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요의 인권이야기]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 드는 단상들

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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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대한 이야기가 시끌시끌하다. 어떤 기사에서는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면 무척이나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물론 제대로 된 개혁도 못할 것이란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공무원 개혁 자체를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들떠 볼 일도 아닌데 지속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 나의 아버지가 공무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처음에 공무원 연금개혁 이야기를 딱 듣고 들었던 생각은 ‘아..울 아버지 명퇴해야 되나?’ 이였다. 실제로 가족 중에 20~30년 근속을 한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무척 안정감을 주는 삶의 조건이다. 실제로도 어떤 의사가 노후를 대비해 10억을 모으겠단 포부를 말하면서 나의 아버지한테는 공무원 연금이 부럽다 이야길 한 적도 있다. 속으론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로선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진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인 것을 부정 할 순 없었다. 아버지의 연금이 사라진다는 것은 노후에 앞서 당장 나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공무원 연금개혁을 한다는 말에 마치 내가 공무원이라도 된 것처럼 반대의 감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우리 집이(실제론 부모가) 30년을 꾸준히 준비해온 노후준비를 이렇게 하루아침에 갈아엎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안들 수는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과는 시작부터 달랐고 내는 돈의 액수, 기간도 모두 달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향해야 할 사회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고 일단 금액부터 깎자는 정책은 고통분담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공무원 연금공단의 손해는 정부가 잘못한 정책의 결과다. 누구에게 또 다시 책임을 전가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인가!

그렇지만 이 항변이 때론 너무도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자신의 노후를 기댈 수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가입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경우는 2014년 현재를 기준으로 불과 기초연금이란 명목으로 한 달에 10~20만원 용돈도 안 되는 수준의 연금이 나온다. 결정적으로는 국민연금공단 자체가 제대로 된 경제적 기반도, 사회적 신뢰도 없는 형편이라 늘 존속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매월 200~300씩이 지급되는 국가의 연금이 공무원만을 위해 따로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공무원 연금은 물론 국가의 연금정책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권의 꼼수에 말려드는 지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이런 입장들 사이에서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솔직히 답이 보일만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기사들을 찾다 보니 공무원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공무원’의 마음이나 연금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의 노후, 또 나의 노후는 위험하다’는 직관, 이 직관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97년 IMF는 친한 친구가 갑자기 이사를 가도록 만들었고, 중·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살던 친구는 갈 곳이 없어 한 달 내내 학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사건’들은 너무도 흔하지만 15년이 넘도록 내 주변만 해도 아직 재기는커녕 여전히 세대를 막론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다는 이야기뿐이다. 촌동네 군수부터 대통령까지 선거마다 구호는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지만 전국에 폐지 줍는 노인이 전국에 175만이라고 한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나의 노후생활을 위해서 한 푼도 낭비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들과 한 푼도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당연해 보인다.

다시 한 번, 우리사회의 노후 또 나의 노후는 위험하다. 이제 한국 사회는 점점 전후세대가 고령인구로 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은퇴는 할 수 없다. 이는 10년만 지나도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의 분위기가 지금과 같은 이념 갈등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사뭇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도 오가게 한다. 우리는 이미 망망대해에서 조난되었다. 우리를 태우고 안전하게 항해할 배는 해경처럼 우리의 주위만 빙글빙글 돌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물에 빠진 사람과 구명정에 오른(혹은 올랐다고 믿는) 사람들 간의 갈등 속에서 누구도 구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래도 조금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서있어야 할 곳은 구명보트 위냐 아니냐가 아니라 육지라는 사실이다. 망망대해에서 누가 구명정에 탈 것인가를 두고 싸워도 아무도 육지에는 도달 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화 사회를 10여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길 하지만 노인대책보단 출산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지금의 노인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만큼이나 노후의 삶 역시 사회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던 노후를 위해 10억을 모으겠다는 의사의 말은 정말 노후를 위한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나는 평생가도 10억은커녕 당장 1000만원 모으기도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런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삶의 조건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공무원 연금 공단의 빚이 얼마고 세금이 얼마 쓰이는지에 대한 논의가 삭제시킨 우리의 안정적인 노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 싸움을 정치적 꼼수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연금 정책과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로 재구성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13 호 [기사입력] 2014년 10월 30일 17: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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