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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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의한 희생자분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어서 실종자 구조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생존자와 그 밖의 모든 분들의 평화를 바랍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에 잠 못 들며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언론에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언론을 만들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도울 것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이 있고, 내 앞에 현현해 있던 살붙이 피붙이들을 잃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영위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원통한 마음이다.

당사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은다는 의미로 일주일 전 카톡 프로필 사진에 노란리본을 달았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훑어보게 되었는데, 이룸 상담소에서 지원했던 언니들도 노란리본을 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의 아픔에 더 공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지원했던 한 언니에게 받은 카톡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언니는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도 ‘기독교의 교리를 거스르는 동성애를 선동하는 무리는 악하다’는 내용의 제정 반대 카톡을 보내왔던 언니였다. 이번 카톡의 내용은 ‘노란리본은 망자를 부르는 노란 나비이며, 귀신끼리는 통하니 선동을 멈추고 프로필 사진을 내리라, 귀신의 힘을 빌리는 대신 차라리 조용히 기도하라’는 내용이었다.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순환하는 외상의 무거움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행위를 경험한 것을 기억한다. 연구들에 따르면 911 사건의 잔재로 재앙장소에 근접해 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종일 TV 앞에 붙어 있었던 수백만의 사람들 또한 스트레스 반응과 장애를 경험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높은 테러공포를 경험한다고 한다.

한국의 지나간 수많은 사건·사고 역시 위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삼풍·성수대교·천안함 혹은 전쟁·정치적 테러·가정폭력·성폭력 등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지고 왔다. 성매매여성들이 경험하는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에 의한 외상 장애 역시, 복잡한 심리적 결과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외상 증후군의 회복 과정은 공통 경로를 따른다고 한다. 회복의 기본은 안전의 확립, 생존자 목소리로 경험 재구성하기,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공동체가 수용하며 지지하는 등 생존자와 공동체 사이의 연결 복구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치유는 피해자를 믿지 못하거나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경향과 지속적으로 싸워 나갈 때 가능하다. 하지만 애초에 존중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나 여성의 경우에 더욱 이들의 경험에 대한 말하기는 금지되어 왔다. 그래서 생존자와 사회 구성원의 동맹을 쟁취하는 일과, 침묵에 대한 강요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은 절실하다. (참고·인용 : 주디스 허먼 저, 최현정 옮김, [트라우마] 플래닛, 2007)

‘노란 리본의 착각’을 설파하며 침묵을 강권한 그 언니의 카톡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이와 연결된다. 성매매피해여성에 대한 보호법이 있어서 언니에 대한 지원이 가능했고 현재는 언니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언니의 성매매 경험을 문제 삼고 비난했으며, 폭력을 정당화해 왔다. 게다가 10년이 지난 업소 차용증이 다시 살아나 괴롭힐 때마다 이룸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 사실을 남편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매매여성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고, 성매매여성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여전히 공고함을 증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으로서 침묵당한 이가 역설적으로 침묵을 강권하는 모습이 순환하는 외상의 무거움을 보여 주었고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Save Our Souls

언니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의 기가 막힌 참사 속에서 사고 수습도 제대로 안 되는 경험을 했거나,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그 트라우마를 오롯이 감당해 왔던 당사자이고 목격자일 것이다. 그 고통이 심해지도록 방치하면 자책감에 사로잡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참혹한 경험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서로를 기억하고 위로 받아야 한다.

심리적 어려움을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이기에 아직은 서툴겠지만, 진심을 담은 애도를 작게나마 표현하는 건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게 참전 군인의 귀환을 바랐던 노란 손수건이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통함에서 비롯된 리본이건, 망자를 기리는 나비이건, 성황당의 천이건. 그게 불편하다면 자신의 방식으로 애도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생명을 잃거나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애도이기도 할 것이다.

수백 명의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전문가들이 재난심리요원으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한 일이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트라우마를 보듬으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고를 만들어낸 수많은 모순에 대한 시정을 통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전 확보와 사고 뒤에 물리적·심리적 대처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반을 닦는 일이야말로 모든 종류의 사건·사고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숨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91 호 [기사입력] 2014년 05월 01일 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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