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의 인권이야기] 박원순과 김영배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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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서울시장이다. 김영배는 성북구청장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름을 걸고 출마했다. 박원순시장은 총 2,752,171표(득 표율 56.125%), 김영배 구청장은 총 124,555표(득표율 55.22%)를 얻어 재선에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이다. 내 주소지와는 상관없는 두 사람이지만 지방선거 당시 이들의 당선을 바랬던 나는 2014년 12월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으로부터 원치 않는 사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12월 10일 (하필이면 세계인권선언의 날) 박원순은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제정과정과 보수 기독교 목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발언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영배는 12월 31일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의 예산이 불용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를 받으면 마음이 풀리거나 용서가 되는 지점이 있을 텐데 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과는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는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가 행정부 수장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대한의 리더십이고, 집행력이다. 그렇기에 소수자에게 사과하는 행위는 정말 최대한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을 경우에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 후 구해야한다. 하지만 12월 10일 박원순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헌장을 선포하지 않은 이유나 그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김영배는 12월 31일 주민참여예산 제안자를 포함한 성소수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원안대로 신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정치적 부담을 이겨내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야할 사람들이, 그것도 인권을 행정의 주요 의제로 삼고 있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소수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모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벼랑 끝이라 표현한 것은 물리적인 벼랑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각 지자체의 인권 관련 사업에 미칠 영향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심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 사진:무지개농성단의 서울시청 점거 농성장 (2014년 12월 6일 ~ 2014년12월 11일)

이 두 사람은 성소수자 관련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입장을 취하기 위해 사과라는 자신들에게는 최선의 정치적 행위를 선택했다.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인권의 제도화 또는 정치화는 어떻게 쟁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어졌다. 12월 11일 무지개 농성단은 서울시청을 점거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선명하게 보여줬고, 그것에 힘을 얻어 더 기갈1)차게 싸울 것을 다짐하며 서울시청을 나왔다. 그렇지만 12월 31일 김용배가 결국 교구협의회에 속한 성북구내 주요 교회 목사들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다며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예산 불용을 하는 현실을 마주했다. 5명 중 2명꼴로 또래 동료와 교사로부터 모욕과 폭력을 경험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5900만원의 예산 집행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성북구의 대형 기독교회 목사들과 싸우는 것이 어찌 성소수자 당사자들만의 몫이겠는가.
위 사진:2014년 12월 31일. <인권도시 성북은 죽었는가?> 항의행동 및 기자회견

이제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그 동안 애매모호했던 애정 관계를 해소하고, 새롭게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민주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취했던 보수적인 입장이 현실 정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이는지를 목격했다. 또한 그들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가치를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로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새롭게 주목할 것은 과연 인권의 정치, 소수자를 위한 정치는 과연 무엇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아 근심들이 많지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심정으로서는 더 이상 무엇이 두렵겠는가. 박원순과 김영배의 사과로부터 새삼 배운 것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시민들과의 연대였고,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무엇인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자. 양의 해라고 순탄하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사전적 의미는 ‘배고픔과 목마름’이지만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주로 ‘기갈을 부린다.는 관용어로 흔히 사용되며 기갈난 사람처럼 성깔을 부리거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로 카리스마 있는 끼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게이컬쳐홀릭 244p,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씨네21북스)
덧붙이는 글
이종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사무국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8: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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