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치외면이 문제가 아닌 선거가 문제이다.

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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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집 우편함에 6․ 4 지방선거 공보물이 도착했다. 시장, 교육감,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비례대표까지 읽어야 할 공보물이 한 가득이다. SNS에서도 사람들이 선거 이야기로 한창이다. 지지하는 후보를 이야기 하고, 이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후보들의 공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선거를 통해 세상이 쉽게 바뀌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외면한다고 이야기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권리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가 선거로 전부 이야기 되는 건 불편하다. 하지만 쉽게 그런 이야기를 하긴 어렵다. 투표를 통해 너의 의사를 표현하라는 것과 선거를 통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 사이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공수래 공약, 실현될까 두려운 공약, 공약에서 배제된 사람들

선거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은 후보 간에 비판과 비방이 오가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이를 흑백선전과 비방만 가득한 선거라고 비난하고, 누군가는 후보자에 대한 검증임으로 당연하다고 이야기 한다. 언론과 사람들은 네거티브보단 정책과 공약을 봐야 한다고 한다. 지방선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에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약을 보아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수많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후 지켜지지 않는 공약, 정반대로 가는 공약을 경험했다. 직관적으로 어차피 지켜지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희망'을 노래했고, 공공성과 평등을 말하였지만, 참여정부는 삼성과 손을 잡았고 의료민영화와 비정규직을 도입하고 성장주의를 표방했다.

물론 MB정부는 공약을 잘 지켰다. 대운하 사업을 비롯한 친 재벌, 성장주의, 규제완화 등은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들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MB정부의 실패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는 새누리당 답지 않은 공약을 제시했다. 반값등록금을 비롯한 각종 복지정책은 보수정당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역시나 박근혜 정부는 당선과 동시에 대부분의 공약을 파기했다.

대선의 경험만 해도 이러했다. 힘의 논리를 통해 자본이나 권력을 가진 자를 위한 정책들은 너무나 손쉽게 실현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들은 선거가 끝나면 곧장 사라졌다. 투표권은 일인당 한 표이기에 선거에선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지만 선거가 끝나면 힘을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만이 살아남았다.


6․ 4 지방선거라고 다를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와 각종 안전사고로 인해 후보들의 공약에서 안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너도 나도 안전한 동네를 만들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들이 실현하려는 안전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 각종 규제완화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사람과 공간을 배치하는 사회에서 몇 가지 정책들만으로 안전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또한 그 공약들을 실행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기업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하는 사항인데, 기업의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들이 공약을 실행하는 건 불가능 해 보인다. 평등을 이야기하고, 분배를 이야기한 많은 공약들이 결국 자본과 정치세력의 결탁으로 무너졌다. 공약을 보고 판단하라는 건 현실적 힘의 논리를 삭제한 채 이야기 될 뿐이다.

괜찮은 정치인을 찍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까?

현실적 힘의 논리를 뒤바꾸는 건 결국 가치로 뭉친 세력, 대중의 지지와 조직을 바탕으로 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선거로 귀결되는 정치에서 이는 쉽지 않다. 성소수자, 장애인, 1인가구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문구를 보고도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건, 그들이 현실의 힘에 저항할 순 있지만 아직 그 힘에 영향을 줄 수 없기에 쉽게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괜찮은 정치인을 찾는 일이 된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추구하는 후보, 통제보단 소통을 추구하는 후보 등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정부분 비슷한 후보를 찾아 투표하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된다. 이조차도 할 수 없다면, 최악의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한 차선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투표하는 후보이지만, 그 후보의 가치를 쉽게 지지할 수 없다. 다만 최악의 수를 막기 위한 차선의 선택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있지만, 그들이 속한 정치세력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라진다. 새누리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막기 위해, 그와 비슷한 새정치민주연합을 찍을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치는 지지하지 않지만, 박원순 후보가 괜찮은 후보라는 생각에 투표를 하게 된다. 선거권자가 선택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가치판단에 대한 맥락은 사라지고, 그 결과는 내가 지지할 수 없는 정치세력에 대한 투표로만 남게 된다.

선거를 넘어 사회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6․ 4 지방선거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면 세상이 변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괜찮은 개인의 후보가 좋은 정책을 펼칠 순 있겠지만, 그것이 평등을 추구하는 가치가 정치화되는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투표행위가 자본과 결탁한 특정한 정치세력에 정당성을 부여할까봐 걱정된다. 그렇기에 쉽게 누군가에게도 표를 던지기 망설여진다.

선거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고, 그중에 조금이나마 나은 후보를 투표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정치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 자본과 권력가들에게 집중된 힘, 그들의 입맛을 벗어나는 정책이 실현 불가능한 사회에서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 그리고 우리의 상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작은 어쩌면 서초동 삼성 본사 앞에 있는 삼성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일 수도 있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피해자를 직시함일 수도 있다. 여러 군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힘을 만들어보자. 세상을 바꾸는 것이 선거가 아닌 우리네 사람들의 힘과 상상이라는 것을 도처에 알리는 게 6․ 4지방선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자.
덧붙이는 글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94 호 [기사입력] 2014년 05월 29일 19: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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