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의 인권이야기] 대수롭지 않았으면 하는 대수로운 이야기.

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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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선택들이 주변에서 굉장히 특이하거나 특별한 일로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그중에 가장 특이한 선택으로 보이는 일은 내가 대학을 가지 않은 것 같다.

고3이었던 작년, 나는 여러 고민 끝에 대학을 가지 않고 대학입시를 거부하기로 했다. 수능 날에 친구들이 새벽에 일어나 수능 고사장을 갈 때 나는 대학입시거부선언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기자회견 장이었던 청계광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기자로 가득했다. 대학 안가고 대학입시거부 하는 게 별거 아닌 거라고 여겼지만 다들 그게 아니었다. 나와 주변 활동가들을 빼곤 대부분 ‘별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나온 기사가 수십 개가 나오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일주일간은 온갖 인터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변 지인에게 소식을 들은 엄마는 왜 창피하게 그러냐고 했다. 가장 호들갑을 떨었던 건 내가 다니던 학교였다. 학교 명예실추라며 징계를 받을 거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대학 안 가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다들 왜 그렇게 호들갑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또 하나는 탈 가정 청소년으로 사는 일이다. 18살이었던 작년 여름방학에 집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친구들과 4명이서 신촌에서 월세를 구해 살고 있다. 룸메이트들이 집을 나온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내가 집을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였다.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은 사람이 살 만한 집이 아니었다. 집주인이었던 우리 아빠는 특이하게도 다른 집주인들과는 다르게 반지하에 살았다. 여름이면 꼽등이가 나오고, 이상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여기저기 생기는 눅눅한 집이었다. 딱히 가난하지도 않은데 월세 몇 만원을 더 받기 위해 반지하에 사는 아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년 여름은 그 집에서 맞아야 했던 세 번째 여름이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싶었던 나는 여름이 되자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온 뒤에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학교에 다니며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느라 알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조합원으로 있던 협동조합과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며 쪼들리는 생활이었다. 여기저기 친구 집에서 얹혀사느라 5개월 동안 이사를 3번이나 다니기도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말도 전혀 안 통하고,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집으로는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주변의 탈 가정 청소년들이 대부분이 그랬다. 탈 가정 청소년들이 말하는 ‘가정’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이유대로 반인권적인 공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독립을 했다는 사실에 나를 대견하게 보는 분들이 참 많다. 그 중에는 나를 굉장히 기특해 하거나 때로는 억척스럽게까지 보기도 한다. 사실 나는 별로 기특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독립한 평범한 자취생일 뿐이다. 대학을 가지 않으니 다들 나에게 왜 대학을 가지 않았는지, 대학을 가지 않고 어떻게 살 건지를 물어본다. 너무 자주 듣는 피곤한 질문이라 대충 얼버무리면, 몇 번이고 더 자세히 물어보고 나에게 구체적인 대답을 듣기를 원한다. 대학을 간 사람들한테도 그렇게까지 물어보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다들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냥 가고 싶지 않아서 안 갔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지도 잘 모르겠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했던 일, 독립을 한 일, 모두 작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나도 그 전까지는 대학은 무조건 가야하는 것, 독립은 스무 살은 넘어야만 할 수 있다 생각했다. 입시공부가 지겨워도 그게 유일한 길인 줄만 알았다. 말도 안통하고 답답한 집 안에서, 청소년인 내가 독립을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건 줄만 알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런 고민들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 청소년들의 상황에서 할 수 없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청소년은 가정과 부모에게 종속적인 존재일 뿐이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일 뿐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나를 특이하게 여기는 것도 청소년은 겨우 그런 나약한 존재로밖에 인식되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다.

대학을 가지 않고 집 나와서 사는 지금의 내 생활은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힘들었다. 아파서 알바를 쉬는 날이면 하루 알바비 4~5만원이 날아갔다면서 아픈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속상했다. 월세를 내고 나면 한 달 월급의 절반도 남지 않는다. 월말이 되면 매번 쪼들리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대학생이 아니라서 불편을 느낄 때도 참 많다. 대학생만 참여할 수 있다는 공모전에 실망하거나, 나는 이제 해당되지 않는 (대)학생 할인들을 마주하거나, 오랜만에 만나서 보자마자 대학은 붙었냐고 물어보는 지인을 만나거나, 얼마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니 대뜸 무슨 과냐는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면,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남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학졸업장이라는 안전장치 하나 없이 내 삶을 설계해야 하는 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든 선택이지만, 그래도 내가 했던 선택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아지길 바란다. 대학을 가지 않는 일이 특이한 게 아니고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청소년이 반인권적인 가정을 나와 독립하는 모습도 더 자주 보았으면 한다. 내가 했던 고민들은 특이한 사람들만 하는 고민이 아니고 누구나 하는 고민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탈 가정 청소년이, 대학 안 가고 사는 삶이, 지금의 내 생활보다는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영서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입니다.
인권오름 제 386 호 [기사입력] 2014년 03월 26일 19: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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