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거리는 사랑방] 함께 모이자 싸우자!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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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변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질문을 담아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오름>은 그 중 '도란거리다' 장에 실린 글의 일부를 몇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일상, 관계, 활동 속에서 어제의 고백이기도 하고 내일의 다짐이기도 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인권오름> 독자들에게도 든든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처음 데모에 나갔던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는다. 1980년대 후반 그 때는 기습으로 가두 투쟁을 많이 하던 시절이라,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한꺼번에 우르르 거리로 나갔다. 경찰이 쏘는 최루탄, 지랄탄을 피해 기어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가거나 버텨야할 공간을 지켜내면서 싸웠던 시절이었다. 거리에서 정치를 바꿔낸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였고 싸웠으며 그 에너지로 세상을 바꿔냈다. 그 에너지의 끝자락을 마지막 버스 타듯 경험한 나는 그 이후로도 결은 다르지만 2008년 촛불집회, 2011년 희망버스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서 집단의 힘을 보았다. 그 싸움의 승패가 어찌되었든 우리가 왜 모였는지, 우리는 어떤 주장을 하는지, 지금 우리를 가로막는 힘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며 지금, 여기에 함께 있음이 그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뿌듯함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동안 사라진 듯 보였다. 정권이 민주화되었으니 거리와 공장에서 투쟁은 그만 하고 법적인 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들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마치 집회시위가 아닌 다른 통로가 있는 것처럼 굴면서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권리에 대한 규제를 단행하고 평화적인 집회시위 담론을 유포시켰다. 또한 거리와 공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엄청난 물리력을 통해 저항을 궤멸시키려 하였다. 그 결과 집회는 경찰이 만들어놓은 질서유지선 안에서 얌전히 끝내고, 시민들과의 소통은 상관없이 우리끼리 차벽 안에서만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새누리당과 같은 보수 세력들은 그 시절을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도 그 시절 집회에 간다는 것은 그 어떤 긴장감이나 설렘을 주지 못하는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 생존권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선 철거민·농민들이 경찰과 용역에 맞닥뜨리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권의 언어로 이야기하고자 노력하였다.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기는 했지만, 인권운동은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장 그 자체로부터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성을 담으려는 ‘그것으로’ 인권운동의 위치성을 잡으려고 하였던 것 같다. 또한 집회에서 경찰감시 활동을 할 때마다 집회참여자들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수고하세요.” 물론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집회참여자들과 유리·분리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대신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 경찰은 집회시위의 권리를 집시법이라는 합법의 틀 속에서 철저하게 관리, 규율, 통제하기 위해 준법시위양해각서체결을 강제하고, 심리적으로 차벽과 물포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였다. 경찰은 합법의 틀 속에 우리의 자유를 가두어서 조금이라도 ‘불법’행위가 나타나면 득달같이 해산명령을 내리곤 한다. 어느덧 사회운동도 패기와 씩씩함을 잃고 경찰이 허가해준 길로 행진하고 참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봉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2008년 촛불집회나 2011년 희망버스를 경험하면서 인권운동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할지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거리에서 데모가 세상을 바꾸는 집단의 힘을 경험한 ‘원체험’이라면, 2008년 촛불집회와 2011년 희망버스는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금 집단의 힘을 경험한 ‘추체험’이다.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이제 서울 그 어디에서도 규모 있게 집회할 수 있는 공간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였고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싸웠다. 그 힘을 촉진하고 독려하며 함께 하는 것으로부터 인권운동의 위치성을 다시금 자리 잡으려 한다.

가끔 이런 상상과 고민을 한다. 인권운동이 갖고 있는 경찰과 집시법에 관한 지식, 싸우고 항의하는 노하우를 집회참여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찰, 검찰, 사법부는 일사분란하게 법과 질서를 앞세워 대응하는데, 왜 우리는 너무 각자 고군분투하는 걸까? 집회시위가 어떤 것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적인 권리로 인식되지 않고 자신의 싸움주제와 일치시키면서 국가에 대한 대항권을 넘어 우리의 자유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4.19나 6월 항쟁 등은 불법폭력시위를 통해 쟁취되었는데, 왜 지금 우리는 집시법의 왜소한 틀에 갇혀 있는 걸까?

고민의 물꼬는 희망버스 후속활동으로 기획된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선 돌려차기(아래 돌려차기)’ 활동을 통해서 텄다. 집시법, 일반교통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등은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로 범법자가 되는 법률인데, 그동안 피해자들은 그냥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겪으면서 운동이 책임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돌려차기 경험을 통해 피해를 겪는 개인을 연결하고 우리 운동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가운데, 우리가 싸우려는 세력을 노려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공안세력은 단순히 어떤 법 위반과 벌금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들의 싸울 수 있는 패기, 당당함, 자신감을 위축시키려는 것이 공안세력이 의도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이런 성찰 속에서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 온갖 조치에 저항하며, 경찰이 금 그어놓은 선을 자유롭게 들고나면서 거리에서 표현하고 연대할 자유를 외치고 싶었다. 합법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불법의 자유를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저항과 연대할 자유를 만들어 사람들에게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래서 ‘집회시위 제대로’ 라는 모임으로 투쟁사업장, 인권단체 활동가, 법조인 등이 모였다. 현장과 법제도의 구분을 넘어선 총체적인 시야와 대응능력을 갖추고, 현장에서 경찰의 횡포에 주눅 들지 않고 싸우며, 변호사의 도움 없이도 검경 수사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물론 인권침해 당사자로서 투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하여 사회적으로 알려낼 수 있는 역량을 함께 채우고 있다.

‘집회시위 제대로’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소중한 이유는 모이고 싸우는 우리의 이유를 서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런 통로 자체가 오랫동안 사회운동 안에서 흐르지 못하면서 고립되고 분절되었던 경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불의와 부정의에 맞서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감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인권이 갖는 힘은 보편 가치라는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함께 모이고 싸우는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이기에 가능한 힘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67 호 [기사입력] 2013년 10월 29일 16: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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