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감시하는 사회

어린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불감증 심각하다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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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지난 시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납량특집 영화제목이 아니다. 각 IT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하고 있는 ‘어린이 안전관리시스템’을 통해 어른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보고되는 상황은 공포영화 그 자체다.


#1 꿈의 학교, 유비쿼터스 세상?

승진이네 학교는 등.하교 길에 길게 줄을 서서 교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 사람씩 통과할 정도로 교문이 좁지도 않은데, 아니면 한 줄 서기 운동이라도 하는 걸까? 얼마 전부터 ‘어린이 안전관리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전자명찰을 등.하교 시간마다 단말기에 찍어 부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학교 도착과 출발 시간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 교장 선생님은 사회가 험악해져 어린이에 대한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대책으로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들의 불안을 해결하고자 전자명찰을 도입했다고 말하면서 이제 우리 학교에도 유비쿼터스*, 꿈의 학교가 펼쳐질 거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승진이는 전자명찰이 과연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학교 앞 길에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자동차가 전자명찰을 차고 있다고 자신을 피해갈까? 친구랑 놀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도 전자명찰을 차고 있으면 하나도 다치지 않을까? 오히려 전자명찰 때문에 이제는 집에 갈 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어도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승진이는 전자명찰이 마치 전자족쇄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2 금 안에만 있어라?

며칠 전 생일이었던 성지는 집으로 가는 길에 민주네 집에 들렀다. 선물을 깜빡하고 집에 놓고 왔다며 성지에게 집에 들러 선물을 받아 가면 어떻겠냐고 민주가 제안한 것. 무슨 선물일까? 성지는 잔뜩 기대가 된다. 선물을 뜯어보니 너무너무 읽고 싶었던 만화책이 아닌가. 성지는 룰루랄라 한껏 들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다짜고짜 엄마는 소리를 지르신다. “도대체 어디를 갔다가 오는 거야? 너는 애가 왜 그러니?” 평소 귀가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은 게 이렇게 야단맞을 일인가 생각하니 성지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엄마는 얼마 전에 ‘아이키즈’라는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활동하는 지역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지역을 벗어나기만 하면 부모의 휴대전화 메시지로 이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

‘그럼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는지 일일이 엄마한테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아휴’ 성지는 엄마가 그어 놓은 금을 벗어날 때마다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감옥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끔직해진다.


#3 프라이버시 없이는 자유도 없다

자전거를 타다 말고 현아는 잠깐 멈춰 서서 전화를 건다. “엄마 나 친구네 동네 갔다 와도 돼? 문자메시지 갈 거잖아.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예전 같으면 쌩 하고 달려 내려가며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자유롭지 않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다. 잠시 친구들이랑 만든 비밀 카페를 들어가 보고 싶지만 집에서는 통 접속을 할 수가 없다. ‘PC 키즈케어’라는 서비스 신청 후 모든 기록이 컴퓨터에 남아 부모님이 현아가 이용한 사이트를 하나하나 살피며 꼬치꼬치 캐물어보는 통에 비밀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어른들에게 꼭 물어봐야 하고,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시시콜콜 다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현아는 자신이 정말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어른들의 꼭두각시 인형인지 헷갈린다.

위 사진: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초등학생 전자명찰 도입 반대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박김형준>


가상으로 꾸며본 이야기지만 전자명찰, 키즈폰 등 최근 들어 ‘어린이 안전관리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하나 같이 아이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고 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안전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반면, 아이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명확한 안전대책들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교육청과 학부모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점.

지난 4월 20일 서울시 교육청은 KT와 맺은 초등학교 정보화 사업 양해각서 체결로 전자명찰 도입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다행히 교육․인권․학부모 단체들의 반발로 서울시 교육청은 양해각서를 해지했지만 이미 일선 학교에서는 ‘전자명찰 가입 신청서’를 만들어 가정통신문으로 배포하고 있어 정보인권 침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부산시 교육청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U-스쿨' 등 전국적으로 KT ‘키즈케어’만 500여 곳 넘게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아이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불감증의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 프라이버시, 누구의 것인가

아이들에 대한 안전사고를 접할 때마다 어른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안고 집을 나서야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안전대책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전자칩과 휴대전화에 기댄 감시와 통제로 어른들의 불안을 잠시 잠재울 수는 있어도,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하는 교육청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길 수는 있어도, 그리고 ‘안전’을 내세워 기업들이 자신의 배를 불릴 수는 있어도, 결코 아이들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을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부모라도,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왔다곤 하더라도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남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2: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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