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 폭동] 무엇을 위한 ‘보호’인가?

-술, 담배, 청소년유해매체, 숙박업소 그리고 청소년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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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한국 정부는 ‘UN 아동권리협약’의 조약 당사국이 되었다. 위 협약은 만 18세 이하의 인간들에게 차별과 폭력,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표현과 집회 및 결사, 모임의 자유, 교육과 건강,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위 협약의 서론에는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하여 출생전후를 막론하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이 선언의 기초적 정신이라는 점이 함께 명시되어 있다. 아동이 정말로, 어느 정도로 성인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동 및 청소년의 ‘보호’가 당사자들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정책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부정하고 배제하는 가장 큰 근거로 활용되는 현 한국 사회의 실태를 고려할 때, 이 보호받을 권리를 어떻게 재해석하며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쟁점이자 고민거리로 지속되었다.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와 ‘권리’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법과 정책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다.
1)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당사자들의 이용이나 노동 및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를 금지하는 것.
2)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을 위해 교육목적상의 권리 제한을 허용
3)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 건강, 여가, 생존을 위한 복지
4) 친권자의 양육 의무와 친권자의 보호 아래 있을 미성년자의 의무

그리고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와 ‘권리’를 위한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이들을 미성숙하고 결정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행해지는 여타의 권리 제한이 있다.
1) 선거권 및 피선거권, 선거운동 등 정치적 권리의 제한
2) 금전과 관련한 법률행위 권한의 제한

이 중에서도 이 글은 비청소년에게는 허용되나 청소년에게는 금지되는 가장 대표적인 청소년 보호 정책인, 성적인 매체와 숙박시설, 술과 담배 이용 및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 제한을 살펴보고자 한다.

청소년유해매체

청소년보호법 제9조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1.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 행위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것
5.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沮害)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
6. 그 밖에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유해매체로 선정된 영화, 방송, 책 등의 매체는 판매할 때 신분증 검사 등을 통해 나이를 확인하여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않아야 하며, 청소년이 볼 수 있는 곳에 광고하거나 포장을 하지 않은 채로 진열하지 않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그것이 성적인 충동을 자극하는가,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가의 여부이기 때문에, 어떤 매체가 청소년유해매체로 등록되느냐는 이 사회가 특정 소재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일례로 청소년보호법에는 동성애가 유해매체의 판별 기준으로 포함되어 있었으나 성소수자인권운동의 결과로 삭제되었으며,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친구사이?’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15세 이상관람가로 등급이 바뀌었다.

위 사진:[사진설명]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친구사이?'는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2013년 대법원까지 간 재판 끝에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변경되었다.

사실 청소년에게만 유해한 소재나 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공적으로 드러나도 된다고 여기는 것들만 다루면 청소년이 접해도 되는 것으로 허용되지만, 그 기준을 넘으면 청소년유해매체가 될 뿐이다. 성인들에게는 유해한 것들을 유해하다고 판단하고 모방하지 않을 판단력이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없다는 전제가 이런 정책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섹스와 범죄, 반체제와 여타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을 다룬 매체는 마냥 건전하고 ‘공익적’인 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쾌락과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을 내포한다. 그래서 판매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되고 광고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유해매체’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소비되며, 기실 청소년들도 다른 경로들을 통해 이용한다.

숙박업소

청소년의 모텔, 찜질방, 고시원 등 숙박업소 이용을 제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소년이 친권자 등 보호자들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 독립적인 하루 혹은 삶을 살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법에는 친권자의 권한 중 미성년자의 ‘거소를 지정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고, 그래서 여러 이유로 집을 나와 가출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려고 할 때조차 친권자에게 자신의 위치가 알려지는 일이 발생한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섹스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숙박업소는 모텔, 호텔, 펜션 등이고, 집이 아닌 다른 숙박업소를 이용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도 섹스 때문이다. 보통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게 되는 대다수 청소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들이야말로 독립적으로 이용할 제2의 공간의 필요가 절실한 집단이지만, 청소년에게 (친권자의 동의 없이) 숙박 시설을 제공하는 건 불법이다. 모텔을 이용하기 어려운 청소년 커플들이 룸카페를 대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알려지자, 최근엔 룸카페도 19금이 되었다(룸카페는 대체로 문을 잠글 수 없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카페이고, 일부는 침대나 샤워시설도 있다고 전해진다).

술과 담배

술과 담배는 건강에 유해하며 금지된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보통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탈’이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성별에 따라, 기타 여러 신분에 따라 이 일탈이 다소 허용되는 집단과 허용되지 않는 집단들이 있다. 어떤 공간에서 흡연을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뉘는 건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부는 술과 담배에 높은 세금을 매겨서 재정을 충당하면서도, 술과 담배의 유해성을 홍보하고 금주, 금연을 독려하는 캠페인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금주와 금연이 절제와 청결의 이미지와 함께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술과 담배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을 답답해하거나 무리에 끼워 주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술과 담배를 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예절(윗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술 따르기, 고개 돌려 술 마시기, 윗사람과 맞담배 하지 않기, 윗사람이 라이터로 불붙여주면 손으로 가려서 받기)이 생겨나고, 술과 담배를 함께 한다는 것이 공동체 의식의 함양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코스가 된다. 그런데 술과 담배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 ‘우리’끼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보다 아랫사람이 내 앞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건 내 권위에 대한 무시이고, 꼴 보기 싫은 일이 된다. 나이 많은 남성이 길에서 흡연하는 여성이나 청소년에게, 작게는 눈치를 주고 훈계를 하거나 크게는 폭행을 하는 사건은 이 맥락에서 발생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술과 담배 판매의 금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에 유해하고, 청소년은 특히 신체적으로 미숙하므로 건강에 더 유해하며 정신적으로도 미숙하여 절제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부나 어른들은 유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청소년에게 건강에 유해한 것을 차단함으로써 보호하겠다는 명분은, 실제로는 술 담배 하는 청소년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호’와 ‘분할통치’ 중 무엇이 진짜 목적인지 헷갈리게 한다.

한국 중고등학교 중 절대 다수의 학교에선 음주와 흡연을 교칙으로 금지하며-법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매’를 금지하지만 교칙에서는 청소년의 ‘이용’을 처벌한다.-모범생과 날라리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활용한다. 2011년에는 남양주 가운고등학교에서 흡연을 이유로 무려 40여 명을 무더기 퇴학 조치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음주나 흡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점을 받고 체벌(폭행)을 당하는 일은 구태여 말할 이유도 없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다음은 서울 J여자고등학교의 학생이 증언한 내용이다.
“한 친구가 담배 피우는 걸 교사에게 걸렸다. 흡연으로 몇 번 걸린 적이 있는 친구였다. 교사가 그 친구를 불러서 같이 피우는 사람들 이름을 대라고 했다. 친구도 처음에는 입을 닫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이름을 대라고 붙잡아두니까 결국 같이 흡연하던 친구들 이름을 댔다. 그 이름 중에 내 이름이 있었고, 그래서 교사가 내가 흡연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이름이 불린 몇몇이 학생부실로 불려갔고 교사가 가방검사를 했다. 여자 교사가 와서 옷 안도 뒤지고, 스타킹, 주머니 다 뒤지고 그래서 결국 담배가 있는 걸 들켰다. 그것 때문에 처음 걸려서 징계를 받았고 1주일 교내 봉사를 했다. 1주일 동안 학교에 일찍 가서 교문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맙시다, 고운 말 씁시다,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흡연으로 시커메진 폐를 보여주는 금연교육도 받았다.
2학년 올라가서, 건강검진을 했다. 학교에서 지정한 병원에 가서 키 재고, 피 뽑고, 소변 검사 하고, 엑스레이 찍고 하는 검진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학교로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고 교사가 나와 몇몇 사람들을 불렀다. 건강검진 결과 우리에게서 흡연했던 흔적이 발견됐다고 했다. 교사들은 건강검진에서 흡연한다고 나온 학생들을 따로 관리했다. 종종 불시에 교실에서 복장, 용모검사를 할 때가 있는데, 그 리스트에 오른 학생들은 소지품 검사도 했다. 그러다 또 걸려서 징계를 받았다. 처음 흡연으로 걸리면 교내봉사 1주일에 금연교육 2시간, 두 번째 걸리면 교내봉사도 하고 교외봉사에다 금연교육 6시간, 세 번째는 교내봉사와 교외봉사에다 금연교육 14시간, 네 번째부터는 정학이다.”

이쯤 되면, 그렇게 주창되는 보호가 무엇으로부터의 보호인지 되묻게 될 것이다. 더불어서, 그렇게 겹겹이 쌓인 규제와 감시망을 뚫고서라도 기어이 음주와 흡연을 하고야 마는 청소년들의 욕구가 분명 존재하는데 규제로 일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술과 담배에 얽힌 권력과 일탈, 전복의 상징적 의미들을 모두가 분명히 인식하고 활용하면서, 짐짓 ‘다 너희 건강을 위해서야’라고 변명하는 게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86 호 [기사입력] 2014년 03월 26일 19: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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