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부산대 고현철 교수의 유서가 우리에게 남긴 몫

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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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8월 17일, 국립 부산대의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유서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은 지난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라고 남겼다.

국립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총장 직선제?

2010년 9월 이명박 정부는 ‘운영체제 효율화를 통한 국립대학 경쟁력’(이하 1차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1차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국립대 법인화였다. 이명박 정부는 국립대의 자율성을 제고해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며 2010년 서울대 법인화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교수사회는 국립대 법인화가 정부 추천 이사 및 감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대학을 통제할 수 있고, 이는 대학의 자율성 후퇴와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진다고 비판했지만, 결국 서울대 법인화는 이루어졌다.

2011년 8월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 폐지, 총장의 대학운영 성과 목표제 등을 담은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하 2차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특히 총장 직선제 폐지는 2차 선진화 방안의 최대 과제였다.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가 대학 내 파벌 형성, 선거 운동 과열 등으로 학내 면학 분위기 저해, 학내 갈등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정치화로 인한 교육과 연구에 소홀해지며, 공약 남발로 인해 등록금 인상의 요인을 제공하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학 내 여러 문제 해결에 있어 선출직 총장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하며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를 도입․시행하라고 했다. 이에 교수사회는 80년대 대학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총장 직선제 폐지는 대학 내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진다고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교수사회와 교육부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교수사회의 반발에 부딪히자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기 위해 국립대를 압박하였다. 국립대 평가항목에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를 반영하고,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서 탈락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부산대를 제외한 모든 국립대가 직선제 폐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부산대는 2011년 10월 총장 직선제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기섭 총장이 말을 바꿔 간선제로 전환하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총장 선출 시기를 앞두고 학교 측과 교수회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다.

위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총장 직선제 폐지가 노리는 것

총장 직선제를 비롯한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대학을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승한 교육기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를 만들기 원했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소양을 갖추고 불의에 저항하며 자신의 권리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을 만들기 원치 않았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닥친 학교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시장경쟁에서 도태되는 학과·학교는 사라져야 하고, 재정적 자립을 위해 재적 인원 감축, 학과 통폐합 등의 구조조정은 필수였다. 사립대학은 신자유주의 시장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위해 특성화대학을 추진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과정의 축소․폐지를 시작으로 학교의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과과정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불투명하다. 학내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 대학 내 자치기구를 학교에 종속시키고, 운동세력을 탄압한 것은 이러한 대학의 신자유주의 편입에 대한 저항세력을 약화시키고, 대학에서 민주주의와 자율성을 몸으로 학습하는 과정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방향은 필연적으로 자율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충돌하게 된다. 재정확보를 위해서는 재정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하고, 기업과 정부가 원하는 교과과정을 편성해야만 기업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대학 재정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비정규직이 교직원의 다수를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학의 자율적 운영과 총장 직선제는 걸림돌이 된다. 정부나 자본보다 선출권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이 대학 운영에 더 영향을 미치는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로 전환하고자 한 이유다. 현재의 총장 간선제에서는 정부가 총장 임명을 거부할 수 있고, 법적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총장의 영향력은 떨어지게 된다. 2014년에만 교육부는 어떤 사유인지 한 마디도 밝히지 않은 채 한국체대와 방송통신대, 경북대, 공주대 등에 대한 총장 임명을 거부했다.

총장 직선제 폐지는 단순히 선거방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결국 대학을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연결된다. ‘선진화’라는 그럴 싸한 말로 포장한 총장 직선제 폐지는 결국 대학을 정권에 길들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대학 내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야할까?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비정규직 교직원의 증가였다. 2010년 9월 당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에 따르면 국·공립대 연구인력 4080명 중 절반이 넘는 209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서울대의 경우 2005년 이후 정규직 직원의 숫자는 1000여 명으로 그 숫자에 변동이 없었지만, 이를 대신해 증가한 것은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2012년 충남대학교에서 간접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의 임금투쟁처럼 국·공립대학에서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되었다. 2015년 교육부 유기홍 의원실에 따르면 31개 국·공립대학의 비정규직 비율은 평균 19.5.%이고, 창원대의 경우 42.3%나 된다.

물론 비정규직 교직원의 문제는 국·공립대학 운영주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고, 대학이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는 현실이 미친 영향 또한 당연히 존재했다. 그러나 학문의 자율성 못지않게 대학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맺는 관계는 중요한 문제이다. 대학 공동체성은 점차 사라지고, 누군가는 배제되는 방식으로 운영된 과정은 지금 직면한 여러 문제들과도 교차한다.

공동체성의 문제는 총장 직선제에 선거권과도 맞물린다. 총장 직선제 시절 다수의 국·공립대학이 총장 직선제 선거권을 두고 교원과 직원이 갈등해왔다. 학교라는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지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교수들에게만 주어졌고, 직원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소수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학생들도 총장 선거권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그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국·공립대학 선진화에 대한 투쟁은 교수사회 그 이상으로 확산될 수 없었다. 공동체를 운영하고 권리주체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된 상황에서 투쟁이 확장되기는 불가능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재편에 맞서기 위해

부산대 고현철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지키고자 한 가치는 대학의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고인이 남긴 자리에 다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인이 남긴 자리에서 지켜야 할 민주주의와 자율성의 구체적 실천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대학 내 투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했다. 정부에 맞선 국립대 교수들의 투쟁도 있었지만, 대학본부에 노동권 개선을 요구하며 싸워온 간접 고용 노동자도 존재했다. 학생자치기구는 등록금과 교육환경을 둘러싸고 대학본부와 정부에 맞서 싸웠다. 이와 같은 다양한 투쟁은 대학이 가지는 다양한 성격을 보여준다. 누군가에는 연구와 교육의 공간, 누군가에게는 생업의 공간, 또 누군가는 교육받을 권리와 함께 막대한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와 같은 공간의 성격을 바탕으로 대학 민주주의를 구성해야 한다. 대학을 학문과 연구의 공간으로만 규정한다면, 이와 무관해 보이는 어떠한 노동은 부수적 노동으로 취급되기 쉽다. 그리고 결정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결정권을 갖는다면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방식과 같이 대학 운영의 자율성은 결국 구성원 중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배제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다양한 성격을 다시 규정하면서 우리는 자본과 정부의 압력에서 대학이 추구하는 자율성이 무엇인지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연구자는 자본이 원하는 연구가 아닌 다양한 학문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고, 노동자는 안정적 노동과 삶을 구현할 수 있다. 학생은 교육받는 타자만이 아닌 함께 교육을 만들어갈 수 있고, 지금의 경쟁에 대한 압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일 수 있다. 돈이 없이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사회, 대학을 졸업하면 맞이해야 할 경쟁사회라는 문제는 단지 대학 구성원들이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자율성이 어떠한 가치를 위한 것인지 사회에 해명할 때 연대의 힘, 정부와 자본에 저항할 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자율성이 좋은 가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저항의 힘이 커질 때이다. 고인이 남긴 자리에서 구체적인 우리 몫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덧붙이는 글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2 호 [기사입력] 2015년 08월 21일 8: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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