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노동자들의 투쟁, 내일을 위한 시간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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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 회사에 자신의 숙련기술을 팔기 위해 찾아온 사업자, 즉 자영업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AT&T에는 이미 임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지만, 모든 직원들을 단기 계약직과 같은 임시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점차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은 없는’ 형태로 직장은 ‘프로젝트’ 또는 ‘사업영역’으로 대체되고 있다.”

1996년 초 미국 통신회사 AT&T가 약 4만 명의 노동자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인사관리담당 부사장인 제임스 메도우스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4만 명을 단번에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 기업가의 호언장담대로 흘러왔다. 그런데 최근 이지순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의 경제일간지 좌담회 기사로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결국은 계약직으로 가야지 평생고용은 힘들다. 대신 해고당할 위기가 있는 만큼 임금을 더 높여야 하고, 기업이 새로운 공장을 만들 때부터 시범적으로 전원 계약제 고용을 시행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학자가 기업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언론에 대고 당당하게 말하는 상황이 서글프지만 재계-학계-정부가 하나가 되어 노동자를, 국민을 더 쥐어짜기 위해서 벼랑으로 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쉽게 줄일 수 있도록 고용을 유연화-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해주고, 노동자들은 경제를 위해 해고를 감수하라는 것이다.

100% 대한민국, 100% 비정규직

지난 20여 년 동안 그들이 늘 해오던 말인데, 요즘 무슨 새로운 것인 냥 떠드는 건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틀을 바꾸겠다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요과제로 내세웠다. 20년 동안 정부와 대자본이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은 확고한 이중구조를 갖게 되었다. 10%의 정규직-대기업-노조 사업장과 90%의 비정규직-중소기업-무노조 사업장으로. 바로 정부는 이 이중구조를 깨겠다는 것이다. 100% 비정규직-무노조 사업장으로. 박근혜의 대선공약인 100% 대한민국의 실체다.

비정규직을 계약기간이 정해진 고용관계라고 협소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모두 비정규직인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낸 해고와 임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처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더라도 업무평가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정부는 노조를 통해 스스로를 지켜온 노동자들을 노동시장 격차의 주범으로 몰아가면서 비정규직화 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파견, 사내하청, 기간제, 각종 하도급 계약과 같이 노동시장의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된 비정규직을 법 개정을 통해 더욱 확대하려고 한다.

그렇게 100% 비정규직 노동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저들은 모든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뽑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 공동체를 운영해야 할 책임을 지닌 정부가 그 구성원들을 기업회계 장부상의 비용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바로 이게 자본의 논리다.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삶과 시간은 자본이 필요에 의해서 비용을 들여 구입한 특수한 생산원료인 노동으로 간주될 뿐이다. 이를 최대한 자유롭게, 저렴하게 이용하기 위해 자본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온 여러 책임들을 파견, 하도급 계약과 같은 각종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통해 회피하려고 한다. 자본의 논리는 간단하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유롭게 해고하고, 저임금을 주며, 최대한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합을 통해 가장 저렴한 노동비용을 도출한다. 마치 우리가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 인터넷 쇼핑을 하듯이 말이다. 문제는 노동비용이 바로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위 사진:[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그래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인간을 물건이나 비용 취급하는 자본의 힘에 맞서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을 위해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싸워왔다. 지난 16일 금호타이어 노동자가 회사의 직무 도급화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스타케미칼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라가 있고, AT&T 부사장의 말처럼 숙련기술을 갖춘 자영업자로 SK, LG와 계약한 케이블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대형광고판에 올라가 있다. 그 밖에 크고 작은 노동자 투쟁이 많이 있지만, 한 해에 수 만 명이 정리해고 되고 그 몇 배가 계약종료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현실을 감안해보면 너무 조용하다. 작년 한 해 금융권에서 5만 명이상이 해고되었고, KT는 또다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해 9천여 명을 해고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얼마나 쉽게 수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대로 된 노조가 없어서 싸우기도 어려웠겠지만, 금융권과 KT 노동자들이 해고 반대 투쟁을 했을 때 쏟아질 사회적 질타가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은 아닐까? 대기업-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거나 스스로를 검열하지는 않았을까? 노동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계약 종료, 파견 종료 형태의 해고는 어떤가. 해고를 하는 사용자나 당하는 노동자 모두 ‘해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고 당장 겪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은 다르지 않을 테지만, ‘해고’가 아닌 ‘계약 종료’이기에 내 권리와 존엄을 침해받았다고 느끼기보다는 거래 관계의 종료로 인식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본에 고용되어 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겪으며 감내해야 하는 고통들은 모두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훼손당하는 과정이다. 반대로 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의 삶과 존엄을 세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주인공 산드라가 계약종료도 해고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7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27일 1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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