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고리원전 폐로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핵발전 정책을 유지하는 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아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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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를 끈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은 첫 직장생활을 바둑의 수에 비유하곤 했다. 바둑을 잘 모르지만 사회생활이란 수읽기란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정부가 하는 꼼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최근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결정한 고리원전 1호기 폐쇄 결정을 들으니 <미생>이 떠올랐다.

동수상응. 바둑알 한 개 한 개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착점을 결정하기 전에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까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리원전 폐쇄 결정이 무엇을 고려한 것인지 우리가 읽고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부터 위험한 고리1호기를 폐쇄해야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건 좋은 일이지만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6월 17일 고리원전 1호기는 경제성이 불확실하고, 폐쇄하더라도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수명연장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의 권고를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수명이 연장된 노후한 원전이 일으키는 사고가 계속 있었고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 폭발 사고를 지근거리에서 겪은 우리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지만 무작정 환영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부는 여전히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과 공급중심의 에너지정책을 폐기하지 않았고, 원전 해체의 경험이 없는데다 폐기물 관리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은 그대로

정부는 5년마다 <에너지기본계획>과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에너지정책을 세우는데 여전히 원전을 바탕에 두고 있다. 2014년에 박근혜 정부가 세운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에너지수요량을 높게 책정하였고 핵발전 비중도 여전히 높았다. 그런데도 23기 수준인 핵발전소를 39기 이상으로 늘리는 계획이었지만 정부는 핵발전 비중 목표가 과거 41%에서 29%로 낮춰졌다는 식의 발표를 했다. 또한 얼마 전 산자부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서 “원전 등 친환경전원 비중을 늘리겠다”고 궤변을 펼쳤다. 게다가 영덕 원전 1,2호기 건설을 확정짓고 나머지 신규 2기를 어디에 지을 지는 2018년 한수원 의사에 따라 확정짓겠다고 했다. 2012년부터 전력 수요 증가율은 2.5%, 1.8%, 0.6%로 감소추세인데도 원전을 짓겠다는 전력계획은 에너지다소비 업종과 핵산업계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력수급을 위해선 새롭게 원전을 지어야 한다’며 이번 고리원전 폐쇄 결정을 정부가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근거로 악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원전 해체라는 새로운 경험

그리고 고리원전을 해체(폐로)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도 해체과정에서 많은 재정이 들고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고리원전은 1차 연장운행이 종료되는 2017년 6월까지 운행한 뒤, 2018년 7월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해체 계획서를 제출하고 2022년 6월 원안위 승인을 받아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 따르면, 사용 후 핵연료 냉각 및 안전관리 계획 수립에 5년 이상, 제염과 해체에 7년, 부지 복원에 2년을 예상하니 최소 15년 후에야 고리1호기를 완전히 폐로할 수 있다.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해체 비용은 2012년 6월 기준으로 '방사성폐기물 관리비용 산정위원회'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1기당 6033억 원이다. 하지만 이 비용에는 폐로 방식과 절차, 폐로에 대한 규제 수준, 노동자 피폭에 따른 보상 등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핵발전소 해체 비용은 세계 평균 비용이 6546억 원이며, 추산금 편차도 큰 상태에서 일률적인 비용을 산정한 정도이다. 또한 한수원은 고방사선 원자로 및 내장품 원격 절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국내 핵발전소 해체 전문 인력은 약 20명 뿐이다.

해체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도 어마어마하다. 일본 최초 상업용 원자로인 도카이원전 1호기(출력 16만6000㎾)는 폐로 작업을 시작한지 14년이나 지난 지금도 핵심 부분인 원자로 해체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고 한다. 원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선 막대한 양의 방사능 물질 누출과 피폭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폐로는 나라마다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6년 내놓은 원전 폐로에 대한 기술보고서(TRS-446)는 폐로 방식으로 △즉시 해체 △안전 저장 △차폐 격리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가동 중지 후 60년 안에 폐로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은 원자로가 운전을 정지한 뒤 일정 기간 동안 방사선 선량이 낮아진 후 폐로하는 안전 저장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핵 발전은 값싸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따라서 오히려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설계수명을 넘긴 또 다른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 등의 폐쇄를 공론화하는 일이다.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원전 고장건수 15건 중 8건이 이들 11개 노후원전(고리2호기 1건, 월성1호기 1건, 월성3호기 2건, 월성4호기 1건, 한빛1호기 1건, 한빛2호기 2건 등)에서 나왔다.
위 사진:[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안전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정치가 작동해야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는 걸 많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 권리의 정치는 정부가 아닌 시민들이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은 위험을 생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기업이 세월호 처럼 과적하거나 불법 증축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위험에 대비할 수 있고 정부와 기업에게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위험 생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가 위험을 멈출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 통제할 권리가 있을 때 안전할 수 있다. 그래야 위험을 인식할 수 있고 대책을 함께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할수록 안전하다’, ‘권리가 보장될 때 안전하다’는 것이 우리가 참극에서 얻은 교훈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이것은 더욱 분명해졌다.

고리원전이 폐쇄되더라도 핵발전 정책을 유지하는 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뼈아프게 얻은 교훈을 이어가야 한다. 원전 정책으로 인한 위험을 누가 만들고 있으며 그 위험은 누구에게 전가되고 있는가! 원전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국가와 핵 마피아가 값싸게 배 부르는 동안, 시민들은 방사능 누출의 값비싼 위험에 노출되었다. 고리1호기 가동 직후부터 발생한 방사능 내외부 피폭과 잦은 사고로 주민들은 갑상선암이 증가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이제 더 적극적으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핵발전 정책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원전 설비 이후 발생한 모든 사고와 피해, 인근 주민과 노동자의 피해(질병 포함), 건설비용과 해체비용, 피해자 보상비용 등 원전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라고. 나아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위해 정부와 시민들이 해야 할 노력을 알려줄 때 시민들과 기업, 정부가 함께 전력소비량을 줄일 수 있고 위험한 원전을 폐기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 유럽은 2050년에 100% 에너지 전환을 선언하고 있으며 독일은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2050년까지 80%까지 올릴 계획에서 100%까지 올리는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고리원전 폐쇄는 끝이 아니다. 핵발전 중심의 정책을 폐기하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권리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산업과 마주한 관료의 책상이 아닌, 거리에서, 골목에서, 곳곳에서 우리의 권리를 외치자.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43 호 [기사입력] 2015년 06월 19일 12: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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