 비난 여론을 조성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심각하게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정보기관의 국정홍보는 대내외 경제 정책 홍보, 원전 옹호, 내복 입기 독려, 불심검문 지지에 이르기까지 그 한계가 없었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해외 순방 홍보로부터 "오빤 MB 스타일"이라며 낯뜨거운 찬양도 불사하면서 국민의 정보기관이기보다 집권세력에 대한 충성집단임을 자임했다. 정권의 정치적 반대자였던 나꼼수, 민주노총, 전교조를 전방위적으로 비난하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국정원장이 친히 지시한 사항에 따라 4대강 사업이나 제주해군기지를 옹호하고 그에 대한 반대운동을 비난하는 경지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일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무엇보다 '종북', '좌좀', '좌빨'과 같은 노골적인 언사로 북괴 = 박정희 반대 = 미군 철수 = 제주해군기지 반대 = 조중동 반대 = FTA 반대 를 비난하는 이들의 논리 구조가 우리 사회에 미친 해악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이들이 사용했던 용례대로, 북한과의 관련성과 무관하게 정부비판세력을 광범위하게 비난하는 용법으로 이미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지 않았는가.

셋째, 우리는 이제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이 이번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만이 아니고, 이명박 정부 산하의 국정원이 특별히 흉악해서가 아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국정원이 주도하는 정치에 갇혀 있다. 국가정보기관이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동원하여 국내 정치에 대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였다. 올해 들어서는 NLL 대화록 논란이니 내란음모 사건이니 주요 정국 현안이 국정원발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은 이 기관 고유의 국가안보 목적보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권에 대한 보위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우선 국가정보기관이 제대로 된 통제를 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초래된 것이다. 정보기관이라는 이유로 각종 법적 의무에서 예외가 인정되고 강력한 비밀 권한을 보장받는 특혜를 누리는데, 이 기관을 아무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는다. 민주적으로 통제받지 않는 비밀 권력은 부패와 권력 유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안기부법 날치기 개정과 도청 논란,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 역시 예고된 재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동안 통치 권력의 호의를 믿고 국가정보원 개편 논의를 방치해 두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비밀정보기관 운영과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 공화국에서 국민 앞에 비밀인 기관이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밀정보기관은 비밀스런 감시와 추적 활동으로 국민을 위축시키거나 심지어 겁을 주고, 자기 조직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나라 바깥에, 때로는 국민마저도 적으로 취급하는 숙명을 띄어 왔다. 때로 비밀정보기관은 선출된 민주 권력을 압도하는 국가 속의 국가, “국가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비밀국가”가 되고자 한다(이계수, 2003).

다시 국정원을 주목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많은 나라들이 냉전, 테러, 분단 등 다양한 체제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비밀리에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정보기관을 인정해 왔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이 위험천만한 비밀기구를 어떻게 통제해야 그나마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과 민주당의 개혁안까지, 국정원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인권운동도 방치해 두었던 국정원을 다시 손대야 하는 때이다.

다른 무엇보다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우선 수사권 폐지는, 반드시, 긴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기관은 잠재적 위험요소에 기준하여 비밀리에 정보 수집활동을 벌여 왔다. 반면 범죄수사는 엄격한 적법절차가 준수되어야 한다. 정보 수집 활동과 수사·집행 활동이 각기 다른 원칙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비밀경찰이 왜 인권에 대한 위협인지 알 수 있다(이호영, 2005). 한국의 정보기관은 비밀경찰과 다름이 없다. 법률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비밀수사는 극단적인 인권침해로 귀결되기 쉽다. 이번에 국정원이 주도한 탈북 남매 간첩단 사건에서처럼 회유와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로 점철될 수 있다. 유선전화뿐 아니라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 감청이 횡행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정보기관 바깥에 최대한 엄격한 감독기구를 두어야 한다. 이번에 폭로된 미국 NSA의 도청 사례들을 보면 국회나 법원이 비밀정보기관을 제대로 통제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나 판사가 정보기관의 요구를 추인해주는 기능밖에 못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처럼 거의 아무런 통제가 없는 것은 안된다. 그나마 우리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정보위원회는 아주 가끔 열리면서도 국정원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전문가나 보좌진의 참석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상임위 위원을 겸직하는 국회의원들이 국정원을 제대로 감독할 수 없는 구조이다. 최소한 국회와 법원에 상설적이며 전문적으로 국정원을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개혁안은 최소한의 제안이다. 오늘날 정보기관의 역량은 일반 시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인터넷을 기술적으로 전방위 감시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정보기관들끼리 연합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각자 외국 사람만 도청했다고 주장하면서 상대편 기관의 정보를 제공받아 결과적으로 자국 시민 정보도 우회하여 획득한다고 하는데, 국민과 국경을 기준으로 성립되어 온 인권 개념과 심지어 국가안보 개념까지도 창조적으로 파괴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에셜런 때로부터 이들이 도청을 통해 이렇게까지 확보하고자 하는 정보들은, 냉전 이후 모호해진 적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의 정보이며 경제 정보라고 하니, 국가안보가 어느덧 전투적 자본주의 옹호를 위한 레토릭이 되어버린 현실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오동석, 2011).

무엇보다 모든 정보기관에 대한 가장 민주적인 통제는 시민에 의한 통제이다. 시민들이 국정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로이 그 업무의 적절함과 한계에 대해 논평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 역시 바로 설 수 있다. 이미 인터넷에서 빅브라더가 되어버린 국가정보기관들에 대한 통제 없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들의 통제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시비는 인터넷 댓글 문제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지구적인 괴물이 되어버린 정보기관들에 맞서 전 세계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여 싸워야 하는 것이다.

[참고]
이계수, "비밀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 민주법학 통권 24호,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편, 2003.
이호영, "경찰 보안부서에 대한 비판적 고찰", 『<경찰개혁 연속 정책토론회>'남북화해시대 보안경찰의 역할과 방향' 자료집』, 2005. 5. 18.
오동석, "전투적 자본주의와 국가보안법",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1. 7.
덧붙이는 글
장여경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65 호 [기사입력] 2013년 10월 10일 20: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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