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퀴어퍼레이드를 보장하라!

공권력의 묵인과 방조는 또 다른 혐오 폭력이다

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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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6월에 열릴 열여섯 번째 퀴어문화축제를 기다리던 중 두 가지 소식을 접했다. 지난 5월 22일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최초로 동성결혼을 제도화하였다. 이 역사적인 날을 환호하기 위해 아일랜드 시민들은 더블린 광장에 모여 ‘평등(EQUAL)'이라 적힌 피켓과 함께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지금 또 다른 곳에 펼쳐져 있는 무지개 깃발이 겹쳐졌다. 이 시간에도 서울 남대문경찰서(서장 변관수) 바깥 입구에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대기하는 이들이 있다. 다가올 6월 28일, 퀴어문화축제의 메인행사인 퀴어퍼레이드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서다. 그 대기선 제일 앞에는 ’반동성애‘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 측 사람들이 있다.

위 사진:퀴어퍼레이드 집회 신고를 위해 남대문경찰서 바깥 입구에 서있는 사람들

올해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공공연히 “막겠다”고 말해왔던 이들은 퀴어문화축제가 개막하는 6월 9일 행사장소인 서울광장 인근에서 동성애 반대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들은 6월 13일 대학로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진행할 것이라는 정보를 바탕으로 혜화경찰서에 이미 1순위로 집회 신고를 한 상태이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폐막하기 전 진행하려는 퀴어퍼레이드의 행진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먼저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 지금 남대문경찰서 앞을 24시간 내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자리마다 주변에서 방해를 일삼아온 반동성애 세력들은 이제 아예 퀴어퍼레이드가 열릴 수 없도록 서울 시내 주요거점들에 대한 집회 신고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개최일을 기준으로 720시간(30일) 전부터 집회 신고를 할 수 있는 현행 집시법 절차를 악용하여 성소수자 인권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찰은 이 문제를 행정 절차상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집회 장소를 둘러싼 갈등으로 단순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공권력의 태도는 오히려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폭력을 뒷받침하는 것과도 같다. 작년 퀴어퍼레이드 때도, 얼마 전 아이다호데이 때도 이들은 조직적으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폭력적으로 행사를 방해했다. 거기서 경찰은?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기 위해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과 반동성애 세력들 사이에 질서유지선을 치고 경찰관을 배치하며 ‘앙상하게’ 공간 분리를 했으니 자신들이 할 몫은 다했다는 식이었다. 반동성애 세력이 욕설을 하고,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경찰은 한없이 소극적인 대처만을 했을 뿐이었다. ‘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공권력의 묵인과 방조는 혐오 폭력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경찰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위 사진:5월 27일 "남대문경찰서의 졸속적 집회 신고 절차 공지에 대한 규탄과 안전한 퀴어문화축제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지난 겨울, 반동성애 세력의 반대를 이유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 좌초되는 상황에 항의하며 돌입한 서울시청 농성, 그때 그곳에 펼쳐진 무지개 현수막에 쓰여 있던 문구였다. 작년 LGBT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는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체 성소수자 중 42%가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고, 28%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로 한정할 경우, 이 수치는 절반 가까이로 올라간다.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차별과 폭력 때문에 성소수자임을 드러낼 수 없는 악순환, 차별과 폭력을 기제로 하면서 성소수자를 ‘삭제’하려는 현실은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고 관계 맺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용기 있게 ‘존재’를 드러내고, 서로를 오롯이 만나며 자긍심을 함께 북돋는 시간, 그래서 퀴어퍼레이드의 또 다른 명칭은 바로 자긍심 행진(PRIDE PARADE)이기도 하다.

반동성애 세력들이 집회 신고라는 형식을 갖추며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경찰도 알고 있다. 퀴어퍼레이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공권력이 해야 할 역할은 ‘순서’를 운운하며 사실상 저들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차별과 폭력의 문제로 분명히 규정하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증오발언과 혐한(嫌韓)시위가 지속되는 상황에 대해 지난 여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와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크게 우려를 표하며 일본 정부에 “차별과 폭력을 부르는 인종적 우월감이나 증오를 조장하는 주장을 모두 금지”하고 이러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룰’을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결코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자 금지되어야 할 범죄이다.

“차별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는 공권력이 오히려 이러한 부정의를 지지하거나 직접적으로 행하고 있다”면서 2007년 유럽지방정부회의는 'LGBT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폭력에 공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범죄로 규정하여 철저히 수사하고 기소하는 등 공공이 이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다. 조직적인 혐오 폭력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한국사회에서 공권력이 지금 당장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차별과 혐오 폭력에 맞서 ‘사랑’과 ‘저항’을 외치는 퀴어퍼레이드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그 자리를 함께 지키자. 그것은 우리 사회에 평등의 가치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나 배제 없이 지켜져야만 하는 존엄성을 함께 세우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40 호 [기사입력] 2015년 05월 28일 2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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