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의 인권이야기] 친구, 오렌지가 좋아를 떠나보내며..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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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야.

하루 종일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 취소된 일정을 다시 잡아보고, 읽히지도 않는 책을 집었다 놨다 하고.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 툭 내려앉은 것처럼 답답해. 어제와 같은 날들, 똑같은 일상인데 이렇게 진정이 안 되는 걸 보면 너를 보낸 빈자리가 커서 그런가봐. 네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카메라가 사무실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어디를 가든 꼭 들고 다녔는데. 지금이라도 문 벌컥 열고 카메라 가지러 들어올 것만 같아. 다들 그래. 다들 멍하고, 다들 기운이 없어. 날마다 구박만 당하던 오렌지가 우리에게 이렇게 큰 사람인줄 이제서야 깨달았나봐. 어쩌면 구박할 사람이 없어져서 기운이 없는 건 줄도 몰라.

기억나? 작년 이맘때 삼성서비스 농성 할 때 말야. 서비스 엔지니어 민호와 우리 친구가 됐잖아. 투쟁 끝나고 언제 셋이서 꼭 술 한 잔 하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너의 장례식장이 되어버렸어. 민호랑 같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제서야 셋이 만나게 됐다며 웃었어. 뭐가 그리 바빴다고, 셋이 만날 시간 한번 낼 수 없었을까. 같이 맛난 돈부리 먹으러가자, 만화방 가자, 영화 보러 가자, 약속은 수없이 했지만 결국 다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 되어버렸어. 민호는 너와 같이 가기로 한 부산을 혼자 다녀왔대. 함께 하자던 일들이 네가 없으니, 그냥 우리 몫으로 덩그러니 남아버렸어. 네가 농담인 듯 진담으로 건네던 ‘이건희 죽기 전에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라던 너의 약속도 물론 지켜지지 않았지. 아, 이 약속 못 지킨 거 구박 좀 해줘야 하는데 말야.


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널 보았을 때, 네가 참 작아 보이더라. 작은 몸으로 무거운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녔으니 많이 피곤했을 거야. 많이 힘들었을 거야. 쓰러지고 난 뒤에 ‘왜 빨리 하지 않냐’ 며 채근하던 순간들이 후회스럽다. 낮 밤이 바뀌어가며 편집하고, 라면에 피자, 햄버거에 인스턴트를 입에 달고 살던 너. 신장병 환자들은 염분조절해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던데. 네가 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네가 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사실도. 농담처럼 ‘내가 죽으면 자전거 줄게, 00에겐 노트북을, 00에겐 카메라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지. 그게 사실은 내일을 장담하고, 기약할 수 없기에 던진 말이라는 걸, 네가 쓰러진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

네가 쓰러진 2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어. 네가 다녔던 샘터 야학 분들, 너와 20년 지기라던 신장병 환우회 분들, 사이다 식구들, 빈곤 활동가들, 그리고 물론 반올림과 다산도 있었지. 심정지가 오고, 2주의 시간을 준 건, 너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해달라는 너의 마지막 바람 때문이었겠지?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 그 분들을 통해 샘터 야학 작은 새 반의 엄명환, 빈곤 당사자로서 엄명환, 동네 잡지 객원 기자, 수원촛불, 다산 자원 활동가, 반올림 활동가로서의 너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되었어. 정말 많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딪치며 살았구나, 참 바쁘게,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더라. 네가 떠나고 추모제를 하는 밤,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울었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빈소에서 모두 너를 기억하고 함께 했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너를 기억하고, 아파한 다는 건. 네가 사람들에게 나눠 준 마음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거야.

네가 떠난 날, 새벽에 한 사람이 영정 앞에서 울더라. 몸을 가눌 수도 없이 흔들거리는 그 사람은 신장병 환우회 친구라 소개했어. 메르스 때문에 병원에도 문병가지 못했던 너의 신장병 환우회 친구들은, 밤늦은 시간 빈소를 찾았어. 무능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 때문에 애도할 시간도 마음 아파할 준비도 할 수 없었을 거야. 너의 급작스런 심 정지와 죽음은 그들의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너 참 잘 살았는지, 장례식장에 많은 이들이 찾아줬어. 사진으로, 마음으로 연대했던 이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줬어. 기륭, 쌍차, 맘상모, 장애 활동가들, 인권 활동가들, 수원지역 활동가들, 반올림 활동가들. 네가 좋아하던 박준 동지도 노래 한곡 불러주겠다며 찾아와주셨어. 네가 다니던 곳곳, 소외받고 삶에 치이던 이들을 사진으로 기억해준 너에 대한 마음이겠지. 이제 네가 다니던 곳, 함께 했던 이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인권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 오렌지 몫까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꿈꾸던 세상. 덜 아프고, 덜 힘들고, 소외받지 않는 그런 세상 이제 너를 기억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았어. 네 몫까지 조금 더 힘 보탤게.

마지막 가는 날, 들었던 너의 영정은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 등 가득 메고 다녔던 네 삶의 무게보다 가볍더라. 떠난 그곳에서는 좀 가볍게 다녀. 그곳에선 네가 기억해야 할 아픔보다 웃음이 더 많을 테니까. 그래, 떠난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외롭지 마. 씩씩하게 웃으며 잘 살아. 일주일에 두세 번 투석 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을 일도 없으니, 더 자유롭게 사진 많이 찍으며 살아. 그리고 가끔 생각 날 때 찾아와줘. 그리고 지켜봐줘. 네가 사진 찍으며 만났던 사람들을. 그들이 오늘 하루 평온히 보낼 수 있기를. 모진 세상에 쓰러지지 않기를. 잘 가 오렌지. 수고했어. 친구야.
덧붙이는 글
랄라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44 호 [기사입력] 2015년 06월 24일 13: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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