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시간을 가질 권리

슬픔을 느낄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걸까

난다
print
#1.
아주 긴 하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는 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움직임을 감지하는 조명이 어둡던 공간을 잠시 밝혀준다.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자고 싶지만 세수는 하고 자야지. 대충 씻고 잠이 든다. 아침 해가 언제 기지개를 켜는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또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일터로, 학교로, 거리로 나서는 아침시간엔 모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환승입니다.” 교통카드를 찍고 전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규칙적이다.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살짝 멈춰 앞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어느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 같다. 비슷한 복장, 비슷한 걸음걸이, 비슷한 속도,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선까지, 사람들은 비슷하게 바쁘다.

#2.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은 피하세요. (중략)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충고하는데, 잘 맞는 커다란 시계를 하나 이발소에 걸어 놓으세요. 견습생이 일을 잘 하고 있나 감시할 수 있게 말이지요.”
- 미하엘 엔데, <모모> 중에서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근면성실’이란 말이 떠올랐다. 근면성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지만 나 자신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부지런하게 사는 것 같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설교는 늘 익숙했다.

#3.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신문들은 날이면 날마다 시간 절약 효과가 있는 새로운 장치의 이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우수함을 찬양했다. (중략)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중략)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 미하엘엔데, <모모> 중에서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내가 그런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해?” 아마도 많은 사건사고들이 이런 생각들 속에서 잊혔을 것이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 또한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지나치며, 결국 선택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삶이 팍팍할수록, 자유시간 따위는 사치로 여겨질수록, 내 삶과 가까운 문제들이 오히려 삶에서 멀어지곤 한다. 피곤한 일상이 반복될수록 자유롭게 생각하고 성찰하고 표현하는 일도 그저 피곤해질 뿐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궁금해 할 시간이 없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와 힘을 박탈하는 사회다.

위 사진:'학습시간 줄이기' 서명운동 참여자들이 적어준 한마디

#4.
지난 6월 29일,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81.3%가 피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피곤을 느끼는 사람의 57.0%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반면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의 74.3%는 항상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 걸까? 학생들의 경우, 초등학생들은 평균 6시간 49분, 중학생들은 평균 8시간 41분, 고등학생들은 평균 10시간 13분의 학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이다.

요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학습시간 줄이기’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캠페인을 통해 만난 시민들 중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도 피곤한 건 알겠는데, 대안은 뭔가요? 학교를 더 일찍 마친다 해도 학생들이 갈 데가 없잖아요.”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 퇴근할 때까지 아이가 혼자 지낼 수 없으니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왜 학생들은 갈 곳이 없을까? 학원에 가는 것만이 대안일까? 여러 가지 관점으로 풀어볼 수 있겠지만,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일하는 시간이 어떤지는 주목해볼만하다. 학생들의 공부 시간이 길고 학교 또는 학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과 OECD 국가에서 1~2위를 겨루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5.
세월호 참사 이후, 몇 달 동안은 모두에게 슬퍼하라고 하더니 그 몇 달이 지나자 이제는 할 만큼 했으니 모두 자리로 돌아오라는 말을 듣고 있다. 애도할 시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살필 시간을 갖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슬픔의 기간을 정하는 건 누구일까. 슬픔을 느낄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걸까.

우리의 시간을 되찾자. 시간을 찾자는 것은 단지 ‘쉬는 시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떠나라고 부추기며 결과적으로는 휴식 시간을 보낸 후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갖자는 것은 한 개인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알찬(쉴 틈 없이 꽉 찬) 계획표를 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 8시간 노동할 권리를 이야기할 때에도 눈치를 봐야만 하는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장시간 학습과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쉼과 여유마저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시간을 가질 권리는 나의 일상을 노래할 권리이다. 더 이상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말할 권리이다. 우리 시간에 대한 권리를 찾자.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인권교육 '온다'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46 호 [기사입력] 2015년 07월 08일 10:39:39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