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호의 인권이야기] 위장도급 판정 받고도 쫓겨난 동양시멘트 비정규 노동자들

오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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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넣어 발파해 쏟아진 석회석을 덤프트럭으로 옮겨 해머크레셔로 보낸다. 컨베이어를 타고 공장으로 흘러온 분쇄된 석회석을 화학약품과 섞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시멘트가 만들어진다. 과정 하나하나가 하나의 공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 시멘트 산업 자체가 광산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 산업이다 보니 석회암이 많이 나는 강원도 지역에 유난히 시멘트 사업은 발달해있다. 그리고 강원도 삼척에는 ‘동양시멘트’라는 회사가 있다. 삼척에 뿌리 내린지 60년이 된 동양시멘트는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불린다.

동양시멘트에는 9개의 협력사, 420여 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협력업체(이하 ‘하청업체’) 중 (주)동일과 (유)두성기업 소속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를 만들고, 지난 3월 4일부터 현재까지 동양시멘트 정문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설 연휴 전날인 2월 17일, 하청업체인 ‘동일’이 노동자 101명에게 집단해고를 통고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출처: 참세상

위험한 작업장, 판치는 불법

짧게는 2~3년, 길게는 15~20년을 일해 온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했고, 작업장은 위험했다. 노동자들의 60%가 시급 6,000원도 받지 못했고, 연장근로시간은 200시간이 넘어설 때가 다반사였다. 작업장에서 재해사고가 벌어져도 산재처리를 하는 경우가 전무했으며, 회사는 병원 치료비를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며 진료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대형장비의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는 수시로 벌어졌고, 장비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장비가 대피 중인 상황에서 발파하는 경우도 빈번했고, 보호장비 없이 안전모만 착용하고 현장에 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업환경 측정 관계자가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작업을 하느냐.”며 반문할 정도였지만, 작업환경 측정 결과는 언제나 허용 수치 내로 나왔다.

이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의혹은 이들이 ‘불법파견’ 노동자라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두 업체는 모두 동양시멘트의 사무실과 장비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독자적인 기계나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동양시멘트 원청은 동일과 두성기업 노동자들의 소속 사업체를 서로 바꾸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연장근로 등을 지시했다. 원청 관리자들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시말서를 쓰라고 지시했으며, 하청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 2개의 출근부를 모두 기재했다. 동양시멘트 정규직 직원이 부족하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나가서 일을 하고 동양시멘트의 작업일보에 기록까지 했다. 하청업체라고 들어와 22년째 있었던 업체들이 사업주로서의 실체도 없고, 원청인 동양시멘트가 노동자들에게 직접 현장 지휘명령을 내리기까지 한 것이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직후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고, 2015년 2월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원청과 하청업체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청업체들이 사업주로서의 독자성과 독립성이 없고 그 존재가 형식적일 뿐이기에 동양시멘트의 노무 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고, 이에 동양시멘트 비정규 노동자들과 원청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한다는, 즉 위장도급을 해왔다는 사실을 고용노동부가 확인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을 넘어 ‘위장도급’ 판정을 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까지 고용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불법파견 판정에 있어 하청업체가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있다며 ‘위장도급’은 인정하지 않고, 원청이 사용사업주로서 지휘‧명령을 했다는 ‘파견근로’만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정을 통해 원청이 파견법 위반을 넘어 근로기준법 제9조, 중간착취의 배제를 위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기간노동계에서 제기해 온 시멘트업계 전반의 불법고용 실태를 고용노동부가 입증한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힘겨웠던 싸움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이후 노동조합이 걸어왔던 길은 험난했다.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미뤘고, 회사는 어용노조를 만들었으며, 삼척시와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편파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진정서를 낸 것은 2014년 6월(동일)과 7월(두성기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조사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판정을 미뤘고, 결국 성이 난 노동자들이 태백지청 점거농성에 들어간 후에야 위장도급 판정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기간 회사의 탄압도 심각했다. 두성기업은 2014년 10월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관리자들이 앞장서 만들어진 어용노조는 설립되자마자 대표교섭노조가 되었다. 하지만 이 노동조합은 제대로 된 총회도 개최하지 않고, 노조 가입이 금지된 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부랴부랴 만든 가짜 노동조합이었다. 이에 민주노조는 수차례 과반수노조에 대한 이의를 신청했고, 설립신고 직권취소를 요청했으나 삼척시와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편파적으로 회사의 편을 들어줬다. 삼척시청 앞에서의 선전전과 결의대회 등을 진행한 끝에서야 어용노조의 설립신고는 취소되었고, 민주노조가 대표교섭노조로 인정받았다.

이렇듯 긴 싸움이 끝나고,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특히 설 연휴를 앞두고 받은 위장도급 판정문은 노동자들의 얼굴을 밝게 했다. 그러나 2월 17일, 원청은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이 통보한 ‘직접고용’에 맞서 하청업체와 체결한 도급 계약 해지를 선택했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의 피해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 앉게 된 것이다.

이 싸움이 갖는 의미는 노동자들이 얻어낸 판결이 ‘불법파견’을 넘어 ‘위장도급’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세련된’ 대기업들이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한 꼼수들을 동원한 것과는 달리, 동양시멘트는 노골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노동계는 사내하청이 근로기준법에 적시된 중간착취의 배제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들을 무수히 제기했지만 이를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통해 대다수 불법파견 업체들에 대해 묵시적 근로계약 인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계기들이 열린 것이다.

이 싸움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시멘트 업계 전반의 불법고용실태를 드러냈다는 점과 함께 지역 중소기업의 고용실태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대기업도 아니고,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이다 보니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싸움은 사회적으로 집중 받지 못했다. 동양시멘트는 시멘트 업계 2위의 회사다. 국내 7대 시멘트업계의 정규직 비율은 50.52%로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업계 2위의 고용형태가 이러한데 다른 곳들은 오죽할까. 이 싸움이 승리한다면 시멘트업계만이 아닌 지방에서 노골적으로 불법을 벌이고 있을 지방 중견기업들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 이것이 동양시멘트 비정규 노동자들의 싸움이 소중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오진호 님은 비정규직없는세상 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36 호 [기사입력] 2015년 04월 30일 17: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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