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네팔 지진 참사, 자연재해로만 말할 수 있을까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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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1999년 처음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의 첫 도착지는 네팔 카트만두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자정이 가까워 오는 그 시각 공항에 깔린 짙은 어둠에 놀랐고, 총을 들고 경비를 서던 군인들의 존재에 또 한 번 놀랐다. 카트만두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전을 방불케 하는 치안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공항의 어둠과 총을 든 군인들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15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따닥따닥 붙어있던 야트막한 복층구조의 집들과 메케한 공기, 다양한 인종으로 북적이던 카트만두가 떠오른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경유하여 인도로 향한 내 발걸음은 여행 내내 ‘빈곤’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했다. 왜 이토록 가난한가?

위 사진:네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사진 제공=한국 카리타스) (출처: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4월 25일 네팔에서 들려온 비보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슬픔에 빠졌다. 네팔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는 5월 1일 현재 사상자만 7,500명이 넘었고 부상자는 1만4천3백여 명에 이른다. 유엔에 따르면, 60만 채의 집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부서졌고 2천800만 인구 가운데 800만 명이 지진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의 결과는 동일하지 않아

지진 발생 후 열흘이 지난 지금, 네팔은 ‘자연재해와 인재’라는 이중의 아픔을 겪고 있다. 아이티와 칠레 대규모 지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파괴, 쓰나미와 허리케인 등 다양한 재해 는 지구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인류 모두에게 동일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는다. 재해는 취약한 집단에, 가난한 사람에, 힘없는 나라에 그렇지 않은 개인과 집단, 나라에 비해 더 큰 피해로 다가온다. 또한 그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지에 따라, 안전을 어떻게 구조화했는가에 따라, 구성원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어쩌면 ‘자연재해’는 인간의 행위와 사회체제를 숨기기 위한 고유명사가 아닐까. 재해를 ‘개인화’하고 공동체를 비롯한 ‘국가책임을 방기’하며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가리기 위해 고안해놓은 자연재해는 그저 ‘자연’재해만은 아니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2013년부터 네팔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네팔 정부는 지진 발생 시 대처해야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07년 왕정이 무너진 후, 네팔국민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네팔공산당이 연합한 현재 집권정당은 헌법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정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재해를 예방하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구조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이 부재하다. 그로 인한 재난의 피해는 카트만두를 비롯해 네팔의 빈민들에게 집중되었다. 네팔 내 빈곤한 지역의 집들이 대부분 시멘트와 강철이 아닌 흙과 벽돌로 지어졌고, 좁은 땅에다 4~5층씩 올려지은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피해가 컸다.

무너진 집을 뒤로하고 네팔 사람들은 거리와 광장에 간이천막을 치고 생존을 이어간다. 부상자들은 치료받지 못하고 식수와 식량은 부족하기만 하다. 구호물자가 도착해도 적절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아 항의의 목소리가 높다. 수도 카트만두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시신 수습도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 많다. 지금도 농촌지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실제 얼마일지 파악하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세계문화유산이 붕괴되어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고 네팔 경제가 10년은 뒤로 후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해가 더 가혹할 것이라는 짐작은 짐작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위 사진:이재민들이 지내는 텐트촌.(사진 제공=이금연) (출처: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지금 네팔에서는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도로를 재건하는 일이 시급하다. 살만한 집과 도로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며 안전한 식수와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일들은 사실상 네팔이라는 공동체를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지만 네팔인 스스로 하기엔 인적․물적 자원이 거의 없다. 네팔 정부도 생존자 구조를 마무리하고 이재민 대책과 재건을 위한 구호작업으로 전환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시적인 지원을 넘어 사회 구조를 다시 만드는 일에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이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면서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서 국제사회는 일시적인 지원과 협력을 넘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인도적 지원’라는 명분을 앞세워 식민지배를 영속화하거나 공여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정책을 취해왔다. 말이 인도적 지원이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자신들의 권력을 그 공동체에 유지시키려는 전략으로 인해 민초들은 이중 삼중으로 수탈을 겪어왔다. 지금도 남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서로 네팔에 차관제의와 댐, 철도 등 공공시설 투자를 약속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원조경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권기구와 국제인권단체들은 원조를 하는 데 있어서 ‘인권기반접근’을 채택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네팔 정부가 빈곤을 극복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하는 데 자원들을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네팔이라는 공동체를 스스로 복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역량을 높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기반접근을 통해 재해민 지원과 공동체 재건이 이뤄져야 단지 지진 이전의 네팔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네팔 정부가 자원 분배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도록 노력하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네팔이 처한 다양한 사회적 조건을 보면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빈곤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네팔을 떠나 인근 아시아 지역에 이주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 농민들이 식량생산보다 커피 같은 특정작물을 재배하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구조를 함께 바꾸는 일이 동시에 필요하다. 빈곤하기에 재해 앞에 취약하고 그 취약함이 다시금 더 많은 빈곤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일이 지금 네팔에서 시급하게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네팔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려 한다. 네팔에 가있는 구호활동가들과 네팔 주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면서.
덧붙이는 글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37 호 [기사입력] 2015년 05월 07일 2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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