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치의 시작은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것에서부터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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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정원의 간첩혐의 조작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선개입에 연이어 터진 문제로 국정원의 환골탈태도 약속했지만 그 내용은 국정원 스스로 개혁하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남재준 국정원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위중한 시기라며 사퇴요구를 거부했다. 위중한 시기라니, 하루 뒤에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한 걸까? 물론 그가 말한 위중한 시기는 북에서 날아왔다는 무인기 소동을 뜻하는 것이었다.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그날, 국회에서는 향후 5년간 한국이 부담할 한미방위비분담금 협정을 비준했다. 이 협정으로 한국은 09년 대비 21% 증가한 연간 9200억 원의 방위비를 주한 미군 주둔비용으로 지불하게 되었다. 25일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사실상 연기하기로 했고 한미일 3국간 군사정보공유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북을 주적으로 삼으면서 중국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는 미국의 아시아 군사지배전략에 일본과 함께 충실히 복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가 아닌 국방, 통일 컨트롤타워라고 밝힌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말처럼 정부는 사회의 자원을 사람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가 아닌 파멸적 군사-국가안보에 쏟아 붓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된 일들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청와대-국방부-국정원-경찰이 강조하는 안보, 공공의 안녕이 무엇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 3월에 있었던 14년만의 의사파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진하려던 의료영리화 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되고 있다. 그것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3월 20일 대통령 주재로 ‘규제완화 끝장토론’이라는 대국민 이벤트를 진행하고 나서 정부가 가장 공들여 내세운 게 보건의료분야 규제완화이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원격진료는 5월부터 시범 실시해 10월에 본격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규제완화’라는 말장난으로 공공적 틀에서 관리 육성되고 있던 건강권을 자본의 돈벌이감으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상 최장기간 파업을 이어가며 철도노조와 국민들이 막아내려 했던 철도 민영화도 정부의 애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철도산업에 대한 사회적 대화기구로 제안한 국회의 철도발전소위가 4월 17일 결과보고서를 내고 활동을 종료했다. 애초에 어떤 강제력도 없었던 위원회이지만 결과보고서 내용도 실망스럽다. 수서발 KTX 자회사 지분의 민간매각 방지 조항 법제화도 권고하지 못하고, 파업 이후에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철도노조원들의 해고와 징계에 대해서도 어떤 권고도 채택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 정부 안대로 수서발 KTX 자회사는 설립되었고, 올해 안에 코레일에서 화물 운송 부분을 분리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내년에는 정비부분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구조, 시스템 모두 결국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

세월호 사고로 모두들 비통해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에도 저들은 자신들의 원래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모두들 설명하기 어려운 회한과 슬픔을 미안함으로 표현하고 있을 때, 저들은 우리 모두 죄인이라며 성찰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면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한다. 이번 사고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언젠가는 곪아터질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모두들 말한다. 구조-시스템의 문제라는 건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게 아니다. 사회시스템을 구상하고 그에 따라 자원을 배치하고 국가와 기업을 경영하고 이를 통해 분명한 이해와 지배를 관철하는 일군의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때로는 정부 통치로, 때로는 냉혹한 기업경영으로 경험하는 일상과 사건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구체적인 힘이다. 밖으로는 북을, 안으로는 범죄자들을 희생양 삼아 엄청나게 몸집을 불려온 검경-국정원-군대는 그 힘으로 집회시위와 같은 조직된 저항을 통제하고 일상적인 사찰과 감시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선거에 개입하고 연일 계속되는 북과의 군사적 대결국면을 강화하면서 정당해산시도라는 강수를 두는 데 충실한 손발이 되고 있다. 세월호에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경찰과 유가족들을 가로막으며 범죄자 취급하는 경찰의 모습은 너무도 일관되지 않는가! 노동자로, 영세 자영업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우리들은 돈-자본의 힘을 매일매일 실감하며 살고 있다. 부당한 상사의 지시, 안전-환경 기준 무시, 비윤리적인 기업 경영 등 한 발 떨어진 제 3자 입장에서는 비판하기 쉬운 일들도 생계가 달려 있는 노동자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고 잘못되고 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노동을 저들의 지시를 받아 수행해야 한다. 세월호 과적 화물 문제로 1인 시위를 했던 이 옆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회사의 상습적인 안전규칙 무시에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와 힘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분명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단결된 노동자들의 힘 또는 정부의 관리와 규제 아래 놓여야 할 기업의 고삐가 풀려있다. 오히려 정부는 그나마 공적 영역으로 보호되던 것마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영리화, 민영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핵심업무, 상시업무를 가리지 않고 가장 저렴하게 노동력을 쓸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은 운영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위험은 보험시장이라는 또 다른 돈벌이 영역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게 이 사회를 운영하는 자들의 구상이다. 어차피 그런 사고는 가난한 자들이나 당하는 것이다. 십 수 년 전에는 모두들 제주도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 후쿠시마는 일본에서도 가난한 동네로 유명했고, 한국의 핵발전소도 되도록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짓는 게 상식이다. 우리가 세월호 사고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은 이제 재난은 발생 원인부터 그 결과까지 철저히 정치적이고 계급적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국가가 침몰하고 있다고도 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근대 사회시스템의 붕괴라며 짐짓 근본적인 진단들을 한다. 다 좋다. 그런데 그런 진단에는 사람이 빠져있다. 침몰하는 한국 사회에도 가진 자들은 여전히 타고 있지 않다. 근대 사회시스템의 붕괴? 원래 근대 자본주의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생명을 손에 쥐고 가진 자들의 배를 불려왔다. 우리 모두 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정말 생존게임이라는 말이 전혀 비유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당신은 누구와 함께 누구와 맞서 싸울 것인가.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92 호 [기사입력] 2014년 05월 14일 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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