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노동에서의 차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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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 공기를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업무 진행,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안전장치도 없이 노동자들이 일하게 만드는 하청 구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더 위험한 삶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비정규직제의 등장은 자본이 높은 효율성을 얻기 위함이었다.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노동자들이 놓일 때, 자본은 더 많은 이득을 얻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은 노동자는 저항하였다. 그리고 자본은 ‘차별’을 끄집어와 노동자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시작했다. 강력한 물리력을 이용한 노조파괴, 징계와 해고를 통한 저항의 무력화 못지않게 ‘차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체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노동에서 ‘차별’이 비정규직의 도입으로 인해 생성된 건 아니다. 성·이주·장애·학력등은 자본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목하며 차별의 힘을 작동시켰던 전통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제를 비롯한 직무직제의 다양화는 전통적인 ‘차별’과 결합하여 더욱더 저항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금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이유는 높은 효율성과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펼쳐지는 자본의 방식이 다양화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차별’의 힘이 차별을 힘을 통해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는 ‘자본’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노동에서 차별의 특징과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기 위한 짧은 제언을 다루려한다. 다만 분량의 한계로 노동에서 차별의 특징과 영향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 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곧 발행예정인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소책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용형태, 직무의 위계화와 차별.

노동현장에서 나타나는 차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용형태’와 ‘직무’의 위계화이다. 전문직, 핵심업무, 중심업무 등이라고 불리는 업무의 최상층에는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능력주의 임금체계와 결합하여 작동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기간제, 계약직, 외주노동자가 위치한다. 이와 같은 고용형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힘은 현장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업무를 ‘핵심’과 ‘주변’으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업무를 하며, 다른 고용형태와 임금체계를 적용한다면 노동자의 저항은 강하게 발생한다. 자본은 이와 같은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업무와 직종에 따라 ‘핵심’과 ‘주변’을 설정한다. 주변업무 또한 위계가 설정된다. 이와 같이 핵심업무에서 주변업무까지 이르는 중층적 위계는 다시 보상의 차별, 노동조건의 차별, 권위의 차별 뿐 아니라, 노동자 개인에 대한 존엄의 훼손까지 이른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핵심의 규정이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이와 같은 구분이 항상 고정되지도 않는다. 핵심업무로 규정되었던 것이 점차 주변업무로 규정되기도 하고, 그렇게 규정되는 순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기도 한다.

업무에서 위계가 설정되면 이후 자본은 위계에 따라 다른 보상과 다른 권위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차별’의 힘이 작동한다. 더 이상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는 평등한 관계이지 않다. 높은 위계의 노동은 ‘안정된 고용형태’ ‘높은 보상’ 그리고 ‘더 높은 권위와 사회적 신분’을 부여 받는다. 특정한 개인이 오랜 경험과 학습을 통해 노동현장에서 인정받는 점과 확연히 다르다. 자본은 노동자의 평등을 깨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대우’와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소수성’이 지목되고, 그들은 낮은 위계로 위치된다. ‘소수성’을 통해 ‘다른 대우’‘다른 가치’는 합리적인 마냥 포장된다.

차별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차별이 노동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필 때에 있어 ‘무시’와 ‘모욕감’은 평등권의 침해로 이야기 되지 않는 차별의 다양한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차별 당사자의 경험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맥락화 할 수 있으며, 차별이 개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다.

“밥 먹을 때이다. 간부식당, 노동자 식당 따로 있고, 반찬부터 다르다. 식당 아주머니의 대우도 다르다. 화장실도 거의 간이 화장실인데 여름철에는 구더기에 파리가 날리고…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이 박혀 있다…사람이 사는데 기본적인 것, 먹고 사는 것에서 오는 차별에서 내가 건설 노동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현장에서 합판 깔고 잠을 자는데 관리자 놈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건설노동자

이와 같은 ‘무시’와 ‘모욕’은 연차, 직종, 고용형태등 다양한 차별속성과 결합하여 노동의 위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한다. ‘무시’와 ‘모욕’은 때론 관리자에게서 경험하기도 하며, 노동현장의 동료, 고객, 임금이나 복지의 차이를 통해 경험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노동현장과 고용형태이지만, 특정한 경험을 통해 노동현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무시’와 ‘모욕감’을 경험한다.

차별에 따른 가치절하, 훼손되는 존엄

‘무시’와 ‘모욕감’은 노동현장에서 자신의 가치절하와 존엄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노동현장에서 차별은 효율성을 중심으로 노동자를 배치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가치는 자본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다. 노동자가 스스로 형성한 자신의 가치판단은 자본이 판단한 노동자의 가치에 그 자리를 빼앗긴다. 여기서 가치는 자본만이 아닌, 사회가 함께 형성시킨 차별에 힘을 통해 형성된다.

“여기(공단에) 한번 발을 디디면 못 빠져 나올 거 같다. 힘들다, 인생막장, 이런 생각이 있다. 구인 정보나 파견업체를 통해 일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허탈감이 들었다.…계속 나를 깎아 내리는 거 같다. 주변의 시선, 그러다 보니 내 삶도 자신이 없어진다.” 파견노동자
“고객센터 일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취급된다. 여성 집중 업종이 그렇듯 저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은행노동자

이와 같은 가치 절하의 경험은 노동자에게 존엄 훼손의 경험이기도 하다. ‘여성’노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취급하는 자본을 마주쳤을 때, 노동자는 ‘여성’이자 ‘노동자’인 자신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친다. 파견노동자를 인생막장이라고 보는 사회의 시선은 자신을 깎아내리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이와 같은 경험은 구직과정에서, 고용형태로 인해, 연차나 직종으로 인한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삶에 유입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의 주체성은 약화된다. 저항의 힘을 약화 시키는 건, 개별 주체들의 힘을 약화 시키며 시작된다.

평등감각과 연대의 훼손

자본이 ‘차별’을 통해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과정은 노동자의 가치와 존엄이 훼손되며, 같은 노동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더 이상 같은 노동자가 아님을 인식시킴으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라는 계급성은 무너지고, 서로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평등감각)을 깨트리고, 연대를 무마시킨다.

“우체국 내에서 고객전화가 오면 먼저 저한테 얘기를 들어본 후에 응대를 해도 늦지 않을 텐데, 나하고 대화는 배제한 채 고객하고만 얘기를 하니까 나는 죽일 년이 된다. 고객한테 무조건 죄송합니다만 하고, 그 분 기분만 잠재우면 끝이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생각했을 때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고…그 여자도 지금 저 무시해요. 우체국에서도 저 무시하니까”집배원 노동자

외주화된 집배원 노동자는 우체국에서 일한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집배원 노동자에게 우체국 못지않게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은 우체국의 다른 직원들이다. 이 관계에서 집배원 노동자는 훼손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목격한다. 서로 다른 직무와 직제로 얽혀 있는 노동자간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자본과 달리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관계가 평등하지 못하다는 경험은 노동자간의 평등감각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병원에서 일을 할 때 간호사가 할 일을 간병인에게 시키면서 간병인이 잘 모를 경우 가르쳐주지 않고 ‘그런 것도 모르냐’고 뭐라고 하면서 간병인들을 위축시킨다. (간병노동자)
“회식비가 비정규직은 원래 안 나오는데, 정규직 회식할 때 비정규직도 데리고 갈 때가 있다. 그때 회식비가 오버되면 비정규직에게 걷어서 내라고 한다.…휴게실에 있는데 온돌은 정규직들, 냉방은 파견직들이 앉아 있다. 언제 한번은 몸이 아파서 냉골바닥에 누워 있는데 서럽더라. 실제 그곳에 들어가서 무안당한적도 없지만 암묵적인 그런 게 있다.”파견노동자

평등감각과의 훼손은 같은 노동자간의 연대를 훼손시킨다.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마주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본이 만들어낸 차별의 효과는 동료 노동자를 통해 드러난다. 직무와 직제에 구분된 노동관계에서 하위 위계의 노동자들이 상위 위계의 노동자들과 경합하며 느끼는 경험은 그들 또한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노동자와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 와중에 함께 연대하여 투쟁한 경험이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 투쟁의 결과로 이들 간에 평등한 관계가 생성된 건 아니다. 동일한 노동현장에서 각각 정규직,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를 인터뷰한 결과에서 직무의 위계에 따라 느끼는 차별의 지수는 달랐다. 또한 하위위계의 노동자들이 상위위계 노동자에게 경험한 차별은 그들이 공동의 투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하게 나타났다. 연대의 힘은 작동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의 분리는 존재했다.

불안정한 삶, 차별의 고리가 주는 영향

자본이 차별을 통해 만들어 내는 힘의 영향은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으로 몰아세운다. 낮은 위계의 노동은 저임금, 불안정고용, 위험한 현장을 향해 간다. 노동자 스스로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싶더라도, 이는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저항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오직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선 더 많은 노동시간과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택해야 한다. 차별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선 결국 해고될 위험을 감수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 자체를 급하고 까다로운 것을 외주로 돌리는 형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만 일이 끊길까봐 노동조건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주 편집노동자
“토요일에 근무할 때 이브닝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이 많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은 ‘휴게시간이라 불가’를 쓸 수 있지만 우리는 못쓴다.…정규직들은 ‘휴게시간 불가’를 올려서 그 시간에 밥도 먹고 쉬기도 하지만, 계약직은 ‘휴게시간 불가’를 올릴 수 없다” 계약직 간호사

고용불안은 노동자의 저항과 떨어질 수 없다. 저임금을 받고, 위험한 현장과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을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없는 건 일 자체가 끊길 경우 또 언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차별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건 이와 관련 된다. 불안정한 삶에서 참을 수 있을 만큼 참거나, 다른 방식으로 회피하는 건 그들에 저항의 일종이다. 또한 이와 같은 차별이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는 수용할 문제이거나 노동자들이 차별에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이는 사회가 이루어낸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개인’이 혼자 저항하기엔 ‘차별’이 너무 큰 힘이기 때문이다.

노동에서의 차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불안정 노동의 시대에서 개별적 주체들이 차별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노동자의 평등감각과 연대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힘을 모아 함께 차별에 맞서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에서 차별에 맞서기 위해선, 평등감각과 연대를 복원하기 위한 운동과 담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재구성해야 한다. 노동자의 차별을 막기 위해 구성된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이 노동의 직무와 직제에 따라 점점 다른 노동인 것처럼 인식되며 노동자의 집단성은 파괴되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노동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모든 노동이 필요하다는 ‘노동의 연계성’과 ‘평등성’의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직무직능급 임금체계를 변화시키고, 고용불안정에 대응해야 한다.

두 번째로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운동에서 차별감수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차별’은 눈에 잘 드러나지도 않고, 차별당하는 개인의 문제로 전환되기 쉽다. 그렇기에 차별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차별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 제3자가 느끼는 것의 간극은 크게 작용한다. 이 상황에서 ‘차별’을 개인이 너무 민감하다거나, 그 정도는 조금 참으라는 문화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차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도록 한다. 노동조합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차별감수성’을 형성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서 적극적으로 차별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훼손된 평등감각을 복원함으로서 차별에 대응하는 투쟁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차별’을 부수적 문제로 인식할 경우, ‘차별’이 무엇을 파괴하는 지 놓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차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차별’을 목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차별감수성은 필수적 요소이다.

또한 차별금지제도를 재구성해야 한다. 현재의 차별금지제도는 ‘합리적 차별’의 범위를 넓히고 오직 ‘개인’의 구제로만 범위를 좁혀 차별의 구조와 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금의 차별금지제도가 유지되는 한 사회적 차별감수성은 높아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차별에 맞서기 위해선 노동자 개인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를 집단적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차별은 개개인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맥락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 다양한 차별의 양상과 맥락은 폭로된다. 또한 이를 통해 차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집단적 운동으로 문제제기 해야 한다. 개개인의 경험에 존재하는 보편적 존엄은 함께 싸울 수 있는 근간의 힘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욕감’과 ‘무시’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집단적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89 호 [기사입력] 2014년 04월 17일 13: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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