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진짜 고래가 보고 싶다!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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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 교수는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우 실험을 했다. 실험자는 아이에게 마시멜로우를 하나 주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이 마시멜로우를 먹지 않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실험자가 밖으로 나갔을 때,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를 관찰한다.
어떤 아이는 실험자가 방을 나가자마자 마시멜로우를 입으로 가져간다. 어떤 아이는 마시멜로우를 한참을 바라본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한입 베어 무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끝끝내 마시멜로우의 유혹을 뿌리쳤다. 실험 결과 1/3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시멜로우를 먹었다. 나머지 2/3는 끝까지 참았다.
실험자는 15년 뒤 이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다. 조사 결과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은 학업성취도가 높고 사회성이 뛰어났다. 반면, 유혹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은 학업성취도가 낮고 우유부단하며 자아존중감이 낮았다. 곧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이 삶의 전반에서 우수했다는 것이다. 월터 미셸은 미래의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현재의 작은 유혹을 이겨내는 힘, 만족지연능력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보고했다.

마시멜로우 실험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실험이다. 이 실험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아이들의 학업성취와 관련한 주제에서 자주 거론되는 예시다. 아직도 많은 학부모와 교사에게는 커다란 영감을 준다.
하지만 마시멜로우 실험은 너무도 허점이 많은 실험이다. 단순히 네 살 때, 마시멜로우를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만으로 아이의 삶을 가늠할 수는 없다. 실험자가 보지 못한 1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한 아이가 어떠한 삶의 가치관을 세우게 되었는지, 삶 속에 어떠한 행복의 기준을 품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학업성취도와 사회에서의 성공만으로 삶의 질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과연 마시멜로우를 먹지 않은 아이들이 먹은 아이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마시멜로우 실험은 아이들에게 성공을 강요하고, 경쟁을 정당화하려는 어른들의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고래가 보고 싶니?

고래를 만나고 싶은 아이. 작가는 이 아이에게 조용히 고래를 만나는 방법을 일러준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문학동네)을 소개한다.

“고래가 보고 싶니? 그렇다면 창문이 있어야 해. 그리고 바다도.
시간도 있어야 해.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
‘저건 그냥 새잖아.’ 깨달을 시간도.“

아이는 고래를 기다리며 많은 유혹들을 만난다. 어여쁜 분홍색에 달콤한 향기를 품은 장미꽃, 깃발을 팔락이는 작은 배, 오도카니 앉아있는 펠리컨, 꼬물꼬물 초록색 벌레,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다가는 고래를 놓쳐버릴지 모른다. 이런 유혹을 알뜰하게 떨쳐내야만 고래를 볼 수 있다.

“고래가 정말 보고 싶니? 그렇다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마.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거야.“

삶을 살다보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 온다. 또 주어진 목표를 위해 집중하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이러한 순간을 만났을 때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삶의 순간을 만났을 때, 우리는 먼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바라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바람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종종 좌절을 한다. 그 이유는 내 안에 자리 잡으려는 유혹들 때문이다. 유혹은 성난 괴물의 모습으로,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작가가 그렸듯, 어여쁜 꽃으로, 호기심을 잔뜩 품은 펠리컨으로, 여유로운 구름으로 다가온다. 이 유혹들을 떨쳐내지 못하면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곧 목표를 잊고 내가 원하던 것은 여기에 있노라고 나 자신과 타협을 시작한다.
유혹을 이겨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기다림이다.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충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인해 찾아오는 지리한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인연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고래는 어디에 있을까?

"왜 자꾸 고래가 보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게 참 이상한 거 같아.“

나와 함께 책을 읽은 아이가 말했다. 조금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이 말은 나의 맘을 뜨끔하게 했다. ‘지금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고래를 바라보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커다란 부를 얻는 것, 대단한 명예를 얻는 것을 고래라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강요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래를 상상할 만한 여유가 없다. 자신의 삶에 중요한 가치관을 세우고, 세상을 돌아보며 자신의 꿈을 탐색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의 꿈은 오롯이 어른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타고난 개성과 가능성은 세상이 바라는,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깎이고 다듬어진다. 내면에는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과 경쟁의 당위성으로 꽉꽉 채워진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러준 고래만을 기다리며 치열하고 잔혹한 경쟁을 묵묵히도 견뎌내야만 한다.

“고래를 보려면... 왜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많은 거야?”

우리나라 어린이의 행복지수는 3년 연속 OECD 최하위다.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는 아이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놀이터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학교 공부로도 부족한 아이들은 서너 개의 학원을 가야 한다.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두꺼운 책들을 머릿속으로 우겨넣고 있다. 서너 시가 잠을 자며 시험공부를 한다는 초등학생의 이야기는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부대낄 시간도,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낼 시간도 없다.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 책은 너무도 위험하다. 어른들에게 근사한 핑계거리가 되었던 마시멜로우 실험처럼, 이 책 또한 아이들에게 경쟁을 당연시하고, 현재를 희생하라 훈계하는 자기계발서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책의 내용을 오롯이 자아성찰의 기회로, 삶의 철학의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이 퍽퍽한 세상에.

또 다른 마시멜로우 이야기

2012년, 록펠러 대학의 키드 교수 팀은 또 다른 마시멜로우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두 모둠으로 나누고, 컵을 예쁘게 꾸미라는 과제를 준다. 그리고 각 모둠에게 크레파스를 나누어주었다. 실험자는 곧 아이들에게 컵을 꾸밀 다른 재료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몇 분 뒤, 실험자는 한 그룹에게는 약속한 미술재료를 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재료를 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신뢰 환경과 비신뢰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두 모둠에게 마시멜로우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신뢰 환경의 아이들은 평균 12분을 기다렸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15분을 기다리고 마시멜로우를 먹지 않았다. 반면 비신뢰 환경의 아이들은 평균 3분을 기다렸고, 15분을 기다린 아이는 한 명이었다.
1966년, 월터 미셸 교수가 했던 첫 번째 마시멜로우 실험이 만족지연능력과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한 실험이었다면, 이 실험은 마시멜로우를 앞에 두고 기다릴 수 있는 아이와 기다릴 수 없는 아이를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른들이 보여준 신뢰였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실험에서 보여준 ‘신뢰’를 쌓는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의심하지 않고, 아이들이 삶과 부대끼며 나름의 가치관과 태도를 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다.

공룡책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시절, 공룡을 볼 수 없음에 풀이 죽었던 나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고래를 보았다. 거대한 생명체가 너무도 자유롭게 바다를 날고 있었다. 혹등고래였다.
공룡책을 잠시 덮고 고래와 관련한 책을 폈다. 혹등고래의 크기는 15m. 티라노사우루스만한 생명체가 아직도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크기가 30m인 흰수염고래의 존재를 알고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아파토사우르스 만한 생명체가 저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니!
그때부터 나는 고래가 보고 싶었다.
고래는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존재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직접 손으로 만져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존재다.

우리 모두 간절히 바라는, 간절히 만나고 싶은 고래가 있다. 우리 모두가 그 간절함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언젠가 그 고래와 자유롭게 바다를 날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김인호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42 호 [기사입력] 2015년 06월 12일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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