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2] 북한 핵실험 이후 평화·인권운동의 과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

박래군
print
북한의 핵실험이 있은 지 한 달여가 지났다.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두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진영에서는 남한의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무장을 도왔다면서 포용정책을 포기할 것을 압박하였으며, 미국이 추진하는 강도 높은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우산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런 핵우산 정책에는 한미안보연례회의에 참여했던 국방부 고위관료들도 동조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북 핵실험에 대한 의견들이 분출했다. 대체로 미국의 대북 무시정책과 합의를 깨면서 북한을 압박한 것이 화를 불렀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여 미국의 책임을 묻고, 대북제재는 긴장과 대결구도만 강화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점에서도 일치된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향후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나가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북핵을 둘러싼 이견들은 여전히 폭넓게 존재한다.
북 핵실험 사건 이후 1년 만에 6자회담 당사국들이 회담에 합의했고,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부시의 일방주의 노선보다는 완화된 현실주의 노선이 지지를 얻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정부는 처음의 오락가락하던 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일정하게 변경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의 참여는 유보하는 정도의 선에서 대처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남한 내의 입장이 차분해졌고, 그에 따른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운동의 관점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발된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다시 보는 ‘평화적 생존권’

현행 헌법에서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 전문과 헌법 제4조, 제5조, 제6조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 조문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평화국가를 지향하고 있고, 평화국가의 내용으로 최소한 “침략전쟁의 부인과 국군의 전수방위의무 등의 국제평화주의와 무력통일을 금지하고 평화통일의 수립·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주의를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상 평화주의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평화국가에서 공포나 불안 없이 생존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화적 생존권은 구체적으로 “①자유권(전쟁·군비·전쟁준비로부터의 자유로서 권력적 침해를 배제하는 권리) ②참정권(전쟁·군비확대에 반대 내지 저항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형성을 위하여 국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가 내지 영향을 행사할 권리) 그리고 ③사회권(국가의 공권력의 적극적인 발동에 의하여 보다 나은 평화적 생존권의 확보·확충조치를 취하도록 청구하는 청구권적 권리)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헌법학자들은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에서 평화적 생존권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헌법 제37조 제1항)는 원칙에 따라 헌법적 기본권으로 분명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평화적 생존권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에는 헌법 제10조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이 유명무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적인 전쟁의 위협을 받으면서 어떻게 기본권의 향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평화적 생존권은 이미 중요한 권리로 인정되어 왔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1948)에서는 대서양헌장(1941)의 정신을 이어서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의 도래가 일반인의 지고한 열망”임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은 사회권조약과 자유권조약의 전문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모든 인권의 기본전제로 평화적 생존권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평화적 생존권은 유엔 결의 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1976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 1978년 유엔총회의 ‘평화롭게 생존하는 사회의 준비에 관한 선언’, 1984년 유엔총회의 ‘국민의 평화권에 대한 선언’ 등이 그것이다. 이 중 1984년 유엔 총회의 선언에서는 “국민의 평화적 생존의 확보는 각 국가의 신성한 의무임을 확인하고…지구상의 국민은 평화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3세대 인권의 한 종류로서 평화권이 구체화되고 있고, 이 내용은 우리가 주장하는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평화적 생존권 확보의 방향

‘평화는 인권이다(Peace is a human right)’는 말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도 없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첨예한 군사주의적 대결구도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한 동안 일부 평화세력들 외에는 잊고 지냈던 비핵지대화가 중요한 과제임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1992년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여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외에는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금지하자고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검증하기 위한 상호 사찰과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도 합의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합의는 지난해의 9.19 공동성명에서도 6자 회담 당사국들에 의해 공동으로 확인되기도 했던 내용이다. 물론 이 합의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부분은 남겨두었기 때문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해도, 우선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도록 남북 당국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다행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수차례 약속하고 있기도 하여 실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 위에 더 나아가 일본, 몽골, 대만 등이 비핵국가로서 참여하고, 이에 대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구속력 있는 보장을 통해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로 나가는 방향은 옳다. 북핵 실험 이후 한국에서 핵우산론, 일본과 대만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상황을 불식시키고 동북아시아가 선도적으로 비핵지대화를 이루는 것은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다. 미국이 이에 동의하고 한반도와 일본에서 핵무기를 확실히 철거하고,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보증할 것이냐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핵무기는 아니더라도 열화우라늄탄 등 거의 핵무기 수준의 대량살상무기들에 대해서도 상호 검증 절차를 거쳐서 철거하거나 폐기하도록 한다면 핵의 위협으로부터 한반도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이 그동안 추진해왔던 남북 상호군비통제 및 군축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 남한이 육군병력을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고,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부근에서 후방으로 군대를 물린 것은 좋은 징후다. 또 서해교전을 계기로 서해상에서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방안과 군사분계선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단하고 선전수단을 제거한 것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면한 인권운동의 과제

이와 같은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남한의 인권·평화운동 진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평화운동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전쟁이 발발한 이후 평화운동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고, 지금도 자이툰 부대의 철수를 위력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평화운동세력들이 결집할 필요가 있으며,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과 방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평화운동이 당면해서 해야 할 일도 많다. 당장은 평택 미군기지를 비롯해 주한미군의 재배치에 따른 주한미군의 성격의 변화(선제공격을 위한 기동타격대화)를 분명히 폭로해야 하고, 주민들만이 아니라 한반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를 저지해내야 한다. 북핵만이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의 한반도 전쟁기지화 전략 자체가 전쟁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미국의 주권국을 무시한 일방적인 작전계획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군사·국방정책이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 비밀주의적으로 계획되고 집행되는 현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적인 군사전략에 찌들어 있는 국방관료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해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정보에 어떻게 접근하고, 통제하느냐는 앞으로 군사적인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과제다.
이런 군사적인 측면과 함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있는 군사주의적 잔재와 망령들을 평화주의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냉전적 의식을 유지·확산시키는 반인권적인 법령(국가보안법 등)과 제도의 폐지도 군사주의의 폐해를 단절시키기 위한 중요한 투쟁 대상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와 같이 일상적으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문화를 강요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은 군사주의에 대한 중요한 불복종방식이다. 그 외에도 학교나 직장생활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위계질서 등 군사주의적 문화를 척결하기 위한 투쟁도 평화운동의 과제들이다.
이처럼 군대에서부터 일상생활까지 평화주의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노력들이 꾸준히 경주되고, 군사적 대결에 반대하는 평화세력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부여안고 평화운동에 더욱 깊이 연대를 넘어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 이상의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내용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2006. 11. 11. 심포지엄 <외교통상·군산안보 정책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자료집에서 인용, 정리하였음.
인권오름 제 29 호 [기사입력] 2006년 11월 15일 15:25:0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