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국가인권위원회 5년 평가와 과제 ②] 국가인권위 인권피해 구제기능의 형식화에 대한 우려

“인권침해 구제는 국가인권위 본연의 업무”

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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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회단체들의 투쟁으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가 5주년을 맞았다. 당시 인권단체들은 민간법인을 주장하는 법무부로 대변되는 보수 세력과 대치하면서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인권기구의 국가기관화를 관철시켰다. 인권전담 국가기관으로서의 국가인권위 설립은 구조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많은 우리 현실에 인권침해를 구제하고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를 평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 구제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인권위 설립의 본질이며 국가인권위가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토대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인권위는 그래도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곳이다. 소송 등은 경제적 여유가 되지 못해 힘든 상황에서 간이하고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곳, 진정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국민들은 국가인권위를 찾아간다.

위 사진: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고 있는 장애인들<출처;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그러나 이러한 진정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실상은 국가인권위 진정건 중 각하 또는 기각이 전체 진정사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의 피해 구제기능의 형식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인권위 진정사건 현황과 구제기능의 문제점, 구제기능의 실질화를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5년간 진정사건 현황

올 6월로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건이 2만 건을 넘어섰다. 1년에 평균 약 4천 건 이상의 진정이 접수된 것으로 국가인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기대와 달리 2006년 8월 31일자로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전체 20,654건의 진정 중 각하 13,384건(전체 진정건수 중 68.9%로 이중 인권침해는 10,256건, 차별은 1,559건)과 기각 4,576건(전체 진정건수 중 23.6%, 이중 인권침해는 4,109건, 차별은 387건)은 권고와 피해구제 등이 인용된 진정 846건에 비해 현저히 높다.

국가인권위 구제기능의 문제점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볼 때 진정 조사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는 물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치만을 가지고 무조건 국가인권위만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하와 기각사건들에 대해서 국가인권위가 법 상의 한계만을 논하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특히 국가인권위가 진정사건과 관련된 회의와 회의록 등을 철저히 비공개로 하고 있어 인권단체 입장에서는 그 내용과 실체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 국가인권위는 각하 또는 기각의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사유별 통계는 제공하고 있지만 이 부분만을 가지고는 인권침해가 월등히 높은 문제의 원인은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 인권침해의 구조적인 문제, 혹은 새로 제기되는 인권침해 영역 등에 대해서는 정보조차 공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다.

각하 또는 기각 원인별 문제점

각하 또는 기각의 원인별 몇 가지 문제점과 그 원인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진정인이 조사를 원하지 않거나 진정을 취하한 경우다. 이 경우가 2006년 9월 30일 현재 각하진정의 10,419건 중 3,299건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진정 취하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국가인권위의 신속한 구제조치가 늦어짐으로 인해 구제의 실효성이 떨어져 진정을 취하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의 연도별 진정사건 처리소요일수는, 침해사건의 경우 174일, 차별사건의 경우 163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진정인들이 국가인권위가 피해 구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국가인권위의 설립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원인과 구제방안이 시급히 수립되어야 한다.

두 번째, 국가인권위는 구제절차 진행 중인 사건, 즉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 당연 각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재판의 원인이 아닌 사안으로 진정을 해도 각하하고 있어 국민의 진정권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국가인권위가 사법부와 관련된 권고에는 지극히 소극적인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 상의 한계점도 아닌 이유로 진정인이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을 국민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세 번째, 경찰의 수사과정과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진정의 각하이다. 인권침해 기관 중 피진정이 많이 되는 기관은 경찰과 검찰이다. 이 중 경찰에 대한 진정은 부당수사, 편파수사, 인격권 침해,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진정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검찰에 대한 진정은 편파수사, 불공정 불기소 등에 대한 진정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기 국가인권위는 이 부분에 대해 몇 차례 논의를 통해 결국 제32조 제1항 제1호와 제5호(*)를 근거로 각하 결정을 내려 이 부분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진정사건의 내용을 파악해 세부적으로 분류한 이후 검토를 통해 피해구제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네 번째, 진정사건이 사실이 아님이 명백하거나 사실이라고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따른 기각이다. 이는 국가인권위의 증거 중심의 수사기관과 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경찰, 검찰의 직권남용에 의한 인격권 침해,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가혹행위 등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를 갖추기 힘들다. 그리고 차별행위 중 성희롱의 경우는 증인확보도 어려워 대부분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를 수사기관과 같이 증거의 유무로 판정하고 조사와 구제에 적극적이지 않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조사기법에 대한 개발과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 번째, 관련 진정은 기각하고 대신 정책권고로 결정한 진정건에 대한 문제가 있다. 물론 국가인권위가 진정은 각하하고 전향적으로 정책 권고를 한 사회보호법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건도 있다. 하지만 관련정책만 권고하고 원인이 된 진정을 기각하는 것은 국가인권위가 피해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외면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섯 번째, 국가인권위가 인권기준 외의 기준으로 진정사건을 각하, 기각하는 경우의 문제이다. 인권활동이 전무한 사람 혹은 인권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부 사람들로 국가인권위 위원들이 구성되면서 법적인 잣대나 외부의 평가 등에 따라 국가인권위가 피해구제 업무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들이다. 특히 국가인권위 사무처에서 상임위원회나 전원위원회에 인용결정을 올려도 상임위나 전원위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진정을 각하 또는 기각하였다. 단적인 예로, 최근 2006년 10월 23일 제20차 전원위원회에서는 ‘혼인여부 등을 이유로 한 재화용역 공급차별-공무원 맞춤형 복지제도의 가족점수 차별’과 관련해 배우자에게 더 큰 점수를 주는 것을 미혼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권고치 않기로 결정했다.

구제기능의 실질화를 위한 국가인권위

국가인권위 본연의 업무는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에 대한 피해구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에 진정된 사건들에 대한 충실한 피해구제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자세와 태도가 필요하다.

우선 국가인권위는 인권기준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국제인권법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법 질서에 맞춘 듯한 비인권적인 결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앞으로 철저히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는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진정인의 눈높이와 입장에서 경청하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조사기법을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인력을 대폭 확대해 이 부분에 대한 역량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또 각하사건을 줄이고 피해구제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가인권위 설립 당시 진정사건의 원인이 된 사건 기한을 1년으로 규정한 것은 당시 검찰, 경찰과의 업무중복에 따른 혼란이 예상되어 기한을 둔 것이지만 이제는 그러한 문제가 없는 만큼 기한을 일정기간 늘려 개정해야 한다.

국가인권위 5년을 맞으며, 피해구제의 형식화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국가인권위가 국민에게 뿌리내리려면 피해구제기능을 단순히 여러 업무 중의 하나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각하 또는 기각되는 진정의 원인에 대한 파악과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자체가 우리 사회에 어떤 억지력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과 계속 교감해야 한다.

(*) 제32조 (진정의 각하 등) ① 위원회는 접수한 진정이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진정을 각하한다.
1. 진정의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경우
5. 진정이 제기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하여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재판,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 다만, 수사기관이 인지하여 수사 중인 형법 제123조 내지 제125조의 죄에 해당하는 사건과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덧붙이는 글
신수경 님은 새사회연대 정책기획국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33 호 [기사입력] 2006년 12월 12일 19: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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