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살 구역]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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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언니를 시작한 첫 해에 만났던 연지는 나에게 특별한 친구였다. 엠건과 함께 진행했던 여섯 번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후속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나 혼자 진행하게 되었을 때, 그 모둠에는 연지와 다른 한 친구가 있었다. 경험도 부족했고, 혼자 진행을 하며 허덕이는 나에게 연지는 늘 다정했다. 다른 친구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고, 그 친구에게 다정히 말을 걸기도 했다. 관계의 문제가 고조되면서 심지어 울어버리기도 한 나의 못난 점들에 연지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기다려줬다. 그리고 그 친구를 위한 말을 고민해서 건네던 연지는 나에게 많은 걸 알려줬지만, 진행되던 강좌가 끝나면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도 연지는 엄마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어느 밤 느닷없이 자신이 머리를 잘랐다며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고, 매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연지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하고 놀고 싶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 하듯 연지에게 만나자고 말을 했다. 우리 꼭 만나자고 말을 하고 나서야 당황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으로 찾아가야 하는 걸까? 시간 약속을 하고 가면 되는 건가? 연락은 어떻게 하지? 나랑 있는 걸 엄마가 괜찮다고 여길까? 결국 그 후로 연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좁은 관계망 속에 갇히지 않으면 좋겠어

처음 책언니를 시작한 첫 해에 혼란스러웠던 것은 무엇보다 책언니의 의미와 방향이었다. 준비과정에서는 그림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은유를 함께 읽어나가고, 여덟 살이라는 약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나게 만드는 역할, 여덟 살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을 이야기했다. 막연하지만 그런 중심을 가지고 실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어나가며 여덟 살들과 마주했을 때 막연했던 것이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 중 하나가 ‘고립’이라는 키워드였다.

위 사진:그림: 너나

실제로 만나게 된 여덟 살이 살아가는 공간은 집, 학교를 벗어나지 않았고, 맺는 관계 역시 한정적이었다. 청소년들도 집과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직장인들은 집과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 버스를 타거나 어딘가에 갈 수는 있다. 그에 비해 여덟 살은 혼자 이동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혼자 바깥으로 나가 누군가를 만나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여덟 살이 만나게 되는 어른은 부모나 가족, 선생님이 거의 전부다. 누구나 의지하고 싶고 기댈 곳이 필요할 때, 나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고작 서너 명이 전부라면, 심지어 그 관계들이 전부 권위적인 위계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좁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르치거나 혼내는 무서운 사람이 아닌, 정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물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서운 어른이 아니라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힘들어할 때는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언니 같기도 한 그런 친구. 학교생활에, 가족 안에서, 친구 관계에 치이며 힘들어할 때 내가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이 힘든 것이 싫었다. 관계에 대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한동안 애들이 겪고 있는 학교생활의 부대낌을 보며 떠올린 건 나의 10대였다. 중학교 때 은따(?), 왕따(?)같이 애들이 나를 괴롭혔던 적이 있다. 대놓고 무시하기도 하고, 내 욕을 하며 수군댔다. 내 자전거를 망가뜨리기도 한 그들은 나의 학교생활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매일 그들을 피해 다녔고,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그렇게 점점 몰려가던 내가 덜 힘들기 위한 방법을 선택했다. 나보다 약한 애를 무시하는 것. 위계관계 속에 내 위치를 파악하고 아래의 사람을 둔 채 무시하는 행동을 하며, 내가 그래도 너보단 낫다는 치사한 마음으로 버텨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살아가게 되고 나서야 그때 그 친구를 무시하는 대신 함께 어울렸더라면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랬더라면 괴롭힘이 괴롭힘을 낳고, 약자가 약자에게 잔인해지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그런 여지가 없었다. ‘우리’보다 ‘내’가 중요했고, 서로를 짓밟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 대신, 함께 살아간다는 걸 몸으로 익혔었더라면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마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이외의 방법들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힘들었다. 내가 결국 약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자를 짓밟는 게 결코 나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간혹 해주는 사람이 있다 해도 권위적인 태도에 그저 혼나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그런 어른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에 조심스럽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는다고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지는 않더라고. 오히려 그렇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는 게 더 행복했다고.

엄마도 아이도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고립되지 않는 것은 여덟 살이 덜 힘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엄마들에게도 별다르지 않다. 언젠가 한 엄마와 둘이서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게 된 적이 있었다. 그분이 가진 엄마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하다 우리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나는 엄마를 정말 좋아하고 친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엄마의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에는 엄마가 신경질 내서 슬펐다는 이야기가 많다. 나에게 그렇게 행동했던 엄마에 대해 원망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왜 그때 약했던 나에게 그랬었냐는 서러움이었다. 그 원망을 내려놓게 된 건 스무 살 무렵, 내 주변의 20대 후반의 친구들을 보면서였다. 양육의 부담을 엄마에게만 지우는 이 사회에서 내 친구들의 나이에 낳은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는 게 너무나 가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나를 키울 수 있었다면 엄마도 힘들지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엄마의 힘듦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립은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면서, 결국 엄마도 아이도 힘들게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 자신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글썽이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고, 그건 자식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태도로, 관계로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 힘이 되는 관계를 많이 맺으며 살아간다는 게 훨씬 더 우리에게 유리한 일이라는 걸.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30 호 [기사입력] 2015년 03월 18일 11: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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