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우리에게 프라이버시가 없어진다면

사이버 사찰을 금지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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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프라이버시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프라이버시는 학교에 숙제로 제출하는 일기장과 다른 일기장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그것은 나의 내밀한 생각이었고, 사랑이었고, 꿈이자,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비밀 일기와 함께 성장하였다. 어쩐지 남에게 드러내기 힘든 끄적거림으로부터 시작된 내 프라이버시는 그러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곧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고 앙케이트를 돌리고 수업시간에 남몰래 쪽지를 주고받는 일로 인생을 채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중간에 들킨 쪽지를 큰 소리로 낭독당할 때는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그때 왜 떨었을까. 친구들 앞에 불려 나와 혼나는 것만으로 충분히 치욕스럽기는 했지만, 내심을 들켰다는 생각에 더욱 치욕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그 이후 나는 어떻게 되었던가. 쪽지질을 또 계속했는지, 아니면 그만두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그런 역사들 없이 나라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프라이버시가 파괴될 때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을지 모르겠다.

올 10월은 정보인권 활동가에게 꽉 차게 바쁜 달이었다. 카카오톡 압수수색 기자회견(1일)으로부터 시작되어 전국민 차량번호추적(27일)에 대한 폭로로 저물어간 한 달이었다. 지구적으로도 프라이버시가 화제였다.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 국가안보국(NSA) 대량감시 폭로 이후 유엔 차원에서 계속되어 온 프라이버시 논란을 반테러·인권보장 특별보고관이 이어받았다. 10월 23일 벤 에머슨 특별보고관은 "각국은 대량 감시 프로그램이 온라인 프라이버시를 실질적으로 완전히 말살해버렸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참 끔찍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각하고, 떠들고, 사귀고, 기록하고, 웃고, 아무튼 일상의 모든 것을 다 온라인에 의탁하고 있는데 그 프라이버시가 말살되었다니.

이것은 일차적으로 전자감시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에 따르면, 이 기술적 효능으로 인해 국가 감시가 더 이상 규모나 기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전 세계 인터넷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쓸어와도 뚝딱 검색이 되는 시대이니 감시의 재정적이고 실행적인 제약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게 실시간으로, 침투적으로, 표적에 대해서, 대규모로 감시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없이 못사는 인터넷 서비스들은 이런 대규모 감시에 취약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감시를 촉진하기도 하는 형국이다. 감시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역사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왜,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전자감시 문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돌이켜 볼 수밖에 없게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위 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처음 정진우 씨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던 것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무려 40일치 되는 메시지와 그 상대방 정보를 쓸어 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중에 40일치가 아니라 하루치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사태는 그걸로 끝이 나지 않았다. 우선 카카오톡이 논란을 키웠다. 실시간 영장도 받은 적이 없다는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관계자들이 고압적인 태도로 네티즌과 논박을 벌였다. 대중적 불신이 커졌다. 국회에서는 마침 국정감사 중에 이 문제를 크게 다루며 그간 카카오톡 감청이 편법적으로 집행되었다는 사실도 알렸다. 지난해 철도파업 관련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카카오톡이나 밴드를 압수당했고, 교사들은 세월호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밴드를 압수당했다는 소식도 더불어 알려졌다.

그러나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건을 일부 사람들,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지금까지 300만 명이 국산 메신저에서 외국 메신저로 옮겨갔다고 한다. 왜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이버 망명이 필요했을까. 여기에 이 사건의 핵심이 있다.

사실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권은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지만 그것을 모두가 자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만의 표현수단, 그리고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자유는 모두의 것으로 선언되었지만 사실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후하게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는 반대 주장을 꼭 배포해야 하는 사람들, 은밀한 정치적 밀담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나서서 이 권리들을 요구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주로 반대하는 자들의 문제로, 프라이버시는 은밀한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생활로서 이 권리를 누린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이 작은 기계만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치고 누구와도 쪽지를 주고받는다. 중요한 메시지들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휘발되고 마는 의미 없는 메시지들이 무수하게 오가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내가 말할 수 있고 통신할 수 있는 자유는 이제 거창하지 않다. 모든 사람의 일상에 녹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카카오톡 감시는 모두에게 밀접한 문제가 되었다.

검찰과 박근혜 대통령은 그걸 몰랐다. 9월 16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본인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며 사이버상의 국론 분열에 대응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틀 후 검찰은 허위사실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허위사실(지금은 '명예훼손') 전담반을 꾸렸다. "고소·고발을 주저하는 공적 인물"을 선제적으로 대리하겠다며 사이버 검열을 선포했다. 대통령과 검찰은 자신들이 불온하게 생각하는 세력을 염두에 두었겠으나 놀란 것은 전 국민이었다. 그 회의에 카카오톡 간부가 참석한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한 번씩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카카오톡이 자신의 생각과 언행을 얼마나 고스란히 담고 있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어지러운 세상에 머릿속과 말글이 안 어지러울 수 있나. 이걸 모두 실시간으로 보겠다고? 게다가 정진우 씨 기자회견을 보니 어이쿠, 아무나 압수당하는구나. 특히나 대통령을 거스르면. 그렇게 사이버 망명이 거세졌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카카오톡이 사과했고, 법무부장관이 애매하게 사과했고, 검찰도 모호하게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든 것은 아직도 제자리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당사자들이 궁금해 한 사항들 중 뚜렷하게 해명된 사실도 없다. 카카오톡은 수사기관에 정진우 씨는 물론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얼마나 많은 정보를 넘겼을까? 그 중에 정진우 씨 혐의와 관련이 없는 정치적인 의견이나 사생활에 관련한 것은 얼마나 될까? 경찰과 검찰은 그것을 얼마나 보고 어떻게 보관했을까? 엉뚱한 사람들이 들춰보지는 않았을까? 검찰과 경찰, 그리고 카카오톡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기에만 급급했다. 난데없이 사생활을 난자당한 이용자들의 입장은 안중에 없었다. 정진우 씨와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단지 같은 대화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일체의 내용을 검찰이 가져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이들은 얼마나 황망했을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예전처럼 다시 대화할 자신이 없어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아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권리가 있는지조차 명확치 않다.

그래서 정진우 씨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건은 이렇게 끝날 수는 없는 사건이다. 이제 겨우 시작된 문제이다. 그리고 모두의 문제이다. 이 정부는 정말로 국민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 일상적으로 검열하고 사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사이버 프라이버시가 말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10월 23일 긴급하게 사이버사찰 긴급행동이 발족하였다. 공교롭게도 반테러 보고관의 의미 깊은 발언이 있었던 날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필요한 사회적 장치들은 만들어야 한다. 그 길은 물론 이용자, 시민, 노동자, 즉 모든 당사자들이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감시받지 않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선언으로부터.
덧붙이는 글
장여경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13 호 [기사입력] 2014년 10월 30일 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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