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의 인권이야기] 시민들은 피해자가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다.

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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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부당해고 투쟁 중에 자결을 시도하고 6월 21일에 눈을 감은 전주시내버스 노동자 진기승 열사의 장례식이 지난 22일에 거행됐다. 돌아가신지 49일째였던 7월 20일, 전주시의 중재를 통해 나온 노사합의안에는 고인의 부당해고 판결에 불복하던 회사가 항소를 철회하는 등의 내용이 있었고 신성여객 조합원들이 합의안을 가결시키며 장례식 절차에 들어갔다. 장례절차가 모두 끝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3개월 이었다. 전주시의 중재안이 나오기까지 열사의 죽음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의 여론이 힘이 됐지만 누군가는 버스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는 핑계로 시민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가뜩이나 합법파업 절차가 어려운 이 사회에서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언덕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시민불편. 언제나 절벽처럼 느껴지는 이 언덕 앞에 노동3권은 헌법에 있는 권리라는 말은 초라해졌다. ‘선의의 피해자’인 시민들은 죄 없이 고생당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언급되었다.

전주시는 버스파업이 있을 때마다 시민불편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문제해결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편함에 대해 그렇게 강조를 하면서도 정작 세금에서 지출되는 보조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지 못하는 버스운영의 구조는 불편함이란 이름 뒤에 숨겨지곤 했다. 또한 노사중재를 하면서도 문제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다. 진기승 열사 문제를 두고 7월 초에 진통 끝에 나온 노사합의안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 대한 항의로 버스노동자들이 부분 파업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문의전화를 하면 전주시 교통담당 공무원은 노조가 시민들을 약 올리려고 파업을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시당국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시민들을 핑계거리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시민단체들까지도 내심 시민들의 불편이 무엇보다 큰 문제라는 뉘앙스를 비추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시민들의 불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근거로 기본권을 위축시키는 시도들도 호시탐탐 있어왔다. 전주지방검찰청은 불법파업 집단·행동 민사소송지원팀 운영안내라는 안내를 하고 있는데 내용인즉슨 불법파업 등으로 유발된 일반 시민들의 피해회복에 대한 법률지원을 위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불법파업 집단’과 ‘행동’이라는 말도 기가 막힌 말이지만 형사사건을 다루는 검찰에서 민사소송지원이라니. 공권력 혹은 법의 저울이 모두에게 평평하지 않고 때론 심할 정도로 기울여져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를 본 사람들 모두 황당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어디 전주시 버스노동자들만의 문제일까.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이 파업과 투쟁을 할 때마다 돌아오는 논리 역시 이와 같았다. 그러고 보면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시민들을 볼모로 잡았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 속에는 사유화가 지속되며 겪는 문제들은 숨기고 시민들을 문제해결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볼모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전주시와 버스회사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으며 그런 시민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이 그간의 버스노동자들과 진기승 열사의 투쟁을 통해 얻은 작은 성과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문제의 책임을 노사 양측에 씌우는 척하며 시민을 내세우는 게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동일 순 없다. 외려 시간이 갈수록 사유화가 공고해지며 공공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공공영역의 상황은 마치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초점을 흐리는 시도들을 드러내는 것이 인권과 더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선의의 피해자 시민들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인권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려고 하는 시도들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함께 남은 버스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채민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02 호 [기사입력] 2014년 08월 07일 12: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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