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인권이야기] 2002년엔 월드컵만 있지 않았다.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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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나는 월드컵과 치맥에 푹 빠져있었다.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동국에 열광하는 친구 때문이었는지 뭔지 어쨌든 당시 국가대표 축구 선수 이름도 다 외웠고 경기 일정표까지 줄줄 외울 수 있는 정도였다.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에는 주변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서 술집을 빌려 응원하기도 하고, 대형 스크린으로 축구를 보자고 하는 등 꽤나 적극적으로 굴며 붉은악마에 곧 가입할 기세로 즐겼다. 그렇게 한 달은 축제처럼 지나갔다.

정신줄을 놓고 지내다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와 지독히 더운 여름을 근근이 버티며 지나친 이후에 경기도의 어는 도시, 한적한 도로 한복판에서 여중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을 알게 되었다. 언제 처음 알았는지 시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후 한참 뒤에 뉴스를 통해 촛불집회를 접하여 알게 되었다.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장관을 이루며 뉴스를 장식했다. 집회에 나가본 적도, 그 많은 인파들이 있는 공간에 있어본 적도 없는 나도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것 같아, 연말 수십만이 모이는 촛불 문화제에 함께했다. 그렇게 효순이․미선이의 이름과 의미에 다가갔다.

경기도 파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도로 갓길에서 친구 생일파티를 가던 중학교 1학년 신효순, 심미선 학생이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던 미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부교운반용 궤도차량(AVLM)에 치여 죽었다. 탑승자는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과 선임탑승자 페르난도 니노 병장. 54t 무게의 궤도차량이 피해자들을 완전히 깔고 지나가면서 시신이 훼손돼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현장 수습을 미군이 했고 탑승자들을 기지로 호송하였으며, 한국 경찰은 뒤늦게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한미양국은 반미감정이 격양되는 것을 걱정하여 공동의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관할 지역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질문 하나 해보지 못했다. 결국 사건에 대한 조사는 온전히 진행되지 못했고, 정부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습만 논의 하였다. 결국 미군들은 미군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본국으로 가버렸다.

두 명의 어린 학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죽었는데, 그 죄를 온전히 묻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사과도 듣지 못한 것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 즉 SOFA 때문이었다. 불평등한, 굴욕적인 한미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미SOFA로 인해 수많은 미군범죄가 수십 년에 걸쳐 지독하게 발생했지만, 개선되지 않으며 범죄사실에 대한 사과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미군범죄와 만행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각인되었지만, 한미SOFA 개정의 목소리는 미국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고 수많은 미군 범죄자들은 고향에 돌아가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얼마 전 6월 13일,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12번째 추모제가 열렸다. 아침 일찍 양주역에 도착하니, 군사 훈련 중인지 군인들이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추모제를 하기위해 도착한 사고 현장 도로에는 한․두 명이 지나다닐만한 인도가 곳곳에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천만한 갓길에 장갑차와 군용차들이 줄을 이어 지나가는 군사 훈련 지역 그대로이다. 불평등한 한미SOFA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바뀔 듯 나아질 듯 하지만 그대로이다. 효순이․미선이를 기억하고 함께했던 사람들도 그대로이면 좋겠지만 그건 또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2002년 그 수많았던 날들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또 그때의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나는 수많은 역사와 진실 앞에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곤 한다. 그리고 2014년 6월 13일, 효순이․미선이를 잊지 않고 평등한 한미관계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순간순간 사업이 있을 때 반짝 기억하고 일정한 기간이 되면 추모하며 일상에선 놓고 잊고 있는 것 아닌가 반성도 많이 된다. 기억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은데, 자꾸 용량을 다한 USB마냥 저장 공간을 찾지 못하고 튕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용량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수많은 사건과 이름을 남기는 시대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기억이 정신에 각인되기까지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모두가 다 아는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든, 그 당시 나와 함께 했던 그들의 모습이든, 나의 마음이든, 내가 바꾸고자 했던 어떤 것이었든. 하나는 반드시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날의 모습에서 한 치 이상 벗어나지 못했음을 뼈아프게 기억하자. 그렇게 정신을 빠짝 챙기고 기억하고, 행동하면 조금은 나아진 세상이 오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현주 님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입니다.
인권오름 제 396 호 [기사입력] 2014년 06월 18일 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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