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의 인권이야기] 졸업식, 어쩌면 출소식

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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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이 되면 주변에서 졸업소식이 들려온다. 길에서도 종종 꽃다발과 졸업장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며칠 전 졸업을 맞았다. 졸업식 날 아침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는 길, 지난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3년 전의 나는 예일디자인고등학교 패션디자인과에 합격했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게 기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학식을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기쁜 마음에 간 입학식이었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우리학교는 입학식 때 기도를 하게 했고 찬송가를 불렀다. 매주 1시간씩 정규수업시간으로 예배가 있었고 2학기에는 학교 목사님에게 종교수업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학기 초에 선심 쓰듯이 나눠주던 성경은 교과서 구입 영수증에 그 가격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입생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샀던 거다. 미션스쿨이란 걸 알고 지원한 학교였지만 강제적인 예배와 종교 수업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날 힘들게 했다. 예배를 하는 날 아침엔 학교에 가는 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건 예배뿐만이 아니었다. 입학식을 하기 전, 야간자율학습과 방과 후에 있는 국영수 수업 신청서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강제는 아니지만 모두가 꼭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입학식 이전이니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입학을 안 하면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신입생 거의 모두가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를 치룬 뒤 과에서 12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소집됐다. 그 학생들은 ‘샤넬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 좋은 자율학습실을 쓸 수 있고 방과 후 학교 장학금까지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성적을 가지고 누구는 명품이고 누구는 아니고를 따지는, 유치하고 치졸한 짓이었다.

2학기가 되고 나서 한 번 더 야간자율학습과 방과 후 수업 신청서를 받았다. 그 때 선생님은 이번엔 정말 강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와 몇몇 아이들은 이번에도 말만 강제가 아니라고 하는 줄 알고 어쩔 수 없이 야자를 신청했다. 그게 정말 강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땐, 야자를 하지 않고 집에 가는 친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였다. 그 때 나는 노예로 살다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면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두발규제와 복장규제는 당연히 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교문 앞에 서있는 선도부와 생활지도 교사를 지나쳐야만 했다. 명찰을 가져오지 않은 건 아닌지, 타이는 챙겼는지 뭔가 꼬투리를 잡히지는 않을지 죄인처럼 맘을 졸였다.
학교를 다니며 가장 힘든 건 등교시간이었다. 고3이 되어서는 등교시간이 7시 20분으로 앞당겨졌다. 등교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로 학교에 갔다. 지각생이 많아지면 등교시간이 10분씩 앞당겨지곤 했다. 매일 잠이 부족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잠자리에 들 때, 지금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정신없이 바로 학교에 가야된다는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앞에 붙었던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12년 만에 벗어났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규제와 강요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6년 만에 내 머리카락, 내가 입는 옷도 내가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비인간적인 등교시간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이젠 매주 억지로 예배나 종교수업을 듣지도 않아도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들인데 다시 찾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생활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교장선생님은 졸업식에서, 우리학교를 다녔던 시간들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분의 말처럼 학교를 다니던 시간들은 앞으로 살면서 정말 잊지 못할 것만 같다.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와 억압 속에 살았던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학교 밖을 나서는 기분은 홀가분한 것보다 찝찝한 마음이 더 컸다. 내가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그리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다음 달이면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있다. 그 중에 누군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 안에서 답답해하지 않을까. 찝찝한 졸업식이었다. 어쩌면 출소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영서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입니다.
인권오름 제 382 호 [기사입력] 2014년 02월 26일 20: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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