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자본"이라는 또 하나의 "검열"

이원재
print
뜨거운 사회적 관심에 놓인 <또 하나의 약속>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이후 두 번의 주말을 보낸 지금까지 예매율, 관객수 등에서 꾸준하게 박스오피스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개봉 시기 상영관 수의 상대적인 부족, 특히 그동안 흥행을 주도해 온 서울의 주요 상영관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스코어다.


<또 하나의 약속>을 둘러 싼 영화 외적인 관심 역시 지속되고 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사와 시민단체들은 2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불공정거래 행위를 이유로 롯데시네마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는 언론을 통해 “스크린 배정(불공정거래)과 관련해서 여러 정황들이 포착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국회에서도 국정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상영을 계기로 영화계의 오랜 과제인 대형 극장 자본들의 불공정거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약속>을 둘러 싼 노동단체, 시민사회 그리고 관객들의 응원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표 나누기, 단체 관람, 극장 대관은 물론 자발적인 홍보버스를 운영하는 버스회사까지 등장해서 화제가 될 정도다.

<또 하나의 약속>을 둘러 싼 사회적 논란은 당연한 결과
‘삼성공화국’으로서의 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삼성전자의 산업재해 문제를 주제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애초에 영화 안(텍스트)에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라는 정면승부(삼성 자본의 입장에서 본다면)를 던졌다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약속>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다양한 의미를 생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상업영화라는 사실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약속>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벌어진 문제들의 사회적 폭로”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솔직히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화를 통한 ‘진실 폭로 효과’라는 것은 더 이상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디지털기술이 발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오직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본과 시간 그리고 기술이 투여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와 극장이 아니라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선택했어야 한다. 반면에 더 깊이 있고 심층적인 탐사나 분석을 원했다면 상업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장르를 선택했어야 한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상업영화를 선택했다. 다시 말해 <또 하나의 약속>은 더욱 더 대중적인 충돌과 갈등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사회적 충돌, 영화 밖(제작, 배급, 상영, 관람, 관계 등)에서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질 사회적 갈등에 더 많은 관심이 가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또 하나의 약속>이 발생시킨 충돌 중에 하나는 바로 ‘시장검열’
<또 하나의 약속>은 상업영화의 정체성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개봉하기 직전 해당 주말 개봉작 중에서 예매율 1위(상영작 중에서 예매율 3위)라는 놀라운 수치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화답하듯이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한 자리 숫자의 상영관을 제시해 충격을 주었다. 그것도 주요 극장을 철저하게 배제한. 개봉 직전에 진행된 제작진,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등의 기자회견과 언론 보도 그리고 여론의 압박 이후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약 20여개 수준에서 <또 하나의 약속>에 개봉관을 추가 배정했다. 기존의 평균적인 시장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또 하나의 약속>은 약 300여개 개봉관, 다시 말해 배정된 개봉관 수보다 최소한 10배는 더 많은 개봉관을 배정 받아야 했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독립영화, 예술영화, 비주류영화 등이 상영관 배정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될 때마다 대형 극장 자본들이 항상 주장했던 근거가 바로 “시장의 원리”, 다시 말해 예매율, 관객수 등의 수치가 아니었던가. 대형 극장 자본들이 시장의 선택을 스스로 외면했다는 점에서, 흥행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에게 적극적으로 극장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민사회가 대형 극장 자본에게 시장의 논리를 들이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약속>은 자본에게도, 시민사회에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위 사진:[사진설명] 롯데시네마의 상영취소, 대관취소등에 항의하며 사회단체들이 롯데시네마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출처:문화연대>

<또 하나의 약속>이 우리에게 제시한 경험은 예고된 것
2000년부터 본격화된 영화시장에 대한 대자본, 재벌기업들의 시장 진입은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였다. 이미 다른 시장 영역에서 독과점 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방송사업자, 이동통신사업자, 유통사업자 등이 영화시장에서 과열경쟁을 주도하며 종적, 횡적 독과점 구조를 만들어 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문화산업의 대표 주자인 CJ의 경우, 영화산업만을 놓고 보더라도 수직적으로는 투자에서부터 제작, 배급을 거쳐 극장체인까지, 수평적으로는 극장에서 부가상품을 거쳐 유선방송사업자까지 완벽한 독과점 구 조를 형성하고 있다. CJ는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의 배급과 관련하여 극장 개봉관 숫자를 언제든지 조율할 수 있으며, 나아가 방송채널 편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자신들의 경쟁 작품을 시장에서 배제하기 위해 투자에서부터 배급, 상영까지 철저하게 견제할 수 있다.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소수 거대 자본의 선택에 따라 영화가 관객에 다가갈 수 있는 경로는 언제든지 차단되거나 통제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다시 말해 거대 자본에 의한 영화산업의 독과점 구조는 단순히 극장 체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대로 언제든지 영화를 통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검열”이다. 소위 시장검열이라 불리는 자본의 검열은 우리가 오랫동안 경험해 온 국가검열보다 오히려 더욱 거대하고 난해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제도 개혁과 같이 (물론 이 역시도 어려운 일이지만) 직선적인 싸움이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와 권력장치를 둘러 싼 사회적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술이 발달하고, 시장이 확장되고, 문화콘텐츠 플랫폼이 다각화되면서 시장검열은 그 영향력이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문화다양성의 시각에서, 영화의 공공을 둘러 싼 싸움으로 접근하자.
사실 영화산업의 영역만을 전제로 한다면 <또 하나의 약속>보다 더 억울한 영화들도 많다. 단 한 개의 상영관도 확보하지 못한 영화들, 단 한 명의 관객의 지지도 받아보지 못한 영화들, 개봉과 동시에 바로 극장문을 나서야 했던 영화들... 대규모 자본 중심의 독과점 구조에서 비명횡사한 수많은 영화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물론 이는 영화제작자, 창작자, 생산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본에 의해 독과점화된 영화시장은 가장 빈곤한 영화 생태계다. 독과점화된 시장 구조 안에서 영화는 철저하게 획일화되며, 영화를 둘러 싼 미학적 성취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조차 보장받기 힘들어 진다. 그 터미널의 끝에 존재하는 관객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으며, 미적 취향조차 강요받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 영화의 상영투쟁을 넘어 영화산업을 둘러 싼 독과점 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과 개혁이 필요하며, 이는 영화제작에서부터 유통 그리고 관람에 이르기까지 문화다양성의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정치적 올바름, 표현의 다양성 등의 최소 수준을 넘어 삶의 질감과 욕망을 가감 없이 창작하고, 관람하고, 평론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또 하나의 약속>과 같은 영화를 둘러싸고 개봉관 숫자가 아니라 미학적 가치를 자유롭게 평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결코 영화산업이나 문화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이원재님은 문화운동가이며, 문화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81 호 [기사입력] 2014년 02월 20일 3:49:29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