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일터의 성소수자 평등을 위한 노동운동의 변화들

곽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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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결혼 압박에 시달리고 사생활을 감추느라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는 성소수자 직장인들의 술자리 단골 메뉴였다. 어느 날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아무도 커밍아웃하지 않는 일터, 그 곳은 안녕한지 말이다. 주변에 이렇게 일하는 성소수자들이 많은데도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위축감, 불안 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되묻기 시작했다. 성소수자의 노동할 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성소수자 노동권을 인식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어떤 형태로든 일터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제도를 바꾸는 노력도 할 수 있고 필요성이라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국 사람들 중 약 4% 정도만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고 답한다. 이 말은 곧 내 옆의 동료가 성소수자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운동도 이런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연대의 경험을 통해 편견 넘어서기

성소수자가 일터에서 어떤 차별을 받는단 말인가? 성소수자들이 좀 더 나서서 주장하면 안 되는가? 우선 노동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수많은 의문은 단계를 밟거나 차례대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때로 어떤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투쟁 현장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 싸우는 경험을 통해 편견을 깬다. 이를 통해 일부는 성소수자들이 왜 일터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희망버스에 함께 탔던 한 노동자가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공연을 보고 동성애자를 처음 봤다는(!) 충격에 휩싸였으나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편견의 벽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일화가 그런 경우다.

일터에서 존재감도 없고 권리도 없던 여성노동자, 장애인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비추어 더 깊이 공감하기도 한다.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모멸감을 이해한다는 장기투쟁 중인 해고노동자와 성소수자들의 농성장에 가장 먼저 달려왔다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그렇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는 지지자들이 늘어나면 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제도나 성소수자를 주체로 참여하게끔 하는 기회가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게다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고 동료로 여기는 노동자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연대가 싹트고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앞으로도 더욱 강화되어야할 부분이다. 한편,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로 알려져 있던 것들의 상당수는 노동현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싸울 때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러한 방향이 일터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이다. 노동조합, 노동현장은 성소수자 평등을 자신의 과제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을 하는데 무척 좋은 공간이다. 이제 그 방법들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이것은 노동계급 속의 차별받는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연대의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커밍아웃이 가능한 일터, 지지받는 일터로 바꾸기

많은 연구들이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집단으로 동성애자를 꼽곤 한다. 거리감은 이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편견과 혐오가 건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지내는 공간에서 배제되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느낀다.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이런 거리감을 실감하며 일해야 하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노동조합 ‘조직’의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① 조합원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한 번도 성소수자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통은 성소수자를 만났어도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났는지 모르는 경우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편견은 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에 편견을 바로 잡는 기회가 필요하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기획하여 계획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교육이다. 민주노총만해도 여러 가지 교육을 진행한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독자적인 교육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성평등 교육이나 조합원 교육 중 일부로 내용을 녹여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교육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단체와 함께 내용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둔다면 다양한 경로로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해 알게 되는 조합원들이 많아질 것이다.

② 직접 만나는 기회 만들기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어렵기도 하다. 활동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쉽게 편견의 벽을 허물게 된다.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있는데 성소수자들이 직접 교육을 맡거나 성소수자 관련 영화 등을 상영하면서 이해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물론 투쟁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③ 장기적인 캠페인으로 노동조합의 성소수자 인권 지지 알리기

캠페인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다. 어떤 노동조합 활동가는 오히려 정책이나 교육보다 캠페인이 더 조합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캠페인은 조합원들에게 가장 가깝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캠페인은 더욱 중요하다.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먼저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고 이들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터나 리플렛이 비치되어 있다면 성소수자들은 한층 노동조합에 거리감을 좁히고 신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일터에 ‘나는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합니다.’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지지를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위 사진:<일터나 소지품에 붙일 수 있도록 배포한 스티커>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를 함께 맞잡기

①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학교 만들기

학교는 교사노동자에게도 자신의 현장이다. 지금도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을 지원하고,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거나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있다. 전교조가 주도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 교사 및 학교 구성원을 위한 성소수자 인권 매뉴얼을 보급하고, 전교조 조합원부터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② 일할 권리를 빼앗긴 에이즈 감염인과의 연대

조합원들도 에이즈에 대한 거리감이 매우 크고 이와 관련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보니 직장검진에서의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뿐만 아니라 같이 근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동의 없는 검진을 금지하고 고용차별을 받았을 경우 이를 구제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ILO도 2010년에 이미 채용 시 에이즈 검사는 불가하며 감염여부로 차별해서는 안 되는 점, 감염인의 능력과 건강에 맞는 노동환경의 제공과 같은 포괄적인 정책적 노력을 요하는 국제노동기준 권고안을 채택했다.

③ 트랜스젠더 노동자에게 평등한 일터 만들기

성별변경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주민등록번호와 외모의 불일치 때문에 채용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성별변경은 고용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성별변경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별변경 이후로도 직장에서 편견에 부딪히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성별정체성과 직장에서 알고 있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단지 외모만으로도 부적격인 사람 취급을 받아 해고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보통 해고자가 조용히 회사를 떠나는데 이를 심각한 해고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다투어볼 수 있는 사례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아가 성전환수술 비용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및 병가 등 치료 및 요양기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수술 이후로도 고용을 보장받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양성으로만 구분된 일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화장실, 탈의실, 휴게실 등의 남녀구분은 직장에서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트랜스젠더에게 큰 스트레스다. 여성에게 유니폼 착용을 강요하는 것도 그렇다. 노동조합이 먼저 성별구분 없는 1인 화장실, 개별 탈의실로 바꾸자고 요구할 수 있다. 유니폼이 필요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성별 중립적인 옷으로 바꾸자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제는 꼭 트랜스젠더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노동자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노력은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④ 가족 바깥의 권리를 보장하기

성소수자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사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거나 배우자가 병원 치료를 받아야할 때 보호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건의료 노동자 및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임금 체계와 수당, 복리후생제도를 가족 바깥의 노동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소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 되는 노동조합 되기

노동운동이 성소수자들이 일 년 중 가장 많이 모인다는 퀴어 퍼레이드에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행진한다면 어떨까?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를 노동조합이 맞잡고 간다면 어떨까? 성소수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이 자신에게도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고, 성소수자 아닌 노동자들에게는 (논쟁이 벌어지겠지만) 점차 이러한 과제를 실제로 비중 있게 여기는 기회를 열 것이다. 실제로 외국 LGBT노동운동은 이런 방법을 통해 성소수자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고, 노동운동을 통해 성소수자 권리를 증진한다.

구체적으로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넣고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 때문에 원천 배제되는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장 내 성폭력 외에도 혐오표현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거나, 단체협약에서 먼저 성소수자 커플의 권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가족들도 간병휴가, 가족 돌봄휴가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현행 제도보다 더 적극적인 권리를 먼저 관철시키는 것을 통해 사회전반의 제도적 변화를 위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

우선 성소수자 노동자 지지 그룹을 만들자

성소수자가 평등한 일터를 위해서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 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실제로 성소수자 노동자를 조직하고 하나의 그룹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과 맞닿아있다. 노동조합 내 성소수자 위원회를 만들거나 대의원을 선출할 수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옹호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책무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드러내기는 노동조합의 의지가 확고할수록, 그리하여 이성애자 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혀 인식 전환의 계기를 더 폭넓게 마련할수록 손쉬워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내에 지지 그룹을 만들고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커밍아웃이 어려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나설 수 있기 위한 가장 시급한 조건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새로이 발견하는 경험, 그 힘을 모아 세상을 바꾸는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곽이경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13 호 [기사입력] 2014년 10월 30일 16: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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