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안전사회를 위해 필요한 노동자의 권리

푸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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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 때문? 부족한 진단

작년 4월 16일 제주도를 향해 수학여행에 나선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연이어 벌어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건,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 등으로 충격은 더 컸다. 갖가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통되게 지적된 것이 있다. 벌어진 모든 대형사고가 막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인재’였다는 것, 그리고 ‘안전 불감증’에 의해 반복됐다는 토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만으로는 참사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 왜 그럴까?

개인에게 덧씌워지는 책임의 덫

모든 참사/재난은 분명 ‘인재’였다. 사고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무수한 사람이 있었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막을 수 있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사고는 어느 특정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재’라고 사고의 원인을 뭉뚱그려서는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고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거나, 구체적인 정황과 맥락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진 주체의 잘못을 따져 묻기 전에 ‘모두가 잘못했고, 모두의 책임이다’는 식으로 물타기 될 소지가 다분해지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피해(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사후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예방이다. 그러나 ‘인재’라고 뭉뚱그려 사고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마땅히 보호와 예방을 위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국가(정부, 지자체), 실질적인 안전대책 수립 등의 조치를 해야 할 기업(자본)의 책임이 가려지거나 은폐되기도 한다.
‘안전 불감증’을 사고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어떤가? ‘안전 불감증’은 ‘안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거나, ‘안전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안전 불감증’은 개개인의 책임으로 사고의 원인을 돌리는 무책임한 용어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 더 조심했어야지’, ‘네가 부주의해서 사고가 벌어졌다’라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에 발생한 실수가 곧바로 큰 사고로 이어지거나 끔찍한 참사로 번지게 된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안전조치란 인간의 실수나 단순한 기계/기구 오작동이나 설비의 문제가 사고나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다. 안전조치나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문제로 단순한 실수가 사고와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정부, 지자체)와 기업(자본)이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할 문제이지, ‘안전 불감증’ 운운하며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거나 덧씌워서는 안 된다.
‘주변의 위험요인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고, ‘위험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것’으로 참사/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면, 참사와 재난을 막기 위해 우리는 ‘안전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정신무장을 하도록 전 국민적 교육에 나서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위험이 개인이 정신을 바짝 차리면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인가? 하루아침에 환풍구가 주저앉아 버리고,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인데 말이다. 현대사회의 위험을 온전히 개인의 안전에 대한 감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안전 불감증’은 무책임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권리! 권리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첫발

대부분 사고는 위험을 일차적으로 인지하거나 맞닥뜨린 노동자/시민이 이를 통제·제어할 수 없거나 위험상황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못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인명사고 등으로 확대되거나 참사로 번졌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승무원들이 과승과 화물과적의 문제를 지적하고, 여객선 운항 후 선박정비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으나 당장의 ‘출항=이윤’에 밀려 묵살되어 왔다는 것은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올해로 사고 발생 20년이 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도 당시 백화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건물 붕괴의 위험성을 사전에 감지하고 안전조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건축소장이 ‘영업중단과 대피’를 권유했으나 이조차 무시됐다. 붕괴 직전 삼풍백화점에서 소유주인 이준 회장과 그 일가는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영업 중단을 하지 않아 백화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쇼핑하던 시민들이 고스란히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에 대해서 그 어떤 문제도 제기할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무권리의 상태로 방치되어 온 현실에 있다. ‘안전 불감증’ 담론은 나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나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는지, 어떻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사고가 나면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데’라고 자책하게 한다. 이런 사이비 책임론이 아니라 ‘권리 감수성’을 찾는 것에서 우리의 안전은 실질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작업중지권의 필요성!

일터에서 노동자가, 위험에 처할 때 즉각 작업중지를 실행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조건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현장에서 작은 실수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작업중지를 실시해 응급조치와 안전점검이 이루어진 후에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된다면?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그것이 대형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도, 삼풍백화점 붕괴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실현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위 사진:<만평> 가만히 일하라! (출처: 월간 「일터」, 2014.5)


덧붙이는 글
푸우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2 호 [기사입력] 2015년 08월 20일 22: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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