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자리, 수동연세요양병원] HIV감염인 당사자 간병인의 노동과 희망

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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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10년 복지부 장관이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치료방치가 발생하였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가 있어야 하는 주체는 배제한 채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요양서비스제공자가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서는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자 기획연재 한다.

2012년말까지 수동연세요양병원(이하 수동병원)에서 에이즈환자를 간병한 이들은 건강상태가 양호한, HIV에 감염된 이들이었다. 이들은 질병관리본부가 위탁한 간병교육을 받은 ‘동료간병인’이다. ‘동료간병’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차별 및 피해로부터 에이즈환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료간병인들은 에이즈환자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도리어 에이즈환자에게 폭언, 구타, 감시를 했다. 수동병원은 간병인들에게 에이즈환자를 감시하게 했고, 에이즈환자 병실 청소, 환자복 세탁을 직접 하게 하였으며, 에이즈환자 사망 시 시신을 닦는 일까지 시켰다. 썩션, 욕창 드레싱 등도 어쩔 수 없이 했다. 간병인력이 부족한데다 간병서비스외의 일도 하려니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했다. 에이즈환자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환자와 간병인에게 철저한 입막음이 강요되었지만, 2013년 8월 발생한 30대 에이즈환자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동료간병인들이 제일 먼저 수동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증언했다.

수동병원에서뿐만 아니라 급성기치료를 위해 종합병원에 입원한 에이즈환자를 간병하는 이들도 주로 ‘동료간병인’이다. ‘간병지원사업’은 질병관리본부의 예산을 받아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운영한다. 간병지원사업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 때문에 에이즈환자를 간병하려는 이들이 없어서 시작되었고, 이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간병인에게는 자활사업이다. “한국에서 가장 천대받는 병”을 가진 환자를 돌보는 동료간병인의 고달프고 귀중한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기 위해 7월 15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4명은 모두 남성이며, 대한에이즈예방협회(이하 협회) 소속 동료간병인 A(34세, 간병경력 2년), B(62세, 간병경력 2년), C(47세, 간병경력 7년)와 에이즈활동가(46세, 활동경력 10년)이다. 이들이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병원은 수동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의료원, 국립경찰병원, 부산대병원, 순천향병원, 서울대병원, 강동성심병원 등이며, 공동간병과 일대일간병의 경력이 있다. 동료간병인들의 목소리를 주로 남기기 위해 간병인력 배치와 관리 업무를 하는 에이즈활동가의 이야기는 편집 과정에서 많이 줄였다.

에이즈 활동가 / 전에는 급여총액 보장 없이 무조건 시급제였다. 재작년부터 국민기초수급 ‘이행급여’(기초생활수급자이나 최저생계비 이상 수입이 있는 경우 현금급여는 중지하고 의료급여만 지급함)를 적용받고 있다. 올해는 고정 10명에 대해 24시간 12일 근무(288시간)/월 150만원 급여를 보장하고 있다. 공동간병의 경우 환자 2~2.5명당 1인의 간병인이 배치된다. 중국교포 간병인은 업무자질 문제로 배치하지 않는다. 올해 벌어진 수동병원 사태로 12명의 간병인을 추가로 모집하여 근무에 임하고 있다.

에이즈환자/간병인이 당하는 차별

B / 병원 측에서 (에이즈)감염인 환자들 대하는 태도가 다른 환자들을 대하는 것과 확연히 다를 때가 가장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A / 감염내과 환자라 해도 다른 환자들에게는 의료진이 비닐장갑을 끼지 않고 맨 살로 만지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환자들에게만은 반드시 장갑을 여러 겹 끼고 다룬다. 물리치료를 가도 쪽지에 병명이 적혀 있다. 당연히 물리치료사의 표정과 태도가 다르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친절하게 말도 걸고 관절도 눌러주는데, 우리 환자에게는 아이 콘택(눈맞춤)도 없고 만지지도 않으려 한다. ‘나중에 내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해도 저렇게 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대놓고 하는 차별이면 어떻게라도 하겠지만 일상적인 표정과 태도와 시선은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한다. 욕창 거즈는 원래 간호사나 의사가 갈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환부에서 떼어내는 것을 대체로 간병인이 하고 새로 붙이는 것만 간호사가 한다. 의사 간호사들이 처음에는 손을 많이 떨기도 한다. 그러니 테이프 하나 떼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 손으로 살을 눌러주고 다른 손으로 떼어야 덜 아프고 살갗이 벗겨지지 않는데, 장갑 낀 한 손 만으로 하려고 하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아프고 살갗이 벗겨진다. 더구나 장갑을 두 세 개씩 끼고 하니 더욱 어설프다. 간호와 간병 업무를 구분하려다가도,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혐오를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환자가 많이 안 좋아져서 의사 간호사들 여러 명이 왔었다. 급한 처치를 마치고 모두 나가고 내가 후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병실 밖에 있던 간호사들 옆을 지나가는데, 얼굴을 찡그리고 진저리치는 모습을 하며 ‘아유, 내 어깨에 닿았어. 옷에 닿았어.’ 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 말 안하고 지나갔다.... 환자뿐 아니라 간병인인 나도 무시하는 거다. 환자가 사망했는데 안에서는 슬픈 표정을 하다가 밖에 나와서는 ‘아, 나를 만졌어. 벗고 싶어’라고도 한다. 아무리 마음을 접어놓는다지만 계속 상처는 쌓인다. 젊은 환자가 들어오면 ‘얼마나 난잡하게 놀았으면... ’ 하고 쑥덕거리기도 한다.

C / 간병과 간호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결국 내 환자’라는 생각에 웬만하면 참고 관행적으로 하는 간호 업무를 하게 된다. 봉사하러 온 사람들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들도 우리 환자들을 회피하고 우리까지도 무시하는 게 느껴진다. 아마 신입 의사였던 것 같은데 채혈과정에서 피를 바닥에 흘려놓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나갔다. 나는 현장에서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는 편이다. 간호사에게 의사 이름을 물어봤더니 안 가르쳐주었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무마하려고만 했다. 상담 간호사를 찾아 그 의사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하면서 문제제기를 분명히 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A / 시트를 금방 갈았는데 (의료인이) 바로 와서 시트를 더럽혀 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나가 버린다. 시트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와상환자의 경우는 정말 힘들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다.

C / 병실 청소는 청소 아줌마가 하는 게 의무지만, 간병인들이 솔선해서 자기 시간에 하는 경우 많다. 나는 대체로 내가 알아서 한다. 수동병원의 경우는 병실 청소를 의례 간병인에게 시켰으니 문제가 되었다. 큰 종합병원은 복도 뿐 아니라 병실까지 청소 아줌마들이 의무적으로 한다.


의료 현장에서 HIV감염인 인권 교육 절실

B /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감염인 관련 공식적 교육이 없다. 규정상 일정규모 이상 병원은 감염 질환 관련 교육이 의무적이다. 그런데 HIV/AIDS 관련 교육은 제대로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인권교육은 빠지고 기술적 교육만 하고 있다. 감염 확률 낮다는 등의 교육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다. 만에 하나를 피해놓고 보자는 막연하고 과잉된 공포심이 문제다.

에이즈 활동가 / 사실 모든 감염질환 환자에 대해 장갑을 끼고 처치하는 것이 표준지침이다. 우리 환자만 그러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스스로 만지고 쓰다듬고 하는 걸 보여주면 그 사람들도 바뀔 것이다. 현장에서 간호사나 다른 간병인과의 화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변 못하는 에이즈환자를 일반 간병인(비감염 간병인. 보통 ‘여사님’이라고 호칭. 이들이 에이즈환자를 함께 간병하기도 함.)이 직접 대변을 파내는 모습을 보았다. 교육 때 이야기해보니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모르게 걱정을 많이 하고 있더라. HIV 관련 교육을 받고 와서는 안심된다고 하더라.

간병 노동 / 다른 기회 / 다른 전망

에이즈 활동가 / 현재의 근무조건과 급여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여타 간병인과 같이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각종 수당과 고용보험 및 퇴직금이 없다. 하지만 다른 간병인보다는 좋은 조건이다. 협회가 관리하는 간병인 수를 차차 늘릴 계획이지만 예산 확보의 문제여서 올해 사업을 충실하게 잘 해야 다음 해에 늘릴 수 있다. 간병인 개인으로는 임금 총액의 문제도 있지만, 국민기초수급자로서의 현재에 머물 것이냐 아니면 다른 기회의 가능성이 있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약이 좋아져서 에이즈 질병 자체는 이제 치료만 꾸준히 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현 상황을 벗어나서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자기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B /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144만원으로 모자라지는 않는다. 감염 전에는 건축일, 다방 종업원, 장사 등을 했었다. 감염 후 주로 간병 일을 했고 그 외에 협회 건물관리를 했다. 건강검진이 요구되지 않는 고시원 총무 일도 했다.

우리 사회가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 많고 간병노동을 싸구려 취급하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도 감염인 인권 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세상의 평가를 떠나, 간병 일은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는 면에서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다. 특히 감염인을 돌보는 일이어서 더 마음이 간다. 나는 현재의 내 일과 상황에 대체로 만족한다. 7개월 정도 (에이즈) 환자로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봐서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은 지를 잘 알고 있고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생을 포기했던 사람으로서, 자포자기하는 환자를 볼 때 가장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 (B는 1995년 감염사실을 알았고, 96년 신나를 몸에 붓고 불을 붙여 자살을 기도했다. 그 일로 얼굴과 몸에 화상 자국이 남았다.) 나이도 있고 해서 다른 직업 계획은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기를 권하고 싶고, 다른 기회들이 주어져야 한다.

A / 지금 34세인 나로서는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고 싶다. 감염되기 전에 하던 전기전자의 회로 분야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작년에 간병 일을 쉬는 동안 취업해 보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다가, 결국 피검사 때문에 포기했다. 그 회사는 건강검진 병원을 지정했고 검진 항목에 피검사가 있었다. 일부러 전화해서 피검사 항목을 물어보니 HIV 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 관련이 없는 전기전자 분야에서까지 감염인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어차피 의료나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려는 거다. 간병 일에 갇히지 않고 한의원 보조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남성 간호 인력은 정신병원 같은 곳으로도 많이 취업이 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생각하고 있다.

C / 감염 전에는 자영업도 했고 플라스틱 사출 관련 직장생활도 했다. 감염되고 나서는 간병일이 유일한 생계 노동이다. 다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이제 어렵다고 본다. 돈을 모으면 분식가게 같은 자영업을 하고 싶다. 대학 4학년인 딸이 하나 있어서 학비니 용돈이 들어가느라 144만원으로는 빠듯하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이어서 걱정이다.

A / 감염인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에 간병 취업 정보를 올렸었는데, 대체로 안 좋아하더라. 수동병원 사태가 심각한데다, 소문은 더 왜곡되고 과장되기까지 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따돌림 당할까봐 모르는 척 하게 된다. 간병 일 하다 자기 얼굴이 오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아픈 사람들의 몸 냄새나 지저분한 일이라는 생각에 오래 못하고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다.

에이즈 활동가 / 깨어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전망을 만들어나가야 본인은 물론 다른 감염인에게도 길이 열린다. 감염인 간병인들의 경우 이직률 높다. 경력 십 년차 간병인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다. 나이가 있는 감염인에게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솔직히 다른 직종에 취업하는 것이 어렵다. 십년 전 내가 협회 들어왔을 때 결심한 것은 이 곳에서 한 눈 안 팔지 말고 내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면서도 사회복지학과 졸업이니 가격증이니 하는 학벌과 ‘증’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 단지 경력과 실력만으로는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사실 의료 현장에서 간병인 없으면 병실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증’이라도 따놓으면 내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자부심도 가지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뒤로든 앞으로든 길을 만들 수 있다. 감염인 당사자들에 의한 간병이 환자에게 최적이라는 평가는 모두가 동의한다.

우리는 환자를 가장 잘 아는, 환자를 위한 사람이다.

A / 우리 환자는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오는 경우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간병인이 더 잘 아는 일에 가족이 과도하게 간섭하거나 모르면서 우길 때 난감하다. 간병인은 때로는 환자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실제로 가족이 아니니까 결정적인 상황에서 무시되고 배제된다. 우리는 환자를 위한 사람이고 환자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간병인이 왜 보호자 행세를 하느냐?’ ‘그냥 간병인 하세요‘ 등의 말로 그냥 지키기만 하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 사람 취급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족이나 의료진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돼도 필요한 말을 잘 안하고 소극적이 된다.

B / 니 주제를 알라는 듯이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 덕분인지 나는 그럴 때 할 말을 한다. 가족들의 경우 환자를 귀찮은 사람 취급하고, 마지못해 와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내게 들리도록 푸념과 싫은 소리를 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가족들도 간병인이 감염인임을 안다. 그러니 내게 하는 소리이기도 한 거다. 나는 신경 안 쓰고 내 일과 내 말을 한다.

C / 환자가 잘못되면 간병인도 책임질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필요한 말은 해야 한다. 다행히 어떤 가족과는 유대관계가 좋아서, 통화도 자주 하고 밥도 같이 먹기도 한다.

A / 환자 일로 연락해도 전화도 문자도 안 받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보호자가 전화번호를 바꾸고 연락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기저귀 등 추가경비 들어가는 게 싫어서 대놓고 ‘아껴서 써 달라’는 소리도 한다. 세안 할 때 너무 세게 밀면 벗겨지거나 여차하면 상처가 난다. 우리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 잘 낫지도 않아서 각질제거 정도만 하며 얼굴을 씻기는데, ‘왜 이 정도 밖에 못 해주냐?’며 구박하기도 한다. 어떤 가족은 자기들이 수염이나 머리를 깎아주면서 상처를 많이 만들어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가족과 의견이 다른 것은 ‘간호과에 물어 보겠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간호과의 지시에 따른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문제가 안 된다. 물론 좋은 분들도 많다.

에이즈 활동가 / 환자의 상태호전을 위해서는 의료진보다 간병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B간병인이 3개월 동안 돌보았는데 정말 많이 좋아졌었다. 그러다 다른 곳으로 보내졌는데 다시 엉망이 됐더라. 그만큼 간병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늘 상 벌어지는 아웃팅

B / 나의 감염인 여부에 대해서는 스스로 말하지도 않지만 일부러 감추려고도 안한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다인실의 경우 내 환자의 감염인 여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저 환자 에이즈환자에요? 왜 국가가 다 치료해줘요?’ 라며 대놓고 묻더라. ‘아니요, 기초생활수급자라서 그래요’ 라거나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 못 들었어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나야 상관없지만 환자의 의료정보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A / 나는 내 감염 여부도 알려지는 게 싫다. 그런데 어쩌다 보면 말이 건너 건너서 알려지게 되는 것을 느낀다. 수동병원 다인실에 있을 때 간호사만 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시선과 태도가 표 나게 다르거나 반대로 ‘안됐다’는 표정을 하며 갑자기 내 손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간병하는 여사님들은 ‘왜 젊은 남자가 이 일을 해요?’ ‘저 환자를 언제부터 알았어요?’ 하면서 대놓고 떠보기도 한다. 일반 간병인에게도 감염인 인권 관련 교육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에이즈 활동가 / 양면이 있는 거 같다. 우리에 대한 편견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려면 우리 스스로 당당할 필요도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감염인 인권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게 활동가로서 할 일이기도 하다.

A / 하지만 커밍아웃 여부나 시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알고 있던 보호자가 새로 온 환자나 보호자에게 말을 해서 점점 퍼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공동병실에서는 다른 (간병)협회 여사님들끼리 어울려서 우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C /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몰랐던 것 같다. 공간이 잘 분리되었고, 주로 일대일 간병 을 해서 그렇다. 다른 (간병)협회에서 온 간병인들이 우리 협회나 남자간병 등에 대해서는 묻더라. 적당히 둘러댔다. 남자 간병인 자체가 희귀하다 보니 궁금해들 한다.

첫 사망 환자의 기억

B / 협회 소속으로 일한 첫 환자가 내 근무일에 사망했다. 동남아인이었고 완전 와상환자였다. 아마 이주노동자였던 것 같다. 병원비가 엄청 밀려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무시당했던 환자다. 살려고 외국까지 왔는데 저런 신세로 천대받다가 죽었구나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A / 수동병원 근무 일주일이 안 되서 환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했을 때 많이 힘들었다. 열 번 이상 겪고 나니 좀 무뎌졌다고 할까.... 이제는 환자가 돌아가시면 더 깨끗이 닦아드리고 기저귀도 깨끗하게 바꿔드린다. 그렇게 잘 돌보아서 보내드리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 그 분만의 시간이 끝났구나’ 생각하니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

C / 부산대병원에서 1년 6개월을 돌본 환자가 ‘샘물 호스피스’(수동병원 이전에 에이즈환자의 장기요양을 맡았던 곳)로 가서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같이 데리고 가서 병실 정돈까지 다 해주고 돌아왔는데 이틀 만에 사망소식을 듣게 되니, 내가 무언가 부족했었다는 자책감도 들고 많이 힘들었다. 내 환자 중 첫 사망자였다. 지금도 환자가 사망하면 늘 ‘더 잘할 걸’ ‘내 성격 좀 더 죽일 걸’ ‘더 베풀 걸’ 하는 자책이 들곤 한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제도 변화

B / 집중치료를 충분히 받으면 많이 나아질 수 있는데 일반 환자와 똑같이 치료하거나 혹은 더 등한시해서 사망했다고 생각될 때 정말 화가 나고 무력감이 든다. 특히 급성기 우리 환자들에게 입원 기간 3개월 한도를 적용하는 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해 회복이 다른 환자에 비해 월등히 느리고 따라서 입원 기간이 더 필요한 환자가 많다. 암환자나 결핵 환자는 별도의 전문병원이 있고 장기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환자는 무조건 3개월 규정이 적용된다. 그러니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옮길 병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이 간담회에 온 목적은 우리 환자들만 입원하는 전문병원의 절실함에 대해 강조하고 싶어서다. 암이나 결핵은 전문병원이 있다. 그런데 우리 환자는 암에 걸려도 에이즈로만 취급되고 결핵에 걸려도 에이즈로만 취급된다. 우리 환자만 다루는 전문병원이 절실하다. 그 곳에서 아웃팅이나 차별의 염려 없이 충분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HIV/AIDS감염인만의 전문병원 요구에 대해서는 감염인인권단체 안에서 계속 논의 중이다.)

B / 간병 인력의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데다 국가 예산이 매년 어떻게 결정될 지 확실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감염인이든 비감염인이든 간병비는 환자나 가족에게 큰 부담이다. 간병비를 의료보험에 포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후기]

글이 길어질까 봐 내가 했던 질문과 말들은 정리 과정에서 모두 없앴다. 글 끝에 생각을 조금 남긴다.

“간병 노동”을 주제로 한 대담자들의 이야기는 내가 간병/요양 현장에서 만난 남성 간병인/요양보호사들의 것과 거의 같다. 또한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요즘 작업하는 구술 생애사 주인공 할아버지들이 풀어내는 생애 어느 한 골목에 관한 조금은 상세한 이야기다. 혹은 내 삶의 어느 한 대목이다.

그리고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히히만의 죄에 대해 검사는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라고 정리했고,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죄, 희생자를 타자화한 죄”라고 정리했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이방인인 자기 자신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그 토대다.
덧붙이는 글
최현숙 님은 마포 민중의 집 운영위원 입니다.
인권오름 제 401 호 [기사입력] 2014년 07월 23일 19: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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