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도 ‘학벌’의 기득권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기획연재 - 내 삶의 불복종 ⑤] 진보의 이름으로 사교육을 거부한다

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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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김새만큼이나 참 다양하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정보의 누출 우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 이마트에 가지 않는 사람, 자가용 차를 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에서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듯,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소통의 힘을 믿는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런 운동은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 당신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는 우리 옆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수감시절, 출소 이후 활동을 하면서 돈을 어떻게 벌지를 고민하면서 사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수감되기 전까지 열심히 했던 사교육의 기억들을 감방 안에서 곰곰이 반추해보면서 그렇게 낯 뜨거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현실적인 금전적 이해에서 조금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그런 성찰의 시간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어쨌든 밥과 잠을 법무부에서 해결해 주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좌파’랍시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가 자신의 학벌을 밑천 삼아서 그 학벌에 목매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다니.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 사실 별 대단한 결심도 아니건만 감옥에서 “양심적 사교육 거부”라는 글을 써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싣게 되었다. 나름대로 노렸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광고. 왜 성공적인 금연을 위한 조언 중 하나가 ‘주변에 금연 사실을 알려라’이지 않는가. “생각해보니까 이거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나 앞으로 사교육 안 할 거야.” 당시 글의 내용은 길었지만 핵심이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명의 욕심이었다. 사교육을 하면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맘 속의 무거움을 알기에, 그러나 그 무거움을 가지면서도 사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나름의 자극이 되고 싶었다. 이러한 내부적 비판은 당시 내 주변의 활동가들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글 일부를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페미니스트 건 파시스트건 집에서 설거지 안하는 것은 똑같다는 이야기를 진보건 보수건 사교육 시장에서 학벌주의 조장하는 것은 똑같다고 대유하면 비약일까. 페미니스트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학벌을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혹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밖에서 후원을 해주었던 친구에게서 대안교육잡지인 ‘민들레’에서 연락이 와서 글을 그 잡지에 싣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투박한 글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권들의 사교육시장 장악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게 여길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답답함에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면 정말 기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광고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학벌주의와 떨어질 수 없는 사교육 거부...쉽지 않은 결정

지난 5월 충주에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를 했다. 사람들을 만나며 나누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사교육 정말 안 할 거냐는 질문이다. 별것도 아닌데 글까지 쓴 것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 화제다. 사교육 아니면 돈 어떻게 벌거냐는 질문도 이어진다. 뭐, 계획은 있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사교육은 절대 안하련다. 이렇게 답을 하고나면 좀 어색해진다. 여전히도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사교육을 통해서 생활비를 벌고,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다. 다 안다. 그 사람들, 그 동지들 다 안다. 내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내가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다들 힘들게 살고, 어렵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급진적 사상과 주장을 가지고 늘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다.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교육만큼 적당한 게 별로 없다. 과외를 10개 가까이 하면서 대학원 학비를 만들고 집에 생활비를 보내며 공부와 활동을 하는 한 선배는 나에게 그런다. 이것이 치열한 나의 삶이며 자신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교육 어쩌고 하는 비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또 어떤 선배는, 그럼 공교육이 대안이냐고, 사교육 안하는 것이 대안이냐고 묻는다. 함께 평화운동을 했던 이는 그런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나 사교육 아니면 활동 못한다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거 보다는 나은 거 같다고.

이후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자부심은 있지만 유혹도 있다. 사교육, 참 매력적인 돈벌이다. 스트레스야 좀 받겠지만 이만한 돈벌이가 어디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만 좋으면 한 달에 얼마 일하지 않아도 최저임금에 준하는 돈을 벌 수도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선생님’ 소리도 듣는다. 이것저것 ‘왼쪽’의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근데 그 돈, 애들이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내는 돈이다.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돈이다. 입시 때문에 일 년에 백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노동자 한 명이 자살하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살인정권이라 외치는 우리가 왜 그 백여 명의 죽음에는 이리도 무감각한지. 최소한 운동권이라면, 진보주의자라면 현상 이면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속에서 불편해야 한다. 비록 당장은 계속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위 사진:소위 명문대에 많이 보낸다는 유명한 학원은 돈을 모으고 학생들을 모은다. 유명한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은 가장 집값이 비싼 곳이기도 하다.<출처; 청소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어렵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강남 논술시장의 대부분을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교육 중에서도 논술 같은 경우는 운동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요즘 논술의 추세가 조금 진보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라는 이야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런 강사를 찾기도 한다고 한다. 곧 ‘한국판 소피스트들’이라는 타이틀 안에 운동권 출신들의 논술강사들이 다뤄질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트럭을 몰며 배추장사를 하는 선배가 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3일 정도 일하고 한 달에 백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번다고 한다. 운동하며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그리고 이 사회에서 돈은 번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인데 너무 고민이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이 쉬워 보이지만 그건 운동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운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럼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역시 어렵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음에도 아예 생각이나 시도조차 없는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활동가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현실이 열악하더라도 삶의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고자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서 ‘운동권’이라는 호칭의 일차적 지칭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가 먼저 놓겠다는 신념으로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늘 자랑스러운 결정이자 가치가 되었다. 수감 시절, 사교육 역시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사교육을 거부한다는 것은 병역거부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회 속에서 그 매력을 거부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사교육 거부자로서 스스로를 다잡아본다.
덧붙이는 글
임재성 님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자 전쟁없는 세상 회원입니다. 아래 주소는 당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실렸던 글, ‘양심적 사교육 거부’. http://www.withoutwar.org/bbs/view.php?id=www_letter_11&no=6
인권오름 제 30 호 [기사입력] 2006년 11월 22일 12: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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