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14년만의 의사파업이 우리에게 울리는 경보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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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3월 10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정부가 야심차게 밝힌 의료선진화 방안인 원격진료도입,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하루파업을 진행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에 이루어진 의사파업에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불법휴진이라며 엄정 대처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의사’라는 전문직이 복잡한 의료제도를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여러모로 작년 말 있었던 철도노조의 장기 파업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소위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공영역을 민영화, 영리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에 맞서 파업이라는 집단행동을 하면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행동을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철도파업 때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의료민영화, 영리화 반대 요구에 대해서도 의료선진화 방안은 민영화나 영리화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던 공공 영역에 ‘개혁’, ‘민간참여’와 같은 말을 갖다 붙이면 지지를 쉽게 얻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각종 민영화, 영리화 공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 기득권층으로 인식되는 의사들의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한껏 편승해 집단행동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언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변호사와 더불어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전문직인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의료정책(영리화), 의사협회, 병원휴진의 틈바구니에서 ‘국민의 건강’이라고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는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지, 건강할 권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위 사진:[사진출처] 참세상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넘어 파업을 바라보자.

먼저 지금 이 국면을 주도하면서 사태를 키우고 있는 정부 정책을 보자.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산업선진화, 보건의료부문 투자활성화대책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의료영역을 하나의 산업으로, 자본의 투자를 활성화해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의료영역이 자본주의적 시장 영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수많은 대형병원들은 연일 건물을 새로 올리면서 화려해지고, 지하철이나 버스에는 각종 병원들 광고로 도배되고, 의사들은 여전히 돈을 많이 버는데 자본주의적 시장이 아니라는 말이 의아할 수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이 의료영역을 자본주의적 시장이 아닌, 공공영역으로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모든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규정하는 처방과 그에 따른 의료수가를 기본으로 진료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처방에 따른 의료비 지출은 정부의 재정과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이루어진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유지된다. 그래서 감기에 걸려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아도 그 자리에서 우리가 내는 돈은 몇 천원에 멈출 수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자유롭게 환자에게 돈 되는 진료와 처방을 판매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아픈 몸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처방과 약품이라면 건강보험에서 심사해서 급여항목으로 추가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개입하는 게 현재의 공공의료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 급여항목을 더 늘리자는 요구는 바로 그런 구조를 더 공고히 하자는 요구이다. 물론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병원은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와 처방을 적극 권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병원 광고들 대부분은 성형, 비만관리, 교정, 체질개선 등과 관련된 비급여 항목의 진료, 처방행위들이다. 한편 의료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다른 산업에 자본으로 투자될 수 없고, 다시 병원으로 재투자되어야 한다. 바로 그 규제를 풀겠다는 게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과 투자 활성화 대책이다.

현행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의사들이 요구하는 수입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준일 수 있고, 필요한 처방과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비급여 항목 진료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개원의들이 영리행위에 몰두하는 것과 대규모 자본이 이윤추구를 위해 의료행위 전반에 개입하게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일정 수준이상의 이윤을 뽑아내지 않으면 자본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 자본이 의료산업에 유치될 때, 이들은 병원을 거대한 공장처럼 돌리게 된다. 환자들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원료이며,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따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겠다던 의사들은 단지 전문기술자가 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다양한 의료행위들이 활발히 개발되고 민간보험회사와 연계해 마치 보험이 되는 것인 양 호도하면서 고객(환자)에게서 돈을 뽑아낸다. 자본은 약품, 진료행위, 요양치료, 간병, 장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뽑아내는 방법을 고안해낼 것이다. 다른 산업들에서 익히 보는 일들이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경쟁과 이윤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판국에 영리 자회사 설립은 의료영역을 야바위 시장 같은 곳을 만들 기폭제가 될 것이다. 원격진료행위는 이런 거대 산업화한 의료시장에서 잘 작동할 법한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의료행위들이 판을 치게 된다.

지금의 변화를 통해 의료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갈지 가늠하자.

혹자는 의사파업을 대형마트에 맞서는 동네 상점 주인들의 싸움과 비슷하다고 한다. 분명 그렇다. 원격진료, 의료 자회사 설립 등과 같은 영리화 정책들은 동네 병원과 같은 구멍가게들을 문 닫게 하고 고객(환자)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에게는 기존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맞선 싸움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료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갈 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내가 왜 관심을 쏟아야 하냐고 냉소하기 전에 의사파업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정부의 의료정책을 이대로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업하는 의사들 이전에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정부와 자본의 꿍꿍이를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84 호 [기사입력] 2014년 03월 13일 9: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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